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목 '당신을 잊은 사람처럼'
[서울=뉴시스] 이수지 기자 = 사람과 사랑 사이에 이 한 권의 책이 놓여 있다. 아름답고 찬란한 빛의 찰나를 얘기하는 책이 아니라 그 빛의 밝음이 꺼지고 그 환함의 전등이 완벽하게 소등된 이후의 깜깜함에서 시작하고 끝이 나는 책. 그러나 반복되는 시인의 부정이 야기하는 긍정의 힘을 믿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당신을 잊은 사람처럼'은 시인 신용목이 등단 16년 만에 펴냈던 첫 산문집을 8년 만에 다듬어 새로 낸 산문집이다.
"어떤 사건이 지나간 자리에 남는 것은 특별한 깨달음이나 확신이 아니다. 어떤 사건도 ‘의미’를 남기지 않는다. 아니 깨달음이나 절망감은 그 사건이 환기하는 것, 이를테면 근원을 에워싼 냄새처럼 그 사건에 종속된 무언가에 불과하다. 우리가 말하는 ‘의미’ 너머에 있는 것은 언제나 ‘사물’이다. 사건이 지나간 자리이자 거기 남은 것으로서의 몸. 엇갈리는 세계에서 꿈과 현실이 유일하게 나눠가진 몸, 여전히 그리고 영원히 상상과 실제가 함께 사용하게 될 그 몸 말이다. 인간의 마음이 아무리 많은 미지를 거느린다 하더라도 그것들은 몸을 통해서만 현실로 들어올 수 있다. 허공에 숨어 있는 음들이 목소리를 통해서만 당신의 이름으로 바뀌는 것처럼, 몸은 과거와 미래가 함께 쓰는 시간의 현장이며 세계 자체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나간 일은 마치 꿈처럼 지나갈 일이 되어 내 몸 어딘가를 떠돈다. 몸은 하나의 사건을 다시 겪는 장소이며, 다시 겪는 장소에서 새로워지는 사건 자체가 되기도 한다. 몸이 우리가 겪을 수 있는 유일한 사건이다."(책 속에서)
◎공감언론 뉴시스 suejeeq@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