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지옥이었다"…소방영웅들 마음 보듬는 '이 병원'[같이의 가치]

기사등록 2025/08/25 01:01:00 최종수정 2025/08/25 06:46:24

한림대의료원 '위런위로' 통해 소방관 트라우마 치유

소방공무원 45%, 트라우마 경험…25%만 치료 받아

[서울=뉴시스] 한림대학교의료원의 기부 버추얼 레이스 '위런위로'는 상처 난 마음을 어루만지고, 건강한 삶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사진= 한림대학교의료원 제공)
[서울=뉴시스] 류난영 기자 = "다시 현장으로 돌아갈 겁니다. 그리고 제 모든 힘을 다해 사람들을 구할 겁니다."

구조사 김모(29)씨는 화재 현장에 들어설 때마다 그을린 잔해 속 검게 탄 시신에 대한 두려움과 무력감에 시달렸다. 그는 한림대의료원이 진행한 '소방관 트라우마 119아카데미'에 참여해 자신이 느꼈던 두려움과 무력감을 인정하고 소방관으로서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었다.

소방관 최모(51)씨도 현장에서 동료를 잃었을 때의 충격은 말로 다 할 수 없었지만, 해야 할 일이 남아있어 다시 일어서야 했다. 상담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많은 긍정적인 자원을 가지고 있는지 깨달았고, 불안감이 올라올 때 심호흡이나 좋아하는 음악 감상 등으로 대처하는 방법을 익혔다. 그는 "무엇보다 중요한 건, 혼자 짊어지려고 하지 않는 것"이라며 "동료들과 서로 의지하고, 힘들 때는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최근 무안공항 여객기 참사, 경북 산불 등 참혹한 현장이 잇따르고 있다. 그 속에서 우리 사회의 안전을 위해 목숨을 걸고 뛰어드는 이들이 있다. 바로 '숨어있는 영웅' 소방관들이다.

이들의 헌신 뒤에는 직무 특성상 겪게 되는 외상 후 스트레스(트라우마)라는 보이지 않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들의 마음의 상처는 쉽게 드러나지 않아, 방치될 경우 우울증이나 불면증 등 심각한 후유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소방관들은 직무 수행 중 참혹한 사고 현장 목격(36.07%), 잦은 사고 현장 출동(24.76%), 악성 민원 대응(19.03%), 동료의 부상 및 사망 목격(5.49%) 등 다양한 외상 사건에 노출된다. 이는 트라우마 발생 가능성을 크게 높이는 요인이다.

한림화상재단에 따르면, 소방공무원 1057명 중 무려 96%가 직무 특성상 트라우마 발생 가능성이 높다고 인식하고 있다. 이들 중 45%는 실제로 트라우마를 경험했지만, 이 가운데 25%만이 트라우마 치료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더 심각한 것은 84%의 소방공무원이 자신들을 위한 적합한 트라우마 치료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정신적 외상을 겪는 소방관에 대한 심리 지원 사업은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서울=뉴시스] 한림대학교의료원의 기부 버추얼 레이스 '위런위로'는 상처 난 마음을 어루만지고, 건강한 삶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사진= 한림대학교의료원 제공)
한림대학교의료원의 기부 버추얼 레이스(비대면 기부 마라톤) '위런위로'(WeRunWe路)는 상처 난 마음을 어루만지고, 건강한 삶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위런위로에서 발생한 수익금이 소방관들의 트라우마 극복에 사용되기 때문이다.

위런위로는 이러한 소방관들을 위한 희망의 빛을 비춘다. '위런위로'는 참가자가 3㎞, 5㎞, 10㎞ 중 원하는 코스를 선택해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달리고, 참가비 전액(3만원)을 사회에 기부하는 비대면 마라톤이다. 참가비는 전액 소외계층, 화상환자, 화재피해 소방관 등을 위한 치료비 및 복지 지원에 사용된다. 2021년부터 시작된 이래 총 4390명이 참여했으며, 누적 기부금은 약 1억3000만원에 달한다.

지난 2회부터 4회까지 총 9038만원의 기부금이 한림화상재단 소방관 트라우마 극복 프로그램에 전달됐다.

[서울=뉴시스] 한림대학교의료원의 기부 버추얼 레이스 '위런위로'는 상처 난 마음을 어루만지고, 건강한 삶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사진= 한림대학교의료원 제공)
'위런위로'는 단순한 달리기 행사를 넘어, 우리 사회의 숨은 영웅인 소방관들의 정신 건강을 지키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하고 있다. 한림대학교의료원은 화상전문병원을 운영하는 특성을 살려 산불 등 재난 현장에서 화상과 외상에 노출되는 소방관들의 정신적·신체적 고통에 주목했다.

이에 한림화상재단 및 서울소방재난본부와 협업해 소방관 트라우마 전문치료 프로그램인 '소방관 트라우마 119 아카데미'를 개발했다. 이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는 소방관들의 정신건강 회복을 돕는 전문적 케어 프로그램으로, 의료기관이 주도하는 사회적 치료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소방관 트라우마 극복 사업은 우리나라 최초의 병원 기반 소방공무원 맞춤형 심리상담 지원 사업으로, 지금까지 총 144명의 소방관에게 회복 지원을 제공했다.

윤희성 학교법인일송학원 이사장은 "극한의 상황에 노출돼 정신적 외상을 겪는 소방관들에 대한 관심은 우리 사회의 중요한 과제"라며 "위런위로를 통해 소방관들이 건강한 마음으로 다시 현장에 나설 수 있도록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하고, 앞으로도 이들의 헌신에 보답하기 위한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을 꾸준히 실천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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