옛 집창촌·노후 여인숙…낙후·우범 첫인상 훼손
'군 단위 읍내 분위기' 광역시 역세권 상권 맞나
이용객 급증 속 환경은 제자리 "개선 서둘러야"
[광주=뉴시스]박기웅 이현행 기자 = 금요일이었던 지난달 26일 오후, 광주송정역 앞에는 서울에서 고향을 찾은 귀성객과 여행객, 주말을 맞아 수도권으로 돌아가기 위한 발걸음이 뒤섞였다. '호남의 관문'이라 불리는 광주송정역은 수많은 인파로 붐볐지만 그 수식어와 달리 역 주변 풍경은 시간에 멈춰 선 듯 했다.
송정역에서 불과 200여m 떨어진 맞은편 거리에는 2000년대 유흥·집창촌이 밀집했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허름한 건물과 뜯겨 나간 간판, 폐업한 채 방치된 건물들이 이어지며 '역세권'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풍경을 만들었다.
옛 유흥가 거리에는 광주에서 유일하게 '24시간 청소년 통행금지구역'을 알리는 표지판이 여전히 설치돼 있었다. 다닥다닥 붙은 노후 건물은 20여 채에 달했고, 상당수는 폐건물 상태로 사실상 방치돼 있었다.
성인용 이미지가 남아 있는 간판과 관리되지 않은 건물들은 이 일대가 우범지대라는 인상을 지우지 못했다. 더 이상 오가는 사람도 없는 을씨년스러운 골목길은 불법 주정차된 차량들이 점령했다.
이 일대는 과거 송정동 '1003번지'로 불리던 대표적인 유흥가였다. 2004년 성매매특별법 제정 이후 업소들이 문을 닫기 시작했고, 이듬해 화재로 여성 2명이 숨진 사건을 계기로 급격히 쇠퇴했다. 현재 유흥업소는 자취를 감췄지만 공간 정비는 이뤄지지 않은 채 슬럼화됐다.
송정역을 끼고 줄지어 늘어선 노후한 여인숙 건물들도 역 주변의 낙후된 이미지를 더했다. 해가 저물자 여인숙 앞에는 할머니들이 하나둘 나와 오가는 사람들을 상대로 호객 행위를 벌였다. 이른바 '여관바리'라고 불리는 불법 성매매가 여전히 이 일대에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수많은 시민들은 그 모습을 힐끔거리며 고개를 돌렸고, 여행 가방을 끌던 외지인들은 주변을 둘러본 뒤 발걸음을 재촉했다. 광주의 첫 인상을 마주하는 역세권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현실이다.
송정동에서 한평생 살아왔다는 김모(81)씨는 "송정역은 서울과 광주, 목포를 잇는 교통의 요지다. 사람이 이렇게 많이 오가는데도 역 앞에는 예전 집창촌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누가 광주에 좋은 인상을 갖겠느냐"고 말했다.
광주송정역은 호남고속철도가 개통한 2015년 4월 이후 광주역을 대신해 호남의 관문이자 고속철도 거점으로 자리 잡았다. 이듬해 수서발 SRT가 개통되면서 하루 평균 이용객은 2014년 3327명에서 현재 1만3000명 이상으로 늘었고, 주말에는 2만5000명 안팎이 역을 이용한다.
2030년이면 하루 이용객은 3만7000여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역 주변 상권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역 앞 메인 상권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폭 10m 일방통행 도로를 끼고 상가가 늘어선 '도란도란 송정길'에는 '임대'를 내건 빈 점포들이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단층 건물의 소규모 점포가 대부분으로, 국밥집과 미용실, 문구점, 의류점 등이 영업 중이었다. 그 모습은 광역시 중심 역세권이라기보다 군 단위 읍내 상권을 떠올리게 했다.
한 상인은 "여기를 역세권이라고 부르는 건 얼토당토않다. 그동안 다녔던 단골들과 광산구청 직원들로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은 다들 알고 있지 않느냐"며 "타지에서 온 방문객이나 지역 시민들이 뭐가 볼게 있다고 여길 찾아오겠는가"라고 했다.
맞은편 '1913 송정역시장' 역시 일부 인기 점포를 제외하면 상점 3분의 1가량이 문을 닫은 상태였다. 임대 안내문과 홍보 전단지만 붙어 있는 점포도 적지 않았다.
전북 전주 고향집을 가기 위해 송정역을 찾은 대학생 유모(26)씨는 "역 주변에 시간을 보낼 만한 공간이나 볼거리가 너무 없다"며 "처음 열차를 타고 광주에 도착했을 때 예상치 못한 낙후된 모습에 적잖이 놀랐다"고 했다.
또 다른 대학생 이모(23)씨는 "서울 등 타지 친구들이 역에 내려 광주의 첫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라고 할 때마다 부끄럽다"며 "다른 지역 역사에 비해 규모도 작고 주변 환경도 많이 뒤처진 느낌"이라고 토로했다.
광주송정역 이용객은 10년 전보다 크게 늘고 관문으로서 역할을 커졌지만, 도시의 첫 인상을 책임지는 역 주변 공간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어 지역민들의 불만이 꾸준하다. 광주를 찾는 외지인들에게 자칫 낙후·우범 도시라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대대적 정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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