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온 동네가 잠겨브렀어"…수마 할퀴고 간 함평 읍내 주민들 '망연자실'

기사등록 2025/08/04 13:01:32 최종수정 2025/08/04 14:48:24

허리까지 차오른 빗물에 전통시장 '아수라장'

"30분 만에 침수" 주택·상가 96곳 침수 피해

길거리 흙탕물·쓰레기로 뒤덮여 주민들 막막

[함평=뉴시스] 박기웅 기자 = 4일 오전 전남 함평군 함평읍 함평천지전통시장 인근 길목이 폭우에 떠내려 온 폐기물로 막혀 있다. 함평에는 전날 많은 비가 내리면서 주택 50가구와 상가 46곳이 침수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2025.08.04. pboxer@newsis.com

[함평=뉴시스]박기웅 기자 = "온 동네가 물에 잠겨브렀어. 한순간 허리춤까지 물이 차더니 이 지경이 됐당께"

4일 오전 전날 폭우에 주택과 상가 일대 침수 피해가 발생한 전남 함평군 함평읍 함평천지전통시장 상인은 자신의 가슴 높이까지 찬 침수 흔적을 보여주며 발을 굴렀다.

젓갈 장사를 하는 김유순(69·여)씨는 밤새 대피소에 머물다가 이른 새벽부터 가게를 둘러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시장이 온통 흙탕물에 범벅이 됐고, 김씨의 가게 젓갈과 집기류도 여기저기 흩어져 난장판이 됐다. 저장고 안까지 물이 들어차면서 보관해둔 젓갈도 모두 물에 잠겼다.

시장 인근 주택 역시 아수라장을 방불케했다. 냉장고와 세탁기, TV 등 가전 제품을 넘어지고 뒤집어진 채 바닥을 뒹굴었다. 지붕과 담벼락도 무너져 내렸다.

김씨는 "어제 저녁 8시30분께 한순간 물이 가슴팍까지 들어차 대피했다"며 "뉴스에서 수해를 입은 사람들을 보면 정말 안타까웠다. 살면서 나한테도 이런 일이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훌쩍였다.
[함평=뉴시스] 박기웅 기자 = 4일 오전 전남 함평군 함평읍 한 주택에서 집주인이 폭우 피해를 입은 집안을 살펴보고 있다. 함평에는 전날 많은 비가 내리면서 주택 50가구와 상가 46곳이 침수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2025.08.04. pboxer@newsis.com

시장 인근에서 육회비빔밥 장사를 하는 식당 주인 정덕임(65·여)씨도 "어제는 죽는 줄 알았다"며 공포에 몸서리를 쳤다.

정씨의 식당 역시 넘어진 테이블과 의자, 쏟아진 집기류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냉장고에 보관하고 있던 생고기 등 식재료는 모두 상했고, 음식물들은 뒤엉켜 있었다.

정씨는 "30분 만에 물이 찼다. 마을회관으로 대피했는데 거기도 침수됐다"며 "안전한 곳으로 가고 싶어도 가슴팍까지 물이 차 오도가도 못하고 무서워 벌벌 떨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식당 한 켠에서 홀로 생활하며 장사를 해온 그는 "이걸 혼자 어떻게 정리하느냐.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느냐"며 전기마저 끊긴 어두컴컴한 식당에서 눈물만 흘렸다.

잡곡을 판매하는 최엽내(75·여)씨는 "장날이라고 얼마 전 곡식과 씨앗(종자)을 잔뜩 샀다. 그게 모두 물에 잠겼다. 전부 다 버리게 생겼다"고 토로했다.

시장 인근 주택 골목길도 사람들이 오갈 수 없을 정도로 밤새 떠밀려 온 폐기물이 가득 쌓였다. 장날 준비를 위해 마련한 온갖 음식물 등이 쌓여 곳곳에서 악취가 풍겼다.
[함평=뉴시스] 박기웅 기자 = 4일 오전 전남 함평군 함평읍 한 음식점에서 식당 관계자가 침수 복구 작업을 벌이고 있다. 함평에는 전날 많은 비가 내리면서 주택 50가구와 상가 46곳이 침수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2025.08.04. pboxer@newsis.com

침수 피해를 입은 한 주택 복구 작업을 하던 주민은 "집 옆에 펌프장이 있는데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군청에서 아무도 나와보지도 않는다. 이 많은 쓰레기들을 치워줘야 할 것 아니냐"면서 분통을 터트리기도 했다.

시장과 읍내를 가득 채운 강물은 모두 빠졌지만 수마가 할퀴고 간 곳은 모조리 진흙과 쓰레기로 뒤덮여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읍내 상가 여기저기 물에 젖은 물품과 살림살이를 치우고 있지만 주민과 상인들은 "도저히 엄두가 나질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장길용(84)씨는 "상점 물품들이라고는 모조리 쓸 수 없게 됐다. 온 동네 길바닥이 쓰레기로 차고 넘친다"며 "아무리 치워도 티도 나질 않는다. 앞으로 어떡할 지 눈앞이 캄캄하다"고 말했다.

함평에는 전날부터 내린 폭우로 주택 50가구와 상가 46곳이 물에 잠겼으며 주민 32명이 침수·범람 우려에 인근 주민자치센터와 학교로 긴급 대피하기도 했다. 축사 침수도 발생해 닭 6만2000마리가 폐사한 것으로 잠정 파악됐다.
[함평=뉴시스] 박기웅 기자 = 4일 오전 전남 함평군 함평읍 함평천지전통시장 상인들이 흙탕물로 뒤덮인 거리를 청소하고 있다. 함평에는 전날 많은 비가 내리면서 주택 50가구와 상가 46곳이 침수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2025.08.04. pboxer@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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