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구의 시간'…전문가 "지반 약해 옹벽붕괴·산사태 재발 우려"

기사등록 2025/07/21 15:09:31 최종수정 2025/07/21 16:32:24

극한호우로 사망자 18명·실종자 9명

경보 하향·복구 전환에도 지반 불안정

전문가 "지반 약해져 옹벽 붕괴·산사태 재발 위험 커져"

[가평=뉴시스] 김선웅 기자 = 21일 경기 가평군 조종면 신상3리에서 폭우·산사태로 인한 잔해가 널부러져 있다. 2025.07.21. mangusta@newsis.com

[서울=뉴시스]최은수 기자 = 전국을 강타한 집중호우로 18명이 숨지는 등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위기경보가 하향되고 복구 작업이 시작됐다. 전문가들은 '복구의 시간'과 관련해 "집중 호우로 지반이 약해져 있어 산사태와 옹벽 붕괴 등 재발이 우려된다"며 선제적 대응을 촉구했다.

21일 행정안전부 국민 안전관리 일일상황에 따르면 지난 16일부터 20일까지의 집중호우로 18명이 사망하고 9명이 실종됐다. 산사태 피해가 컸던 경남 산청에서 10명이 숨졌고, 경기 가평에서는 2명이 사망했다.  충남 서산 2명, 경기 오산·포천, 충남 당진, 광주 북구에서 각각 1명씩 발생했다. 실종자는 산청과 가평에서 각각 4명씩 발생했다

정부는 전날 오후 6시 기준으로 위기경보 수준을 '심각'에서 '주의'로 하향 조정하고, 중대본 비상 3단계를 해제했다. 정부는 피해 복구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산사태와 침수로 지반이 약해진 상태에서 중장비와 인력이 투입되며 사고 현장 일대의 추가 피해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금부터가 2차 피해 위험이 본격화되는 시기라고 우려한다.

조원철 연세대 토목환경공학과 명예교수는 "1차 재난은 재해가 직접 발생한 순간이고 2차 피해는 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발생하는 2차적 재해를 의미한다. 비가 그쳤다고 끝난 게 아니"라며 "비로 흙이 고화 상태로 젖은 데다 기존 구조물들이 대부분 불안정한 상태여서 추가적인 외력이 작용하면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조 교수는 "올 봄 산불이 난 지역처럼 유기물이 소실된 지형은 흙 입자 간 결속력이 약해져 계곡을 따라 토사와 나뭇가지가 쌓이고 소규모 강우에도 하류가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기후변화에 따른 극한 강수도 구조물의 내구성을 위협하고 있다. 조 교수는 "옹벽 대부분이 오래된 설계 기준으로 설치돼 배수 기능이 부족하고, 이는 수평 압력을 높여 붕괴를 유발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산지는 대부분 암반이고 상부 표면에만 1m 가량의 얇은 토사가 얹힌 구조라는 것"이라며 "유동성 있는 토사가 빠른 속도로 흘러내리는 지형 특성상, 인명 피해를 줄이려면 기초를 포함한 2m 높이의 보호 옹벽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이번 피해 지역도 무너진 사면 옆이 불안정한 상태"라며 "중장비 진입이나 인력 접근 자체가 2차 붕괴를 유발할 수 있어 복구가 곧 위험요인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폭우 이후 이어질 폭염도 또 다른 위협 요소다. 이날 기상청은 북태평양 고기압 영향권에서 폭염이 더욱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며 오전 10시를 기준으로 폭염특보를 확대·강화했다.

이송규 한국안전전문가협회 회장은 "침수되거나 노출된 전기·가스·배수 설비가 폭염으로 인해 변형되거나 누전 위험에 노출돼 감전이나 화재, 싱크홀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특히 옹벽은 겉으론 멀쩡해 보여도 내부가 텅 비어 붕괴 직전일 수 있다. 대형차나 복구장비의 진동이 방아쇠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정부의 설계 기준이 현장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원철 교수는 "지금의 기반 시설은 대부분 옛 기준으로 설계돼 있어 기후 변화에 적합한 기준을 갖추지 못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수곤 교수는 "현재 기준은 암반 위에 얇은 토사가 쌓인 우리 지질 조건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지자체·산림청·국토부가 지질 조건에 맞는 정밀 설계를 다시 해야 한다"고 했다.

단순 복구를 넘어 주민 참여 기반의 재난 감시체계 구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수곤 교수는 "피해 지역은 24시간 모니터링 체계를 통해 추가 붕괴 가능성을 감시할 수 있어야 한다"며 "지자체 민방위조직을 활용해 주민이 실시간 위험 요소를 신고하고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송규 회장도 "기술적인 시스템 접근이 함께 이뤄져야 2차 사고를 막을 수 있다"며 "지금까지의 안전관리 대책으로는 기후 위기를 반영한 대응이 어렵다. 디지털 기반의 예측 시스템과 전문 인력을 활용한 복구 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schoi@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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