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특검, 이종섭 호주대사 임명 과정 공소장 적시
윤석열 "이제 이종섭 호주로 내보내자" 발언도
박성재·심우정, 법무부 내부에 출국금지 해제 지시
[서울=뉴시스]이소헌 김정현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이 채해병 사망사건, 'VIP 격노설'과 관련해 야당을 중심으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에 대한 수사 요구가 거세지자, 조태용 전 국가안보실장에게 "이제 이종섭을 호주로 내보내자"고 말하며 이 전 장관의 도피성 호주대사 임명을 지시한 정황도 드러났다.
또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과 심우정 전 법무부 차관이 이 전 장관 임명 과정에서 "대통령이 임명했는데 출국금지를 걸어서 못 나가게 하는 것이 맞냐"며 법무부 내부에서 출국금지 해제를 지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29일 뉴시스가 확보한 순직해병 특검팀(특별검사 이명현)의 공소장에는 윤 전 대통령과 박 전 장관, 심 전 차관 등이 이 전 장관의 호주대사 임명 과정에 어떻게 관여했는지 등 구체적인 당시 정황이 담겼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이 'VIP 격노' 전화를 받은 이 전 장관에 대한 공수처의 수사가 진전되면 자신도 수사 대상이 되는 것을 우려해 이 전 장관의 호주대사 임명을 지시했다고 결론 내렸다.
윤 전 대통령은 이 전 장관이 사의를 표명한 지난 2023년 9월 12일 조 전 실장과 논의한 다음, 3일 후인 같은 해 9월 15일 만찬 자리에서 이 전 장관에게 "앞으로 대사 또는 특사로 활용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호주대사 자리는 조 전 실장이 윤 전 대통령에게 추천한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호주대사 임기는 반 넘게 남았던 상황이었지만, 윤 전 대통령은 같은 해 11월 조 전 실장에게 "이제 이종섭을 호주로 내보내자"고 지시했다.
윤 전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조 전 실장은 조구래 전 외교부 기획조정실장에게 전화해 "이제 이종섭을 보내야겠다. 인사 프로세스를 준비하자. 기왕이면 빨리 보내라"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 전 기조실장은 이 전 장관의 대사 임명을 눈에 띄지 않게 다른 공관장 몇 명과 함께하라는 지시도 했다. 조 전 실장은 장호진 전 외교부 차관에게도 같은 취지로 지시해 장 전 차관이 외교부 인사 실무자에게 "호주하고 모로코를 엮어서 빨리 진행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특검팀은 외교부 직원들이 당시 호주대사 임기가 2년 이상 남았고, 특별한 교체 사유가 없지만 대통령 지시사항이므로 따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공관장 자격심사를 형식적으로 진행한 것으로 봤다.
이에 외교부는 '공관장 자격심사 운영세칙'과 달리 이 전 장관에게 외국어 능력 검정 점수를 제출받지 않았음에도 심사결과서에 심사위원들의 서명만 받는 방식으로 적격 결정을 했다. 이 전 장관은 이후 호주 정부로부터 아그레망을 받아 지난해 3월 4일 호주대사로 임명됐다.
이 전 장관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를 받고 있어 출국금지 상태였는데, 박 전 장관과 심 전 차관은 당시 법무부 내부에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를 해제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 사실을 알게 된 윤 전 대통령은 부임 일정을 2주 연기하라는 추지로 지시하고, 이 전 장관은 법무부에 출국금지 이의신청을 했다.
이재유 전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이 이 사실을 박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개인적인 일로 나가는 것도 아니고, 대통령이 이종섭을 호주대사로 임명해 나가는 것인데 법무부에서 출국금지를 걸어서 나가지도 못하게 하는 것이 맞냐" "이종섭 출국금지 풀어주면 되겠네"라며 출국금지를 해제하라는 취지로 지시했다고 한다.
이에 이 전 본부장은 법무부가 직권으로 판단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상황이라고 설명하며 법무부 출국금지 심의위원회를 열겠다고 보고했다.
심 전 차장 역시 이 전 본부장의 보고를 받고 "대통령이 이종섭을 호주대사로 임명해 나가는 것인데 이걸 출국금지 걸어서 못 나가게 하는 것이 맞냐"며 박 전 장관과 같은 취지로 지시했다.
이후 법무부 내부에서는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 해제를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방향으로 보고서를 작성했고, 공수처 의견이 회신 되기 전에 '출국금지를 통해 달성할 수 있는 공익에 비해 신청인이 입게 될 불이익이 더 크다고 판단되므로 이의신청을 OO함'이라는 문구가 담긴 심사결정서를 작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장관은 출국금지 심의위원회 개최 당일인 지난해 3월 8일 법무부 청사 앞에서 기자들을 대상으로 "개인적 용무나 도주가 아니라 공적 업무를 수행하러 간다는 점을 감안해 처리할 것"이라며 심의위원회 위원들에게 이 전 장관에 대한 출국금지 해제 의결을 하라는 취지로 압력을 행사한 혐의도 적시됐다.
이후 심의위원회 위원 5명 전원이 이의신청을 인용하는 결정을 하면서 박 전 장관은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를 해제한 것으로 조사됐다.
앞서 특검팀은 지난 27일 윤 전 대통령을 범인도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기소 했다. 박 전 장관, 심 전 차관, 조 전 실장, 장호진 전 국가안보실장, 이시원 전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은 범인도피 혐의 공범으로 함께 재판에 넘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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