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문화행사 업무 10년 차…'축제 베테랑' 돼
진해군항제·마산가고파국화축제, 차별점 있어
축제 때마다 불거지는 주차 문제에…땅 관심↑
공무원 사회에는 화려한 조명을 받지는 않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경험을 쌓으며 공직의 가치를 지켜온 '창원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뉴시스는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공무원을 발굴해 조명하는 기사를 10회에 걸쳐 진행한다.[편집자주]
[창원=뉴시스]강경국 기자 = 4월이 되면 관광 추천 장소로 빠지지 않는 대한민국 대표 벚꽃 축제 ‘진해군항제’. 이 시기 창원시 진해구에는 300만~400만명의 관광객이 모여들어 만개한 웃음꽃 또한 장관을 이룬다. 진해의 봄을 더욱 빛나게 만들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 흘리는 이들이 있다. 올해로 여섯 번째 진해군항제를 준비하는 창원특례시 문화관광체육국 관광과 이동근(45) 주무관도 그중 한 명이다.
◆"벚꽃은 자연의 힘, 군항제는 보이지 않는 창원시 공무원들의 힘"
어느덧 축제·문화행사 업무 10년 차가 된 이 주무관은 기획부터 운영, 현장 관리까지 전 과정을 몸소 겪은 '축제 베테랑'이다. 2008년 공무원으로 첫발을 내디딘 그는 2014년 문화관광과에 발령받으면서 축제와 인연이 시작됐다. 축제 업무는 보통 업무강도가 높아 꺼리는 부서지만, 그는 이례적으로 10번의 진해군항제와 마산국화축제를 치렀다.
"전국에서도 유명한 대형 축제를 봄·가을마다 치른다는 게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6개월만 더 해달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뿌듯했어요. '네가 필요하다'는 말을 듣는 게 인정받는 것 같아서 좋았거든요."
이 주무관은 2018년 창원문화재단으로 파견을 나가 창원조각비엔날레와 문신탄생100주년 행사를 전담하며 예술 분야의 새로운 경험을 쌓았다. 그리고 2023년 다시 축제팀으로 돌아왔을 땐 '내 그라운드다'라는 생각과 동시에 '이제 꽃이 없어도 축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긴장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여파로 4년 만에 열리는 진해군항제를 추진하면서 축제가 많이 바뀌었다는 걸 정말 실감했어요. 이제는 꽃만 감상하는 축제가 아니라,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해야 하더라고요. 특히, 작년에는 진해군항제와 마산가고파국화축제 모두 개화 지연으로 어려움을 겪다 보니 콘텐츠 중요성이 더욱 커졌죠."
◆'기후 위기와 축제, 개화 시기에 맞춰 변화하는 군항제'
2019년까지 진해군항제 축제 기간은 4월1일부터 10일까지로 고정돼 있었다. 하지만 기후 변화로 인해 벚꽃 개화 시기를 예측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올해는 기상청의 20년 데이터를 분석해 벚꽃 만개 시기에 맞춰 3월28일 군항제 개막식을 연다.
이 주무관은 진해군항제와 마산가고파국화축제는 전국 어디에서나 열리는 흔한 꽃 축제가 아니라는 점을 몇 번이나 강조했다. 군항제는 군항과 해군을 결합한 세계에서도 유일무이한 꽃 축제이고, 국화축제는 국화 전시를 넘어 지역성을 띤 작품형 꽃 축제라는 차별점이 있다는 것.
이런 이유로 이 주무관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진해군항제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행사로 승전행차 퍼레이드(4월4일 오후 5시 북원로터리)와 3일간 열리는 군악의장 페스티벌(4월4~6일)을 꼽는다. 이 외에도 젊은 층을 겨냥한 EDM(일렉트로닉 댄스 뮤직) 페스티벌과 밴드 공연, 가족 단위 체험형 콘텐츠도 추천했다.
"이제는 꽃만 보고 즐기는 시대가 아니에요. 벚꽃 개화 여부와 관계없이 관광객이 찾을 수 있도록 군항제도 산업화가 필요합니다. ‘체리 블라썸 뮤직 페스티벌’처럼 유료 콘텐츠를 도입하고, 숙박형 크루즈 운영 등 관광객이 머물며 소비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해요."
"죄송합니다. 잠시만요."
인터뷰 중간중간에도 이 주무관은 휴대전화를 들었다 놨다 엎었다 하며 놓지를 못했다. 문득 최근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뭘까 궁금했다. "죄송합니다. 잠시만요"라고 말한 뒤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이 주무관이 축제 준비를 하면서 가장 자주 하는 말은 "남는 땅 없나요?"였다. 축제 때마다 불거지는 주차 문제 때문이다.
"국화축제는 인근 마트나 백화점 주차장을 임차해서 주차장으로 활용했지만, 진해는 유휴 부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주차 공간을 찾는 게 정말 어려워요. 개인 사유지까지 협의해서 활용하고 있지만, 늘 부족해서 최근 만나는 사람마다 '남는 땅이 있는지' 묻고 있습니다."
그는 올해 대야지구 아파트 건설 현장을 주차장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예산 문제로 고민이 크다.
대부분의 축제가 그렇듯 관광객이 찾는 기간은 10일에 불과하지만, 본격적인 준비 기간은 2~3개월에 달한다. 남들이 즐길 때 일해야 하는 업무 특성상, 이 주무관은 가족과 봄·가을 나들이를 제대로 다녀본 기억이 거의 없다고 했다. 축제를 마친 후 느끼는 보람이 그를 다시 이 자리로 불러왔다.
"새벽에 나서고 밤늦게 들어가는 일상의 반복이 힘들지만, 끝나고 나면 개운해요. 매년 4월이면 전화기가 고요해지고, '아, 또 하나의 축제를 끝냈구나' 하는 뿌듯함이 밀려옵니다."
하지만 고민도 함께 따라온다. 이 주무관은 언젠가부터 축제·행사 업무만 하다 보면 시야가 좁아질까, 확장성에 한계가 있지 않을까를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창원조각비엔날레 업무 경험이 축제 기획에도 많은 도움이 됐어요. 다양한 업무를 경험하면 다시 축제로 돌아왔을 때 더 넓은 시야로 기획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의 헌신이 있어야 축제는 온전히 빛날 수 있다. 화려한 벚꽃 뒤, 수많은 고민과 노력 끝에 오는 29일 진해군항제가 열린다. 시대가 변하면서 축제의 모습도 달라지고 있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사람들에게 잊지 못할 순간을 선물하고 싶은 이 주무관의 마음이다. 창원시 축제팀이 정성 들여 준비한 축제는 올해도 많은 이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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