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김정근♥이지애 "사랑도 유튜브도, 잔불처럼 오래가길"

기사등록 2025/06/20 06:38:44
[서울=뉴시스] 김정근, 이지애. (사진=이지애) 2025.06.1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전재경 기자 = 2005년 가을, 서울의 한 아나운서 아카데미.

갓 MBC에 입사한 1년 차 남자 아나운서는 여자 아나운서 지망생들과 눈도 잘 마주치지 못했다. 수줍은 눈빛과 쑥스러운 기색. 그 모습이 한 여자의 기억에 선명하게 남았다.

"하얗고 순하게 생긴 남자가 여자 지망생들 눈도 못 마주치고 남자 지망생만 보더라고요. 그 모습이 뭔가 좋았어요."(이지애)

"그때 좀 부끄러웠어요. 화려한 여자 지망생들이 많이 왔는데, 저도 입사한 지 1년밖에 안 돼서 뭔가 특별히 알려줄 게 없었거든요. 그런데 다들 저한테 기대하고 있으니까 민망하더라고요."(김정근)

그렇게 시작된 인연은 연애로, 결혼으로 이어져, 어느덧 15년 차 부부가 되었다.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MBC·KBS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김정근(47)·이지애(44) 부부를 단독으로 만났다.

"여기가 저희 스토리가 있는 곳이에요. 연애 할 때 조용해서 자주 왔는데, 오빠는 기억도 못 하더라고요." 이지애의 말에 김정근은 "카페 오니까 이제야 생각나네요"라며 웃었다.

인터뷰 시작 전 주문한 음료가 나오자 김정근은 "빨대가 하트 모양이네"라며 신기해했다. 이지애는 "그런 거 하지 마~"라며 웃었다. 유튜브 속에서 보던 유쾌한 부부의 모습 그대로였다.
[서울=뉴시스] 이지애, 김정근. (사진=유튜브 채널 '애정기획' 캡처 ) 2025.06.1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지난 3월 두 사람은 유튜브 채널 '애정기획'을 열었다. 구독자들의 고민을 듣고 대화를 나누는 영상부터, 시장을 함께 걷고 음식을 즐기는 소소한 일상 브이로그까지. '애정기획'은 김정근·이지애 부부가 지금의 삶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공유하는 공간이다.

하지만 방송 경력 20년 차 부부에게도 유튜브는 여전히 낯설기만 했다.

"유튜브 영상 다시 보니까 교양 프로그램 같더라고요. 방송을 20년 동안 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아나운서 톤으로 진행하고 있더라고요."(이지애)

그러면서 이지애는 "유튜브가 저랑 잘 맞지 않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저도, 남편도 방송인 치고는 막 드러나는 걸 즐기지 못해요. 그래서 대본 없이 제 이야기를 꺼내는 게 굉장히 어렵더라고요."

김정근 역시 "유튜브는 어렵다"고 했다. 특히 부부의 사적인 이야기를 영상에 담는 일은 생각보다 조심스러웠다. 실제로 "한 영상을 내린 적도 있다"고 했다. 자극적인 제목이나 편집으로 오해가 생기면, 그 이미지가 그대로 굳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단정한 이미지를 기반으로 아나운서 생활을 해온 이들에게, 맨 얼굴의 영역인 유튜브는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

이지애는 "저희는 아나운서라는 이름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정돈된 모습을 익숙해 하세요. 그런데 제가 완전히 풀어진 모습을 보일 때 '이게 매력적일까, 사람들이 재미있어 할까' 확신이 없어서 계속 망설였던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이지애, 김정근. (사진=유튜브 채널 '애정기획' 캡처) 2025.06.1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부부는 첫 유튜브 촬영을 마치고 나서, 둘 다 "이불킥을 했다"고 털어놨다.

"촬영하고 나서 '오빠 이거 계속하는 게 맞을까?' 막 이랬어요. 왜냐하면 너무 TMI 같고, 제 얘기하는 거에 익숙하지가 않으니까"(이지애)

그런데 의외로 반응은 따뜻했다. '너무 솔직해서 공감된다' '두 분은 안 싸울 줄 알았는데 저희랑 똑같네요' '남편이랑 몇 개월째 말 안 하고 있는데, 두 분 이야기 듣고 위로가 됐어요' 등의 댓글이 달렸다.

"우린 촬영 후 이불킥 할 만큼 창피했지만, 누군가에겐 위로가 된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다시 힘을 내서 계속하려고 해요."(이지애)

"아직 유튜브에 막 댓글이 수백 개씩 달리는 건 아니지만, 하나씩 올라올 때마다 진짜 몇 번씩 읽어보게 돼요. 감사하죠. 저는 사실 아내보다 댓글을 더 많이 보거든요. 그런데 아내처럼 댓글에 답변을 달진 않아요. 그걸 하나하나 다 달면 괜히 이것만 바라보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그게 들킬까 봐요. 하하"(김정근)

부부가 '애정기획'을 통해 하고 싶은 건 잔불 같은 이야기다. 활활 타오르는 자극적인 콘텐츠가 아닌, 은은하게 오랫동안 곁을 지키는 그런 콘텐츠 말이다.

김정근은 "사실 저희 콘텐츠는 가끔은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 밍밍하다고 느끼실 수도 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게 가장 우리답고, 가장 지애답고, 또 가장 나다운 방식 아닐까 하고요"라고 말했다.

"예전에는 저도 뭔가 특별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쓴 적도 있었어요. 없는 모습을 꾸며보기도 했고요. 그런데 이젠 그런 걸 무리하게 욕심내고, 과하게 하려는 마음이 점점 줄어들었어요. 우리가 살아왔던 것들, 우리가 좋았던 경험들, 그런 걸 편하게 나누다 보면 또 비슷한 마음을 가진 분들이 공감해 주시고, 응원도 해주시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그냥 자연스럽게, 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보여주자는 마음이에요."

이지애는 이제야 비로소 ‘힘을 빼는 법’을 조금 알게 된 것 같다고 했다.

"방송을 한 지 20년 정도 됐어요. 예전엔 잘하고 싶다는 마음에 힘을 꽉 줬는데, 늘 그런 게 탈이 되더라고요. 뭔가 더 잘해보려고 애쓸수록 오히려 삐걱거릴 때가 많았던 것 같아요. 지금은 그냥 우리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을 만큼의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예쁘게 꾸미지 않아도, 솔직한 모습에서 누군가는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어요."

이어 "사실 구독자가 많지도 않고, 반응이 막 있는 것도 아니지만, 여력이 닿는 한 저희의 가치관대로 천천히 가보려 해요. 다행히 제작진 분들도 같은 마음이에요. 자극적으로 오버하지 않고, 힘을 빼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꾸준히 하자는 마음으로 채널을 이어가고 있어요"라고 덧붙였다.

그렇게 힘을 빼고 천천히 가는 마음은, 사실 오래전 두 사람의 연애 방식과도 닮아 있었다.

"저희가 연애 할 때 아침, 점심, 저녁을 다 같이 먹었어요. 하루에 세 번씩 만난 셈이죠. 제가 남편을 너무 좋아했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지애야, 활활 타오르는 사랑도 좋지만, 나는 우리 관계가 잔불 같았으면 좋겠어'라고 말했어요. 그땐 좀 섭섭했는데, 지금은 그 말이 무슨 의미였는지 알아요. 방송도, 유튜브도, 사랑도, 인생도 결국 잔불 같은 게 가장 오래가고 큰 힘이라는 걸요."
[서울=뉴시스] 김정근, 이지애 부부와 자녀의 모습. (사진=이지애) 2025.06.1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부부는 유튜브를 하는 가장 큰 이유로 자녀를 꼽았다.

"나중에 아이들이 크고 나서, '그때 엄마 아빠가 이런 고민을 했구나' 하고 영상으로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기장처럼 남는 거니까요. 아이들도 우리가 유튜브 하는 걸 좋아해요. '오늘은 뭐 찍었어?' 하고 먼저 물어보기도 해요."(김정근)

"아이들이 자기 모습이 유튜브에 나오는 걸 정말 좋아해요. 예전에 제가 '이지애TV' 할 때도 '엄마 유튜브가 제일 좋아'라고 하더라고요. 자기 어릴 적 모습이 영상에 담겨 있는 게 신기하고 재미있는 거죠. 그냥 스쳐 지나가는 줄 알았던 순간들이, 그렇게 추억으로 남는 걸 보면서 생각하게 됐어요. 지금 우리의 이야기들도 요란법석하고 지칠 때가 있지만, 이렇게 영상으로 남겨두면 언젠가 우리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또 누군가에게도 작지만 따뜻한 응원이 되지 않을까 싶더라고요."(이지애)

자연스럽게 인터뷰가 자녀 이야기로 넘어가자, 8살 딸과 6살 아들을 둔 부부의 눈이 유독 반짝였다.

이지애는 "정말 아이들이 주는 행복이 너무 커요. 아이들한테 받는 사랑은 제가 살아오면서 받아본 어떤 사랑보다 깊고 진해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아이를 키우면서 세상을 보는 눈도 바뀌었다"고 했다. "예전엔 미운 사람을 마주하면 그 사람의 영정사진을 생각했는데 아이 낳고는 '그 사람도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아기였겠지'라고 생각하면 쉽게 미워할 수 없겠더라고요." 이지애는 그러면서 미혼인 기자에게 "나중에 결혼하면 애 둘 낳으세요"라는 당부도 빼놓지 않았다.

김정근 역시 아이 이야기에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아이들과 아내, 우리 가족이 집 안에서 함께 깔깔 거리며 웃을 때마다 결혼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혼자 살았다면 이런 기쁨을 몰랐겠죠. 아기 키울 때는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이들이 너무 예쁘고, 덕분에 삶이 더 풍성해진 것 같아요. 가끔 농담 삼아 '한 10년만 젊었으면, 셋째도 더 예쁘게 키웠을 텐데'라는 생각도 해요. 우리 가족 넷이서 아침에 휴일마다 이불 위에 뒹굴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순간이, 저는 정말 좋고 감사해요."
[서울=뉴시스] 김정근, 이지애. (사진=이지애) 2025.06.1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김정근·이지애 부부의 말투와 눈빛, 표정에는 닮은 점이 많았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읽는 듯한 호흡까지. 천생연분이라는 말은, 아마 이런 모습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그렇다면 두 사람은 서로를 어떤 존재로 여기고 있을까.

이지애는 잠시 말을 고르더니 "남편이 없는 삶을 상상해본 적이 없어요. 가장 편안한 친구예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정근을 '영원한 짱가'라고 불렀다.

"아직도 남편한테 전화가 오면 제 휴대전화에 '짱가'라고 떠요. 2010년 연애하던 시절 제가 우울하다는 얘기를 했을 때 한걸음에 달려와 준 사람이에요. 그때부터 '짱가'라고 부르기 시작했죠. 지금도 저보다 앞서서 모든 걸 해주는 든든한 가장이에요."

김정근도 같은 마음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내는 더 소중한 사람이에요. 부족한 제 모습을 많이 보완해주는 사람이죠. 제가 배우기도 하고, 보듬어줘야 하는 사람이기도 해요. 결혼하고 하와이 신혼여행 갔을 때, '우리가 80살쯤 되면 하와이 다시 가서,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손잡고 다니면 좋겠다'는 얘길 나눈 적 있어요. 그때도 지금처럼 서로의 제일 친한 친구로 남아 있었으면 해요."

두 사람이 사랑을 이야기하는 사이, 카페 안엔 발라드가 흘렀다. 그 장면을 보고 있자니, 멜로 영화의 한 컷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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