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어 사용해 생물 바퀴벌레 거래하고 키우기도
밀수 식물방역법 위반 행위인데 유통 처벌 한계
"유사종 간 교배, 토종종 영향…처벌 강화 필요"
[서울=뉴시스]한이재 기자 = 수입이 금지된 로치(바퀴벌레)류가 파충류·양서류·절지류 등 애완동물 먹이용으로 온라인에서 불법으로 판매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현행법상 '밀수' 사실이 확인되지 않으면 국내 유통 과정만 가지고 처벌이 어려워 단속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뉴시스 취재에 따르면, 로치 판매업체 A사는 판매 사이트에서 먹이용 수컷을 마리당 1000원, 암수를 짝지은 트리오를 5000원에 판매했다.
또 다른 업체는 로치를 사육할 수 있게 사료가 함께 담긴 투명 용기째 판매했다. 로치류 가격은 종과 크기 등에 따라 암수 한 쌍에 1만원부터 5000마리에 30만원까지 다양했다.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따르면 두비아로치(기아나점박이바퀴벌레), 레드러너로치(투르키스탄바퀴벌레), 히싱로치(마다가스카르휘파람바퀴벌레) 등은 곤충(곤충강 바퀴벌레목)에 해당하며, 곤충은 '식물방역법' 제2조 및 제10조 제1항에 따라 수입이 금지돼 있다.
따라서 금지품을 수입 판매하거나 사육하는 경우도 불법에 해당한다.
◆은어 사용하며 밀거래…유통은 단속 어려워
식물방역법 제47조는 금지품을 수입한 사람에게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위반사항 적발 시 금지품은 폐기 명령이 내려진다.
판매자들 역시 불법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기자가 구매를 문의하자 "기본사항도 모르고 연락하는 거냐"며 "요즘 단속이 있단 소리를 들었다. 질문에 주의해달라"는 답이 돌아왔다. 다른 판매자는 '개인 사정으로 지금 판매가 힘들다'며 다른 판매자를 안내해 준 후 모든 메시지를 삭제했다.
갈색거저리, 쌍별귀뚜라미 등 사육 가능한 합법적인 먹이가 존재해 대안이 없는 건 아니지만, 로치류는 영양가가 높고, 냄새가 잘 나지 않으며, 번식이 쉽다는 이유 등으로 수요가 많다고 한다.
일부 판매자들은 단속을 피하기 위해 '살아있는 로치'를 판매하면서도 "생체가 아니다"라거나 "건조 표본"이라고 홍보했다. 죽어서 건조된 해충은 식물방역법상 식물검역대상물품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액침표본은 유충, 건조표본은 성충을 뜻하는 등 은어도 사용된다.
그러나 당국이 이같은 편법을 감안해 모니터링을 강화하더라도 법적 한계는 명확하다.
실제로 지난 4월 관련 제보를 접수한 검역본부 광역수사팀은 로치류 불법 유통 행위를 모니터링하고 있지만, 현행 식물방역법은 '밀수'만 처벌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국내 유통·사육 단계를 적발하더라도 최초 밀수 사실을 특정하지 못하면 처벌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에 따라 검역본부는 국내 유통까지 처벌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검역본부 관계자는 "로치류 불법 유통이 최근에 늘어나는 것 같아서 앞으로 중점적으로 단속할 계획"이라며, 법 개정 뿐만 아니라 수사 인력 증원도 절실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생태계 파괴될 수 있는데 처벌은 솜방망이
당국이 로치류 수입을 단속하는 건 생태계 파괴를 초래할 우려가 커서다. 전문가들 역시 밀수 개체가 유사종 간 교배로 토종종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검역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형욱 인천대 생명과학전공 교수는 "신고하지 않은 곤충이 자연으로 나가면 생태위협종이 돼 방제가 어려워질 수 있어 특별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개선을 위해서는 철저하게 수입을 신고하고 그에 대한 전문적인 관리 직종을 만들어서 양성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박현철 부산대 생명환경화학과 교수는 "생태를 잘 모르는 해충이나 곤충을 가져왔을 때 병원 미생물이나 세균, 곰팡이 등이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생태적으로 환경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된 먹이용 곤충을 많이 사육하고 있는데 잡식성으로 위생에 문제가 되는 바퀴벌레를 들여오는 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검역법이 전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편이지만, 과태료 등 처벌이 너무 약하다"며 "장기적으로 볼 때 환경 측면으로 문제가 될 것"이라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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