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윗집 사람들' 무심한 남편 현수 역
하정우 연출작…공효진·이하늬와 호흡해
"순간 삐져들어갈 정도로 희열 느낀 연기"
"감독 하정우 철두철미…수도 없이 리딩"
하정우와 2009년 '국가대표'로 인연 시작
"친한동생을 넘어 배우로 인정해줘 기뻐"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세 명의 베테랑 배우들과 연기를 하다 보면 순간 빠져 들어가는 때가 있었어요. 그때 희열을 느꼈죠."
'윗집 사람들'(12월3일 공개)은 집 안에서 네 명의 캐릭터가 대화하는 게 전부인 영화다. 러닝 타임 107분은 영화 한 편으로는 언뜻 그리 길지 않은 시간으로 보이지만, 그 모든 장면을 네 사람의 대화로만 채워 넣는 건 무리라는 생각이 들만한 시간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이런 작품을 만들려면 당연히 배우의 연기력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웬만한 내공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 그렇게 대사를 쏟아내다가는 실력이 들통나는 게 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배우 김동욱(42)에게 그래서 어렵거나 힘들었던 장면이 없었냐고 물었더니 "없었다"는 단호한 답변과 함께 저런 말이 돌아왔다. "어떤 순간이 유독 호흡이 잘 맞았다고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매 장면 짜릿할 정도로 호흡이 잘 맞았습니다."
'윗집 사람들'은 어느새 남편 현수(김동욱)와 관계가 소원해진 정아(공효진)가 현수 동의 없이 윗집 부부를 집에 초대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정아와 각 방 생활을 하고, 대화는 메신저로 하며, 섹스리스이기까지 한 현수는 눈치 보지 않고 성생활을 즐기며 매일 밤 소음을 만들어내는 윗집 사람들이 탐탁지 않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저녁 식사 내내 해괴망측한 발언을 하는 건 물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까지 하자 현수는 폭발하고 만다.
2020년에 나온 스페인 영화 '더 피플 업스테어스'를 리메이크한 '윗집 사람들'은 배우 하정우가 연출한 네 번째 장편영화. 이 작품 역시 하정우가 전작에서 보여준 특유의 말장난 코미디를 전면에 내세워 온갖 말을 상영 시간 내내 융단폭격 한다. 게다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극 중 배경이 되는 장소는 정아와 현수의 아파트가 유일하고 등장 인물도 사실상 두 부부 외엔 없다. 그러다 보니 배우 4인이 소화해야 하는 대사량 역시 방대하다. 웬만큼 연습 해서는 결코 잘 맞아떨어질 수 없는 연기라는 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김동욱은 "배우 하정우가 감각적이라면 감독 하정우는 철두철미하다"는 말로 이 작품에서 연기 호흡을 설명했다.
"감독님마다 작업하는 방식이 다 달라요. 그런데 한 가지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실제 촬영 때 정확한 호흡을 위해 리딩을 정말 많이 했다는 겁니다. 이렇게까지 하는구나, 라고 생각할 정도였어요. 감독님은 단어 하나, 어감 하나 놓치지 않으시더라고요. 그 철저한 플랜, 함께 연기할 땐 볼 수 없던 부분들이었습니다."
김동욱은 네 배우가 함께하는 리딩도 많았고, 대역 배우들과 리딩하는 시간 역시 그에 못지 않게 많았다고 했다. 리딩을 통해 대사 템포와 호흡 그리고 리듬감 등에 관한 감을 하나 씩 잡아갔다. 그러면서도 캐릭터의 감정과 이 영화가 전달하려는 메시지까지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담으려고 했다. "당연히 이런 연습이 매우 큰 도움이 됐어요. 연습할 때 찾아낸 것들을 현장에서 그대로 적용했으니까요." 하정우스러움으로 가득 차 있는 영화이지만 막상 연기를 할 땐 하정우가 김동욱에게 특별히 요구한 게 없었다고 했다. "그냥 네가 제일 잘하는 너의 모습을 보여달라고 하더라고요. 그게 보고 싶어서 함께하자고 한 거라고요. 참 감사한 말이죠."
'윗집 사람들'은 극 후반부엔 명확한 메시지를 드러내긴 해도 그 순간에 도달하기까진 계속 관객을 웃기려 하고 웃겨야 할 의무가 있는 영화다. 다만 김동욱은 배우 누구도 웃기려고 한 적이 없고 오히려 더 진지하게, 더 고민하면서 연기했다고 했다. "관객을 웃기는 건 어쩌면 울리는 것보다 힘들 거예요. 그래서 코미디는 더 집중하고 더 고민하고 더 노력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어떤 길로 가고 있는지 계속 뒤돌아봐야 하죠. 절대 예측할 수 없는 게 코미디라고 봅니다. 제3자가 웃어야 웃긴 겁니다. 저희가 웃길 이유는 없어요. 등장 인물들이 웃기려고 하지 않으니까요."
김동욱은 하정우와 오랜 인연이 있다. 두 사람은 2009년 '국가대표'에서 처음 함께 연기했고 그때 가까워졌다. 이후 이들은 꾸준히 연락해오며 사석에서도 만난는 관계가 됐다. '신과 함께' 2부작(2017·2018)에선 쌍천만을 합작하기도 했다. 다만 그들은 하정우 연출작에선 유독 만나지 못했다. '윗집 사람들' 전에도 하정우가 김동욱에게 함께하자고 제안한 적이 있었으나 성사되지 못했다. 김동욱은 "딱 기회가 됐고 흔쾌히 하겠다고 했다. 같이 작업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고 말했다.
"정우형은 포장하지 않아요. 담백하죠. 대본을 건네주고 봐 달라고 하더라고요. 딱 그 정도였습니다. 누군가 저와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져준다는 것, 그건 정말 감사한 일이죠. 친하다고 해서 당연한 건 전혀 아니잖아요. 사실 그냥 친한 동생 정도로만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게다가 저를 배우로서 같이 하고 싶은 사람으로 생각해준다는 건 참 고마운 일이죠."
김동욱은 2023년 12월 결혼했다. 내년 초엔 아이도 나온다. 그는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게 '윗집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줬다고 했다. 반대로 '윗집 사람들'을 하면서 결혼 생활을 이해하게 됐다고도 했다. "현수와 정아의 관계가 그렇게 된 건 이들 사이에 특별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아주 사소한 순간, 사소한 것들이 쌓인 거죠. 그래서 더 안타까운 거죠. 내게 사소한 순간이 상대에게 소중한 순간일 수 있어요. 전 그런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더 솔직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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