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년 전 학살 진상규명 결정에도 국가 손배 패소 왜?

기사등록 2025/12/28 05:00:00 최종수정 2025/12/28 06:36:23

유족, 과거사위 진상규명 들어 모친 등 3명 학살 주장

法 "등본과 불일치…참고인·원고 증언도 믿기 어렵다"

[서울=뉴시스]법원 이미지. (사진=뉴시스DB)

[광주=뉴시스]변재훈 기자 = 75년 전 한국전쟁 당시 국군의 무차별 양민 학살로 어머니와 동생 등 가족을 잃었다며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패소했다.

유족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과거사위)의 진상규명 결정을 근거로 이번 소송에 나섰으나 법원은 따로 따져 본 사실관계를 기초로 "사실로 인정하기 어렵다"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광주지법 민사 8단독 김정철 부장판사는 A씨가 국가에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고 28일 밝혔다.

이번 소송에서 원고인 A씨는 과거사위 진상 규명 결정을 토대로, 한국전쟁 당시 어머니 B씨와 어린 동생 등 3명이 국군에 의해 희생됐다며 국가가 1억4000여 만원 등을 배상하라고 주장했다.

과거사위는 'B씨와 B씨 아들(A씨의 동생), B씨의 시동생 등 일가족 3명이 1950년 12월12일(음력 11월 4일) 전남 화순군 북면 소재 자택에서 총소리에 놀라 밖으로 나오다가 국군 20연대 3대대 소속으로 추정되는 군인들에게 총살된 것으로 보인다'는 취지로 진상규명을 결정했다.

그러나 재판장은 대법원 판례를 들어 사실관계를 다시 따져봤다.

2013년 대법원은 '과거사위 조사보고서나 처분 내용이 법률상 '사실의 추정'과 같은 효력을 가지거나 반증을 허용하지 않는 증명력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보고서 중 해당되는 부분은 개별적으로 검토해 당사자가 해당 사건 희생자라는 점을 증거에 따라 확정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재판장은 A씨의 일가족이 국군에 의한 양민학살 희생자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장은 등본 기록상 어머니 등 2명이 일시 사망한 것이 아니라, 각기 1950년 12월5일과 같은 해 11월5일 사망한 것으로 돼 있고, 각 사망 일자 역시 진상규명 결정된 사건의 발생일인 1950년 12월12일과도 일치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특히 A씨가 '아기'라고 부른 동생은 출생·사망 공식 기록이 없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재판장은 "진상규명 과정에서 A씨가 기억하지 못한 발생일자를 진술한 참고인은 산으로 피난 가 있어 총살 장면을 직접 보지는 않고 누군가의 목격담을 들었을 뿐이다. 과연 실제로 일가족 총살이 있었는지, 총살 주체가 국군 또는 인민군인지, 교전 과정에서 의도치 않은 우발적 희생인 지 등을 확정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가 없다"고 밝혔다.

A씨 증언에 대해서도 재판장은 "그대로 믿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A씨의 목격 진술은 당사자 본인이므로 객관적·중립적인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없다. 당시 만 6세에 불과한 A씨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연령이라거나 현재 정확히 당시 상황을 기억할 수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했다.

A씨의 증언대로 라면, 군인들이 총살 대상에서 제외한 조부모와 A씨 등이 당시 아직 살아있던 동생을 함께 데려가거나 가족의 유해를 수습해야 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은 석연치 않다는 판단이었다.

'오히려 지주였던 아버지가 좌익에게 죽었던 집안인데도 군인들이 아무 이유 없이 무조건 쐈다', '마을 내 다른 희생자가 있었다' 등 A씨의 다른 진술 역시 정황이나 기록 등에 비춰 신뢰하기 어렵다고 봤다.

재판장은 "이처럼 국군 제20연대 3대대 군인들이 1950년 12월12일 당시 A씨의 주장과 같이 불법적으로 고의 살해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A씨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이 같은 원고 패소 판결에 A씨는 불복해 항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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