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윤이 "소설은 내 바깥의 세상과 뒤섞이고 부대낀 뒤에 나와요" [문화人터뷰]

기사등록 2025/12/13 11:00:00

주요 문학상 수상으로 주목 받는 젊은 작가

첫 소설집 '자개장의 용도' 출간…'이동' 키워드

"독자들이 이동의 즐거움 읽었으면 좋겠어요"

"현실·환상 뒤섞여…물·기름처럼 나눌 수 없어"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함윤이 작가가 4일 서울 마포구 문학과지성사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최근 함 작가는 단편 소설집 '자개장의 용도'를 출간했다. 2025.12.05.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 조기용 기자 = "창작을 시작하며 가장 먼저 붙잡게 된 건 '환상성'이었어요.. 제가 10대 시절을 시골에서 보냈거든요. 그래서 이전부터 지금과는 다른 곳, 현실과 먼 것에 관심이 많았어요."

지난달 첫 소설집 '자개장의 용도'(문학과지성사)를 펴낸 함윤이(33) 작가는 창작의 출발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바깥 세계는 굉장히 넓고 제가 모르는 것들로 가득할 것 같았다"는 그의 생각은 현실과 환상이 느슨하게 뒤섞인 이번 소설집의 토대가 됐다.

이번 소설집에는 총 7편의 단편이 실렸다. 20대부터 써온 작품 가운데 엄선한 결과물로, 수록 순서 역시 집필한 시간의 흐름을 그대로 따른다.

 함 작가는 2022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소설 '되돌아오는 곰'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젊은작가상, 문지문학상, 이효석문학상 우수작품상을 거쳐 최근 문학동네소설상까지 수상하며 젊은 작가 가운데서도 두드러진 존재로 떠올랐다. 하지만 그는 이 성취의 이면에 "수없이 낙방하고 고쳐 쓴 시간이 있었다"고 말한다. 작품을 '성장소설'에 비유한 이유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함윤이 작가가 4일 서울 마포구 문학과지성사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최근 함 작가는 단편 소설집 '자개장의 용도'를 출간했다. 2025.12.05. pak7130@newsis.com


표제작 '자개장의 용도'와 단편 '천사들(가제)'은 각각 젊은작가상과 문지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다. 환상적인 설정이 눈에 띄지만, 이야기의 중심에는 한국 사회에서 낯설지 않은 장면들이 놓여 있다. 비현실적인 장치 위에 현실의 감정과 상황을 얹는 방식이다.

최근 서울 마포구 문학과지성사 사옥에서 만난 함 작가는 "현실과 환상을 경계 짓는 구역이 좁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기까지 현실, 여기까지 환상이란 경계가 있지만 실제 삶에서는 그 경계가 뒤섞여 있잖아요. 물과 기름처럼 분리할 수는 없지 않나요?"

표제작은 자개장을 통해 공간이동을 하는 이야기다. 할머니에서 어머니를 거쳐 주인공에게 이어진 자개장은 비현실의 통로지만, 대학생 주인공이 겪는 사건들은 사회 곳곳에서 반복되는 익숙한 풍경이다. 환상은 장치로 존재하고 ,현실은 서사의 무게를 떠받친다.

이 작품의 출발점 역시 작가의 경험에서 나왔다. 그는 "대학 졸업후 처음으로 쓴 자의적인 소설"이라고 소개하며 "어린시절부터 할머니 댁에서 본 자개장의 문이 다른 곳으로 이어질 것 같은 느낌에 오래 사로잡혀 있었다"고 했다.

표제작이 '공간의 이동'이라면  마지막 수록작 '천사들(가제)'에서는 주인공의 이성(理性)이 이동한다. 주인공은 친구의 장례식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현실과 꿈을 오고가며 그와의 추억을 회상한다.

함 작가는 "현실과 꿈을 오고 간다기보다 모두 제 삶의 공존하는 부분들이고, 행동이나 목격한 것들이 꿈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결국 같은 차원의 삶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함윤이 작가가 4일 서울 마포구 문학과지성사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최근 함 작가는 단편 소설집 '자개장의 용도'를 출간했다. 2025.12.05. pak7130@newsis.com

'이동'이라는 공통된 행위는 소설집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다.

그는 "작품을 엮는 과정에서는 의식하지 못했는데 작업을 마무리하고 멈춰있지 않고 왕복하거나 배회하는 인물이 많았다"며 "한 공간에 머물기보다 여러 곳에서 다양한 삶을 경험하고 싶은 욕구가 제 관심사로 드러난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독자들이) 이동의 즐거움을 읽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소설은 내 바깥의 세상과 뒤섞이고 부대낀 후에야 나온다"는 소설집 속 '작가의 말'이 그의 창작 태도를 잘 보여준다.

"모든 이야기에 영향을 받잖아요. 외부의 요소들은 다 함께 받지만 각자의 몸에서 자신 만의 레시피로 만들어지죠. 영감을 어디서 받는다고 말하기보다는 시간을 갖다 보면 형태를 갖추고, 곧 소설이 되는 것 같아요."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전공을 졸업한 함 작가는 등단 전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독립영화 시나리오를 집필하기도 했고, 타분야 예술가와 협업해 미술전시나 공연과 협업해 텍스트를 제공하는 등 장르를 넘나드는 실험을 이어왔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등단 이전 활동해 온 다른 창작자와 맞물린 경험들이 재밌어서 다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소설을 넘어 여러 분야로 확장할 그의 다음 행보가 기대되는 대목이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함윤이 작가가 4일 서울 마포구 문학과지성사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최근 함 작가는 단편 소설집 '자개장의 용도'를 출간했다. 2025.12.05. pak7130@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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