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이수지 기자 = "밥은 '정'(情)입니다. 초코파이처럼"
사단법인 '다나'(다함께 나누는 세상)를 이끄는 탄경스님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에는 캐릭터 '카피바라'가 담겨 있다. 서울 종로에 자리한 다나 사무실 내 탄경스님의 집무실 한편에는 카피바라 캐릭터 스티커가 붙은 구호물품들이 쌓여있다.
남미 초원지대에 사는 대형 설치류 카피바라는 정이 많아 다른 동물들과 친하게 지내는 동물로 유명하다. 어떤 동물들이 와도 다 받아주는 카피바라의 매력에 빠진 탄경스님은 이 단체의 캐릭터로 삼았다.
"1000만 사람들에게 밥을 주고 1000만 사람들에게 공부하는 배움의 길을 열어주고 1000만 사람들에게 병구완, 아픈 사람이 병을 낫게 도움을 주는 게 제 소원입니다."
1000만 명을 위한 밥, 배움, 병구완이 탄경스님의 발원(發願 부처님에게 자기가 할 일을 맹세하는 것)이 된 이유는 누구나 평등하게 누려야 하는 권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간으로서 기본적으로 평등해야 될 것들이 몇 가지가 있거든요. 먹거리, 배움, 그리고 아픈 사람들이 병 나아야 하는 것이죠. 누구나 먹을 권리가 있으니 잘 먹는 게 기본이죠. 누구나 배울 권리도 있고 아팠을 때 병구완 받을 권리도 있죠."
지난 2005년 파키스탄 지진 구호활동부터 시작한 이 단체는 국내에서는 지역아동센터 지원, 무료급식소 운영, 노숙인 먹거리 나누기, 해외에서는 파키스탄, 스리랑카, 네팔, 태국, 미얀마 등에서 구호활동, 교육 지원 등 국내외에서 다양한 복지사업을 펼치고 있다.
탄경스님이 나눔의 길에 들어서게 된 계기는 파키스탄 지진 이재민 구호 활동을 하면서부터다. 당시 탄경스님에게 출가 후 수행은 너무 힘들었다.
탄경스님은 1993년 진해 대광사에서 설담 운성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중앙승가대학을 졸업하고 대광사 주지로도 일했다.
"불교학생회를 통해 출가하게 되고 참 좋았죠. 그런데 출가 후 방황도 하고 힘들어서 많이 헤맸죠. 2005년도쯤 됐을 거예요. 그때 파키스탄 지진이 났거든요. 서울에 있는 한 절에서 있었는데 그곳에서 봉사활동을 한번 가보라 하더라고요."
탄경스님은 파키스탄에서 현지 젊은이들과 약 보름간 봉사활동을 하면서 가장 행복했다. "(봉사활동을 하는) 그때는 몰랐는데 일을 마치고 나서 마지막 날 혼자 앉아서 마을 앞산을 보고 앉아 있는데 출가해서 이렇게 행복했던 적은 없더라고요. 출가하고 어떤 길을 가야 할지 몰랐던 거죠. 이제 '아, 이게 내 길이구나' 생각하게 된 거죠."
노숙인 먹거리 나누기는 한 노숙인과의 만남으로 시작됐다. "종각 근처를 지나다 술 마시는 노숙인에게 '몸에도 안 좋은 술을 왜 마시냐' 물으니 그 노숙인이 '너나 잘해'라고 하더라고요. '내가 명색이 스님인데 노숙인이 내게 이렇게까지 말할 수 있나' 싶었죠. 그때부터 저들에게 필요한 것은 한마디 말보다 진심으로 다가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그들에게 나눔을 시작했죠."
탄경스님이 지난 2016년부터 시작한 노숙인 먹거리 나누기 사업에서 먹거리는 두유 뿐이었다. 이후 탄경스님이 '노숙인의 친구'로 알려지고 후원자와 후원단체가 생기면서 초코파이, 과자, 라면 등 간식부터 밥까지 먹거리가 늘었다.
탄경스님은 현재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이 사업을 하고 있다. 화요일에는 서울 종로 조계사 경내 주차장 옆에 세운 밥차에서 노숙인, 독거노인을 위해, 금요일에는 광화문, 시청, 남대문, 을지로 입구 등 지하도에 노숙인을 위해 하고 있어 나눔 대상도 늘었다.
복지사업도 늘고 있다. '다나'는 지난 6월 창원특례시 진해구 18개 아동센터에 매달 생리대, 쌀 등을 지원했다. 그중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진해 여학생들을 지원하는 생리대 나눔은 내년 1월부터 경주 지역 취약계층 여학생들까지 확대될 예정이다.
'무한 나눔'을 실천하는 탄경스님에게 가장 힘든 것은 돈 있는 사람들이 가끔 밥차를 찾아올 때다.
"입은 옷이나 신발을 보면 표가 나게 돼 있어요. 얼굴색도 돈 있는 사람은 다르거든요. 지금 여기에 밥 먹으러 온 사람들은 돈이 없어 한 끼를 제때 못 먹는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 것을 뺏어 먹겠다 하면 안 되죠."
탄경스님은 돈 있는 사람들이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과 공감하는 사회, 그래서 나눔으로 이어지는 사회가 되길 소원했다.
"남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느껴줬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죽을 때 입는 옷은 주머니가 없습니다. 아무것도 못 가져갑니다. 내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준다고 그 재산 보전하는 거 한 번도 못 봤습니다. 나누고 갑시다. 살아 있을 때 서로 나누고 이해하고 똥폼 안 잡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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