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쩐의 전쟁'…기울어진 운동장
韓도 규제 특례 통해 대규모 투자 가동
전력·용수 확보 '국가 차원' 문제로 격상
'국가 대항전'으로 전환된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에서 승기를 잡기 위해 정부와 민간이 '2인 삼각' 달리기에 나서는 것이다.
정부가 지난 10일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개최한 'AI 시대의 K반도체 비전과 육성 전략 보고회'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2047년까지 총 700조원 이상을 투입해 반도체 팹(공장) 10기를 신설한다.
현재 국내 반도체 생산·연구 팹(공장)을 합하면 21기인데, 이를 포함해 추가로 16기를 신설해 37기까지 확장한다는 복안이다.
정부와 반도체 기업들이 이런 대규모 청사진을 계획하는 것은 최근 생성형 인공지능(AI) 확산으로 급증하는 반도체 수요를 선제적으로 대응하려는 차원이다.
샘 올트먼 오픈AI 창업자는 지난 10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초대형 데이터센터 프로젝트 '스타게이트'를 위해 요청한 고대역폭메모리(HBM) 물량은 웨이퍼 기준 월 90만장에 달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현재 전 세계 HBM 생산 능력의 2배에 달하는 규모로 2029년부터 납품이 예상된다. 반도체 공장 건립에는 최소 3년 이상 걸리는 만큼, 이 규모를 조달하려면 공장 건립을 속도전 양상으로 진행해야 한다.
정부는 이번 보고회를 통해 미국과 함께 한국이 명실상부한 반도체 2강으로 도약하자는 메시지를 던졌다.
반도체 산업은 이미 기업 간 경쟁에서 국가 대항전으로 비화했지만, 그동안 한국에선 정부 역할이 아쉽다는 목소리가 컸다.
미국은 원천 기술과 설계를 장악한 데 이어, 첨단 공정 제조 시장을 넘보고 있다. 이를 위해 530억달러의 보조금을 글로벌 반도체 기업에 살포하는 등 '쩐의 전쟁'을 본격화했다.
중국도 미국의 노골적인 견제 속에서 1000억달러의 펀드를 운용하며 레거시(구형) 공정에서 기술 패권을 노리고 있다. 일본도 600억달러 가까운 보조금을 편성, 제2의 부흥기를 추구하는 상황이다.
반면 한국 반도체 산업에 지원되는 금액은 20억달러(2조원) 수준에 불과하며, 그나마 민간 주도로 투자가 이뤄지는 실정이다.
정부가 이번에 대규모 투자 지원 방안을 마련하려는 것도 이런 민간 기업들의 고군분투에 돌파구를 모색하자는 취지다.
정부는 '지방투자연계 지주회사 특례'를 추진해, 기업 투자비 마련을 지원하기로 했다.
현행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손자회사는 원칙적으로 증손회사 주식을 소유할 수 없으며, 100%를 소유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인정하는데 이런 규제를 완화해 자금 조달 규제를 해소하기로 했다.
이같은 정부안이 시행되면 SK하이닉스는 절반 수준의 투자비로 공정 건립이 가능해져, 초기 투자 부담과 투자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정부는 차세대 먹거리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5년간 150조원을 쏟아붓는 '국민성장펀드'도 출범시켜 대규모 설비 투자를 위한 초저리 대출을 제공할 예정이다.
무엇보다 전력·용수를 적기에 공급하기 위해 국비 지원을 확대하기로 했다. 단적으로 대만은 정부가 직접 반도체 산업의 인프라의 설계·구축를 감당하고 있다. 한국 정부도 반도체 생산의 핵심 인프라인 전력과 용수를 국가가 직접 책임지고 구축하겠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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