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행정을 연결하는 '판단의 전문가'들을 이끄는 사람"
[창원=뉴시스]강경국 기자 = "상담사 ○○○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이 익숙한 인사말 뒤에는 치열한 전장이 있다. 하루 평균 2000통, 많게는 5000통까지 전화벨이 울리는 창원시 민원콜센터. 이 치열한 소통의 전쟁터를 총괄하는 사람, 바로 김지은(49) 매니저다. 2012년부터 콜센터 업무에 종사한 그는 현재 18명의 상담사와 함께 창원시민의 목소리를 가장 먼저 듣는 창구를 운영하고 있다.
디자인을 전공하고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김 매니저는 어머니와 함께 살기 위해 창원으로 내려왔다. 그렇게 우연처럼 시작한 콜센터 일이, 벌써 13년째다.
"당시 상담사 업무는 처음이었지만, 예전에도 사람을 많이 만나는 일을 했어요. 그런데 이 일은 상상 이상이에요. 진짜 하루하루가 스펙터클합니다."
◆창원 시정의 시작점, 민원콜센터를 아시나요?
창원시 민원콜센터는 시청과 구청, 보건소, 사업소의 대표번호(뒷자리 2114)를 일원화한 소통 창구다. 시정에 관한 거의 모든 전화가 이곳을 거쳐 간다. 그 문의가 단순하기라도 하면 다행이지만, 대부분은 목소리에는 답답함과 초조함, 절박함과 불만 등 좋지 않은 감정이 묻어있다.
이런 민원 내용을 듣고, 판단해서 가장 정확한 부서로 연결하는 게 이들의 일이다. 인공지능 발달로 콜센터 상담사가 자리 위협을 받고 있지만, 민원 콜센터를 인공지능(AI)이 대체할 수 없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기업 문의는 단순해요. 그런데 지자체 콜센터는 절대 인공지능이 대신할 수 없어요. 예를 들면 한 어르신이 농지과로 전화를 연결해달라고 전화를 했어요. 땅을 샀는데 그 앞에 사도로 통행해도 되냐는 문의였어요. 농지과도, 토지과도 아닌 무료 법률상담으로 안내했어요. 처음 문의 때와 최종 연결된 부서는 완전히 다른 부서인 경우가 많아요. 우리 상담사들은 공부와 경험을 통해 정확한 부서와 담당자를 찾아 연결하는 역할을 해요. 이걸 기계가 판단할 수 있을까요?"
◆시정을 읽고, 연결하고, 안내하는 콜센터의 모든 것
아무리 정확하게 안내해도, 화를 내는 민원인은 꼭 있다. "시에서 이런 것도 못 하냐, 내가 낸 세금이 아깝다"라며 한 통화에 15분씩 붙잡혀서 고함을 듣는 일이 일상이다.
"그래도 우리는 먼저 끊을 수 없어요. 끝까지 듣고, 민원인이 말 다 하고 끊거나, 우리가 '다른 시민을 위해 먼저 종료하겠습니다'라고 말한 뒤 조심스레 끊는 수밖에 없죠."
전화를 받지 않은 순간도 업무의 연속이기에 몸도 마음도 긴장 상태다. 밝은 목소리 뒤 감춰진 감정노동과 장시간 착석은 골반 종양, 난소암, 허리디스크, 청각 손상, 우울증 등 직업병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정작 상담사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은 따로 있다. 바로 '회피의 벽'과 마주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단순한 개인의 태도 문제가 아니라, 명확하지 않은 업무 분장과 시스템 미비에서 비롯된다고 김 매니저는 지적한다.
"청소 민원 하나를 처리하는데 다섯 부서를 넘겨야 했어요. 부서마다 입장이 달라 1시간 동안 상담사가 여러 곳에 확인을 읍소할 때가 있어요. 콜센터에서 일차적으로 민원이나 궁금증을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전체 전화의 38%만 부서에 연결합니다. 콜센터가 시정의 시작점이자 최적의 방향을 찾아주는 길잡이라는 인식이 절실합니다."
이토록 고된 일을 13년째 해오고 있는 이유는 뭘까. 김 매니저는 "힘들지만, 내가 누군가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는 확신이 있다"고 말했다.
창원시 민원콜센터는 단순한 전화 응대 기능을 넘어선다. 독거노인 안부 확인 서비스인 '안심콜'을 함께 운영한다. 현재 246명의 어르신과 정기적으로 통화하며, 이들의 말벗이 되어주고 필요시 행정서비스로 연계하는 역할을 한다. 상담사들은 어르신의 특성과 건강 상태를 전산에 꼼꼼히 기록하고, 다음 통화 때는 "지난주에 무릎 아프셨다고 하셨는데, 좀 나아지셨어요?"라며 안부를 묻는다. 그 말 한마디에 어르신들은 "날 기억해줘서 고맙다"며 웃음을 되찾는다.
김 매니저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2023년 1월의 한 전화를 꼽았다. 손선미 상담사는 평소와 다름없이 어르신께 전화했고, 전화벨이 오래 울리는 상황을 이상하게 여긴 가족이 마비 증상을 보인 할머니를 일찍 발견해 119를 불렀다. 이 사연은 '안부 전화 한 통이 사람을 살렸다'는 손주의 글을 통해 알려졌다.
◆단순 응대 그 이상, 전문직으로서의 콜센터 상담사
매일 고통과 감동과 보람이 있다는 김 매니저는 "힘들지만, 이 일과 성격이 잘 맞다"고 말했다. 김 매니저는 자타공인 '판단력 빠른 사람'이다. 성격도 딱 부러진다. 강성 민원 전화가 오면 상담사가 당황하지 않게 중간에서 '끊으라'고 지시해 준다.
"그때 상담사들이 제게 책임이 넘어가니까 안심하죠. 저는 괜찮아요. 저는 그런 전화 많이 받아봤거든요."
상담사들도 김 매니저를 믿고 따른다. 회식도, 단합대회도 없다. 김 매니저는 "우리 상담사들은 대부분 '내향적인 아이(I)' 성향이에요.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어 해요. 저도 마찬가지"라며 감정 노동자의 업무 특징을 고려한다고 말했다.
그의 힐링 방법은 걷기다. 감정도 쉼이 필요하다는 그는 음악을 들으며 진해 광석골을 혼자 걷다 보면 다시 에너지가 차오른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김 매니저는 시민들에게 작은 부탁을 전했다. "콜센터 상담사도 사람입니다. 창원시를 사랑하는 시민이고요. 전화기 너머에 있다는 이유로 막 대하지 말아주세요. 우리가 할 수 없는 것도 있고, 잘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전화 한 통으로 모든 것이 바뀌진 않는다. 하지만 그 전화기 너머에서 누군가는 누군가의 삶을 조금 더 나아지게 하려 오늘도 귀를 열고 있다. 그 한가운데서 부드럽게, 그러나 단단하게 조직을 이끄는 사람, 김지은 매니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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