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시 질서유지·수사…경찰도 유독가스 노출 위험 있어
최근 5년 화재 사상자 53명, 안전장비 예산 총 12억여 원
여유 장비 위한 예산 확대 필요…"낭비라고 생각해선 안돼"
[서울=뉴시스]이수린 수습 기자 = #1. 한 지구대 일선 경찰관 A씨는 "화재 현장에 경찰이 소방보다 일찍 도착할 수도 있는데, 그럴 때는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들어가야 한다"며 "그러다 보면 안전에서 취약한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경찰도 마스크는 있는데 주 업무가 아니다 보니 소방과는 성능이 다르다"며 "현장에 가보면 화재로 인한 사망보다 질식 사망이 더 많다"고 말했다.
#2. 한 지구대 팀장 B씨는 "매트리스 등은 화재 연기가 독가스 수준이라 흡입하면 좋지 않다"며 "사실 들어가면 안 되는데 상황에 따라 들어가게 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B씨는 "전문 마스크는 없고 방진용 마스크는 있는데 써봐도 실질적 효과가 있는진 잘 모르겠다"며 "현장 근무자에게 안전장비가 잘 보급 되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화재 현장은 소방관 뿐 아니라 경찰관에게도 위험하다. 신고를 받고 시민 안전을 위해 가장 먼저 도착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 24일, 경기 화성시 아리셀 공장 화재 때는 경찰 6명이 일산화탄소 흡입으로 부상을 입었다. 당시 온라인에는 "현장에 효과도 없는 KF94 마스크를 쓰고 들어가라 했다"는 경찰기동대 내부의 폭로가 나오기도 했다.
9일 뉴시스 취재를 종합하면 통상 화재 신고 접수 시 보통 소방과 경찰이 공동으로 대응한다. 경찰은 주로 시민안전과 질서유지, 수사를 맡는다. 폴리스라인을 설정하고, 차량 진입로를 확보하고, 증인이나 증거를 찾는 식이다.
시민 대피를 위해 화재발생 현장 내로 들어가거나 순찰차에 비치된 간이소화기로 불을 초기에 진압하는 등의 상황에 놓이는 상황인데, 현재 경찰 장비로는 정작 출동 경찰들의 안전을 지키기에는 충분치 않다는 게 문제다.
◆화재 현장에서 다치는 경찰들…"장비 기준·예산 현실화해야"
경찰은 화재 정도에 따른 대응 매뉴얼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일선에서는 실제 현장에서 매뉴얼대로 움직이기 힘들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역경찰을 관리하는 한 경찰서 범죄예방대응과장 C씨는 "단독주택 화재면 구하러 들어가고 아파트 화재면 구하러 가지 말라는 식으로 다 규정할 수는 없다"며 "현장을 봐야 한다. 화재는 다양한 환경에서 다양한 이유로 발생한다"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 경찰이 화재 현장 가까이 다가갈 수 있고, 이 과정에서 경찰도 위험에 노출된다는 의미다.
지난 12월 직장인 전용 온라인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 한 공무원은 "화재가 크게 나서 타이어가 터지고 지붕이 무너지는데 경찰이 안전장구 하나 없이 가까이서 계속 사진을 찍었다"며 "안 다치려면 못해도 안전장구나 안전헬멧 정도는 지급해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적었다.
또 다른 글에서는 한 경찰이 "마스크 하나 쓴 지구대 인원에게 현장에 들어가 보고하라는 상황실이 넘쳐난다"고 했다.
현재 경찰에 주어진 재난안전장비로는 화재대피마스크, 안전모, 보건용 마스크, 방진용 마스크 등이 있다. 소방과 같은 산소마스크는 포함돼 있지 않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이해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지난 7월까지 화재 현장에서 안전사고로 다친 경찰관은 52명, 사망자는 1명이다. 이중 일산화탄소 중독, 연기 흡입 등으로 인한 부상만 8명이다.
'2026년 경찰청 정부안 사업설명자료'를 보면 재난안전장비 구매 비용은 전년과 같다. 화재대피마스크 1억4700만원, 안전모 1억7100만원이다. 보건용 마스크와 방진용 마스크 구매에는 2025년 본예산 기준 8억5800만원이 배정됐다. 총 11억7600만원으로, 단순 계산 시 약 13만명의 경찰 1인당 예산이 1만원도 안 되는 셈이다.
이 의원은 "경찰관들이 자신의 안전은 보장받지 못한 채 화재 현장에 투입돼 유독가스와 화염에 노출되고 있지만, 경찰 안전장비 관련 예산은 해마다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라며 "보호장비 기준과 예산을 현실화하고, 경찰관들이 안심하고 임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경찰도 화재 안전장비 필요해…"보호용으로 지급돼야"
화재 관련 재난안전장비 보급과 여유분을 위한 예산 확대가 필요하다는 게 경찰 내부의 중론이다.
한 경찰 관계자 D씨는 "대형 화재가 나면 갑작스럽게 몇만 명씩 투입돼 지급되는 장비로 하루하루 버티는 게 관건"이라며 "여유 예산이 더 많이 생기면 더 좋은 장비를 다양하게 시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안전을 위해 경찰 역시 화재 대응 장비를 갖추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소방관 출신인 채진 목원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화재를 진압할 때 경찰이 장비 없이 정보를 물어보러 오기도 하는데, 유독가스에 장기간 노출되면 건강에 해롭다"며 "방진마스크나 화재대피마스크 둘 다 유독가스를 막기엔 부족하다"고 말했다.
채 교수는 경찰의 안전장비 착용과 함께 화재 교육 등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시민의 안전을 더 잘 돌보기 위해서는 경찰 스스로가 먼저 안전해야 한다"며 "본인 보호용으로써 장비 지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경찰관들이 안전장비를 결국 사용할 필요가 없는 게 좋은 것"이라며 "여분 장비를 낭비라고 생각하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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