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아몬드'에서 세상에 분노로 가득찬 곤이 역 맡아
"'더 글로리' 손명오와 결 비슷해 고민…작품 좋아 선택"
"살아있는 생선 같은 '곤이' 보고 싶으면 제 공연 보셔야"
"뮤지컬 배우론 50점…지금부터 더 어려운 과정 남아"
[서울=뉴시스]김주희 기자 = "결이 비슷한, 폭력적인 인물이라는 것 때문에 좋은 작품을 놓친다는 건 배우로서 미련한 것 같았어요."
뮤지컬 '아몬드'에 출연 중인 배우 김건우가 27일 서울 종로구 예술가의집에서 열린 라운드 인터뷰에서 출연을 결심한 계기에 대해 "작품이 좋았다"며 이같이 밝혔다.
'아몬드'는 손원평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알렉시티미아라는 신경학적 장애를 지닌 소년 윤재의 성장기를 다룬다. 타인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윤재는 또래 소년 곤이, 자유로운 감성의 소녀 도라와 만나 변화를 겪고, 이를 통해 현시대에 필요한 공감과 소통의 의미를 묻는다.
김건우는 세상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찬 곤이 역을 맡아 무대에 오르고 있다.
김건우는 "윤재를 만나면서 곤이가 변화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췄다"며 "첫 등장신에 공을 많이 들였다. 카리스마 이상으로 '쟤는 상종하고 싶지 않은 아이'의 느낌을 잡으려고 거칠게 했다. 그래야 변화되는 과정이 더 잘 보일 것 같았다"고 자신의 연기 방향을 설명했다.
이어 "그 나이대처럼 보이고 싶지 않아 더 센 척하거나, 도라라는 친구에게 윤재의 관심을 뺏긴 느낌을 받고 그 나이 때만 할 수 있는 질투, 서운함을 더 표현하려고 했다"고 소개했다.
극 중 거리낌없이 욕설을 하는 등 매우 폭력적인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손명오의 캐릭터도 겹쳐 보인다.
김건우 역시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는 "이건 분명히 내가 극복해야 하는 과제"라며 "'자꾸 나를 손명오로만 본다'고 하기엔 그 드라마로 얻은 게 너무 많다. 그 이름을 가지고 오랫동안 살아갈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고 담담히 말했다.
그러면서 "'곤이' 역을 처음에 제안받았을 때도 (손명오와) 결이 비슷해서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그런 생각 때문에 좋은 작품을 놓친다는 건 배우로서 미련한 짓 같다. 작품이 좋아 선택했고, 그건 내가 가져가야 할 몫"이라고 강조했다.
폭력적인 이미지에 대한 우려에도, 이번 작품을 택한 건 '아몬드'가 주는 따뜻함 때문이었다.
김건우는 "소설을 읽었는데, 마음이 따뜻해지더라. 감정 표현 불능증이 있는 윤재가 조금씩 변화해가고, (감정을) 알아가려고 하는 과정이 뭉클했다"고 떠올렸다.
"평소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라고 자신을 소개했지만 무대 위에서 김건우는 거침없이 인물의 감정을 표현한다. 그는 "그때는 또 다른 스위치가 켜진다. 오히려 연기할 때가 편하다. (연기를) 시작하면 내가 연습하고, 준비했던 걸 그냥 해버리면 된다"고 말했다.
김건우의 뮤지컬 출연은 '빠리빵집', '그날들', '스윙 데이즈_암호명 A'에 이어 네 번째다.
뮤지컬 경력이 많진 않지만, 애정 만큼은 뜨겁다.
김건우는 "뮤지컬에 대한 매력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막상 해보니 더 엄청나더라. 한도 끝도 없이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매력이 있어 매료된 것 같다"고 말했다.
"컨디션 관리나 에너지부터 방송하는 친구들과는 느낌이 다르다"며 동료들을 향해 엄지를 든 김건우는 "처음에는 이야기를 하다가 노래를 시작하는 게 오글거렸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아름답게 느껴지고, 노래만 들어도 소름이 돋더라. 내가 이 무대에서 이걸 하고 있는 배우라는 게 영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뮤지컬이 주는 힘을 느낀 것 같다"며 눈빛을 빛냈다.
뮤지컬에 대한 무한 애정을 드러내면서도 '뮤지컬 배우 김건우'에게는 후한 점수를 주지 않았다. 학창 시절 줄곧 밴드부 활동을 하고, 연예기획사 가수 오디션에 1차 합격을 했을 정도의 이력에도 노래 실력을 더 채우고 싶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50점"을 매긴 김건우는 "노래는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해야하는 평균치가 있다. 그걸 넘어야 관객들이 정말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수준인데, 저는 아직 그건 안 된다"고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그러면서 "내가 생각한 속도보다는 다행히 올라왔지만, 갈 길이 남아있다. 지금부터가 더 어려운 과정"이라고 자신을 채찍질했다.
'뮤린이(뮤지컬+어린이)'를 벗어나기 위해 "일단 10개 작품은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목표도 밝혔다.
김건우는 "크게 화제가 된 뮤지컬은 아직 내가 할 수 없다.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라며 몸을 낮추며 "지금 유명한 뮤지컬을 저에게 준다고 해도 소화하지 못한다. 뮤지컬계에 들어온지 얼마 안 됐는데, 정도를 잘 밟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번 작품에서 곤이 역은 김건우 외에도 윤승우, 조환지가 함께 출연하고 있다. 윤승우, 조환지 모두 뮤지컬에서 잔뼈가 굵은 배우들이다.
줄곧 '뮤지컬 배우'로서 겸손한 모습을 보이던 김건우는 "'곤이'로서 승부를 보면 부족하지 않다"며 밝게 웃었다.
"곤이는 다듬어지지 않은 사람이다. 사포질이 덜 된, 세공이 안 된 느낌"이라며 "살아있는 생선 같은 인물을 보고 싶으면 제 공연을 보시면 된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영화와 드라마, 뮤지컬계를 오가며 활동하고 있는 그는 언젠가 연극 무대에 설 날도 꿈꿨다.
"연극에 대한 생각은 항상 있다"며 "(제안이) 없진 않았지만, 시기적으로 겹치거나 하며 연이 닿지 않았지만 언제나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매체와 무대를 오가며 활발히 활동 중인 김건우는 12월 14일까지 NOL 유니플렉스 1관에서 '아몬드'를 소화한다. 내달 1일 KBS2 드라마 '마지막 썸머' 첫 방송도 앞두고 있다.
"어떤 작품을 하고 싶거나, 어떤 배우가 되고 싶다기 보다 제 앞에 있는 작품 하나를 잘하는 게 제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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