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장관, 러트닉 상무장관과 2시간 협상
경제부총리 "선불 요구 막을 가능성 높아"
대미 금융패키지 투자 형태·지급 입장 차
트럼프, '선불' 재차 언급…신속 조성 압박
美 수출 2개월째 감소…車 관세 아직 25%
中 '마스가' 제재로 압박…트럼프, 이달 방한
"트럼프 강공책 지속…APEC까지 논의할 것"
[세종=뉴시스]손차민 기자 = 이재명 정부 경제·통상 수장들이 일제히 미국 현지에서 관세 후속 협상에 나서며 지지부진하던 협의가 급물살을 탔다.
미국 정부가 우리나라의 3500억 달러 대미 투자액에 대해 '선불(Up front)'을 고집하면서 관세 협의는 고착상태에 빠졌다. 경제팀이 총출동하며 극적 타결을 위해 머리를 맞댄 가운데 입장차가 좁혀질지 관심이 모아진다.
19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지난 16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과 2시간가량 협상을 진행했다.
김용범 정책실장을 필두로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정관 장관 등 관세협상 핵심 인사들이 트럼프 행정부와의 이견 조율에 본격 돌입했다.
관건은 3500억 달러 대미 투자금을 선불(Up front)로 지급하라는 미국의 요구에 대해 어떤 합의점을 마련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와 관련해 구 부총리는 지난 16일(현지 시간) "어제 주요 20개국(G20) 회의장에서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과 여러번 만났다"면서 "선불 지급 요구를 막을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지난 7월 미국은 한국에 대한 국별 관세 및 자동차 관세를 15%로 인하하고 반도체·의약품 등 품목별 관세에 대해 최혜국 대우를 약속했다. 이에 우리나라는 총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금융패키지 조성을 제시한 바 있다.
문제는 3500억 달러 대미 투자액의 투자 형태와 지급 방식을 두고 양국 간 입장 차이가 크다는 점이다. 이에 세부 사항 조율을 위해 최종 서명은 미뤄둔 상황이다.
통상 당국은 지난달에도 미국 현지에서 러트닉 장관과 만나 한미 관세협상 후속협의에 나섰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바 있다.
미국 정부는 직접 투자 비중을 높여 전액 현금 부담할 것을 요구했고, 우리나라는 직접 투자를 5% 정도로 두고 출자·대출·보증 등으로 채우려는 복안이다.
더욱이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선불(Up front)을 직접 거론하면서 신속한 펀드 조성을 압박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과 한국 모두 서명했다. 한국은 3500억 달러, 일본은 6500억 달러를 선불로 지급하기로 했다"며 "모두 동의했고, 모두 만족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일본 대미 투자액은 5500억 달러로, 잘못 언급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미 간 관세협상 후속협의가 답보 상태를 이어가면서, 우리나라 수출도 휘청이고 있다.
지난달 대미 수출은 1.4% 줄어든 102억7000만 달러로, 9대 주요 시장 중 유일하게 감소를 기록했다. 지난 8월 대미 수출도 12.0%에 급감한 87억4000만 달러였기에 2개월째 감소세를 이어가는 상황이다.
대미 수출 감소는 트럼프 정부 관세 정책 등 어려운 통상 환경의 장기화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대미 수출 주요 품목인 자동차에 대한 관세 부담이 가시화되고 있다. 지난달 미국으로의 자동차 수출은 19억1000만 달러로 1년 전보다 2.3% 감소했다.
우리나라와 미국 시장에서 경쟁하는 일본·유럽연합(EU)이 관세 협상을 마무리해 15%로 세율을 낮춘 점이 부담으로 작용한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15%로 자동차 관세를 낮추기로 지난 7월 합의했으나 아직 후속 협상이 마무리되지 않아 여전히 25%의 관세가 부과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대외적인 상황도 녹록지 않다. 중국이 우리나라의 한미 관세협상 지렛대인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를 두고 압박하고 있어서다.
중국은 최근 한화오션의 미국 자회사 5곳에 대한 제재를 발표했다. 이를 두고 미국 국무부는 "민간 기업의 운영에 간섭하고 미국의 조선 및 제조업 부흥을 위한 한미 협력을 훼손하려는 무책임한 시도"라고 반발했다.
중국 공세가 거세진 배경에는 미중 간 무역협상을 비롯해 한미 협상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많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한미 관세협상 후속협의가 마무리될 것이란 기대가 나오는 이유다. 이달 말 경북 경주시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에 트럼프 대통령은 29~30일께 방한할 것으로 대통령실은 내다본다.
김 장관은 방미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특정 시기를 예단하는 건 아니지만 APEC이 두 정상 만나는 기회기 때문에 양국 협상단 간에 이 기회 활용하자는 공감대는 있다"며 "다만 국익과 국민의 이해에 맞게끔 가는 게 훨씬 중요한 이슈"라고 밝히기도 했다.
백철우 덕성여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대외적으로는 트럼프 대통령은 강공책을 계속 펼치는 동시에 미국 행정부가 일부 물러서는 것처럼 보여주면서 중재안이 마련될 것"이라며 "APEC에서 대통령 간 협약식을 하는 이벤트가 나쁘지 않을 테니 그전까지는 논의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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