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적인 폭우, 극심한 가뭄 등 동시다발 재해
복합 재난 일상화, 재난의 연쇄화, 대형화 특징
AI 기반 재난 진단 시스템 구축, 해외 기관 교류
"국민 생명·안전 지키는 과학적 토대 마련해"
[서울=뉴시스]박은비 기자 = 지난 7월 경기 가평과 경남 산청에서는 기록적인 폭우로 인한 산사태와 토석류가 주택과 도로를 덮치며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강릉에서는 극심한 가뭄으로 상수원이 고갈돼 시민들이 식수난을 겪었다. 도심 한복판에서는 도로가 예고 없이 꺼지는 지반함몰(싱크홀)과 한반도 전역에서 감지되는 지진 활동 등 동시다발적인 형태의 지질 재해가 잇따르고 있다.
UN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19년까지 최근 20년간 전세계적으로 발생한 자연재해는 1980~1999년까지 이전 20년간 발생한 자연재해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났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앞으로 산불 후 극한호우로 발생할 수 있는 2차 재해 우려, 극심한 가뭄 패턴 변화, 물 부족으로 인한 지하수 문제 등 복합적 재난 양상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재해가 단순 개별 현상을 넘어 기후, 도시 환경 등이 서로 연결된 시스템 재난으로 변화하는 추세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를 두고 복합 재난의 일상화, 재난의 연쇄화, 대형화로 정의하고 있다.
윤병준 한국지질자원연구원(지질연) 탄소저장연구센터장은 지난 2일 지질연이 '기후와 재해의 경고, 과학이 지키는 삶'을 주제로 개최한 심포지엄에서 이같이 밝혔다.
윤 센터장은 "제가 볼 때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재난의 연쇄화, 대형화의 가장 쉬운 예"라며 "지진 때문에 원전이 피해를 입고 화재와 건물 붕괴가 일어나고 그걸로 인해 원자력에 의한 피해까지 바다에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요즘에는 재난이 연쇄적으로 크게 일어나는 게 도심이 과밀화되고 여러 중요 시설이 모여있기 때문"이라며 "재난의 일상화라는 키워드는 극한 강수, 비가 많이 오는 것과 관련이 있고 이런 문제들이 심해지고 있기 때문에 국가 재난 위기 관리를 위한 대한민국 전국 규모의 목적 지향형 재난대응 기술이 필요해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특히나 요즘에는 지금까지 접하지 않았던 장비들, 전기차 화재 같은 것도 새롭게 볼 수 있는 재난"이라며 "신재생에너지 보급이 점점 강화되면 전력 공급 변동성이 있기 때문에 이를 잘 보관하고 전송하기 위한 해저 케이블 전력 케이블이 굉장히 중요해지는데, 이 케이블 파손 사고도 우리 사회가 맞이할 재난 중 하나"라고 봤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탄소저장연구센터는 기존 점(Point) 센서의 사각지대와 오탐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통신용 광섬유를 센서로 활용하는 복합 재난 안전망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도로·해저 케이블·풍력단지 등 광케이블이 설치된 모든 곳을 감시하는 인공지능(AI) 기반 재난 진단 시스템 구축 비전도 있다.
정부도 복합재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제5자 국가안전관리 기본 계획을 마련했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한 재난 위기 관리 기술의 글로벌 리더십을 견인하겠다는 내용이다.
여기에는 과학적 예측과 이를 뒷받침해주는 막대한 데이터가 필요하고,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는 시스템이 요구된다.
지질연의 경우 복합 지질재해를 해결하기 위해 7개 혁신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이를테면 기후위기 시대 수자원 확보 전략으로 지하수환경연구센터에서 전국 1만여개 고밀도 통합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권역별 지하수 정보지도'를 갖췄다. 이 지도는 실제로 강릉 지하수 개발 유망지 자문을 통해 가뭄 해소에 기여하기도 했다.
또 지하수 공급 유망지 평가 및 적정 활용 정보를 담은 웹 기반 공공플랫폼 '이지스(AEGIS)'를 개발할 계획이다. 이 플랫폼은 AI 분석 결과와 전문가 검증을 결합해 지하수 개발 유망지를 선정한다.
지질 안전 분야에서도 AI를 활용한다. 송석구 지진연구센터장은 "AI는 사실 모든 분야에서 상당히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부분"이라며 "어떤 단계에 가면 인간 연구자가 할 수 없는 새로운 전조 증상이나 지진 메커니즘을 발견하는 일을 AI가 해줘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다"고 언급했다.
다만 국내에서 재해 연구를 하면서 어려운 점은 강진 경험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지진 경험이 많은 미국에 이어 일본 국가연구소와 협력 연구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송 센터장은 "제가 생각하기에 우리나라의 고밀도 실시간 지진 관측 기술은 사실 세계적인 수준"이라며 "미국이나 일본, 유럽과 비교해서 그 양이나 질적 측면에서 상당한 수준에 도달해 있고, 그 다음 단계로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지진 환경을 예측하는 연구가 필요하다. 외국의 국제 기관들과 공동 대응하는 전략이 가장 유효하지 않을까 한다"고 덧붙였다.
권이균 한국지질자원연구원장은 "지금의 지질재해는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닌 기후, 수문, 도시 환경이 복합적으로 얽힌 시스템 재난"이라며 "AI·디지털 기반 연구 역량을 결집하고, 정부·유관기관과 긴밀히 협력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과학적 토대를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silverline@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