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군 가자 민간인 희생 위험 평가도 엉성했다"

기사등록 2024/12/27 10:05:13 최종수정 2024/12/27 11:03:42

사후 평가도 제대로 안되고 오판 처벌도 거의 없어

[가자지구=AP/뉴시스]지난 4월2일(현지시각) 가자지구 데이르 알발라에서 '월드센트럴키친'(WCK) 차량이 이스라엘의 공습을 받아 구호 요원 7명이 숨졌다. 이 작전을 지휘한 이스라엘군 장교 2명이 직위 해제된 것이 이스라엘군이 민간인 공격 책임을 물은 거의 유일한 사례다. 2024.12.27.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14개월 넘게 계속된 하마스와의 전쟁에서 이스라엘 정보 장교들은 정확한 식별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공습으로 희생당할 수 있는 민간인 숫자를 평가하는 단순 모델을 일상적으로 사용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6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이스라엘 정보 장교들은 가자 지구를 620곳으로 나누고 휴대폰 통신탑에서 중개되는 음성통화와 와이파이 사용량을 측정한 뒤 이를 전쟁 전의 과 비교해 각 구역에 남아 있는 주민들이 어느 정도인지를 평가했다.

특정 빌딩 안의 민간인 숫자는 인접 건물에서 전쟁 전 거주자 중 피난한 주민의 비율을 산출해 적용했다.

◆결함 있는 희생자 평가 모델

이 같은 방식은 막상 공습 때가 되면 이미 늦은 정보가 된다는 문제가 있다. 민간인 희생 평가가 이뤄진 것보다 몇 시간 지나서 공습하는 경우도 잦았다.

지난해 11월 이스람 지하드의 자금책을 공습한 사례에서 정보장교는 7시간 전에 작성한 민간인 평가 자료를 넘겼고 이 공습으로 2명의 여성이 숨졌으나 현장에 없던 표적은 살아남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또 전기 공급과 통신망이 끊기는 일이 다반사인 가자에서 휴대전화 사용을 기반으로 희생자 발생 위험을 평가하는 방식은 전기 공급과 통신망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가설에 입각해 있다는 근본적 결함이 있다.

전화 신호를 근거로 위치를 특정하는 방식도 정확도가 떨어진다. 또 여러 명이 모여 있을 가능성도 자주 무시됐다.

미 합동특수작전사령부가 지난해 11월부터 이스라엘의 표적 식별 방식에 대한 우려를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또 이스라엘 군 내부에서도 경고가 나왔다. 그러나 적어도 전쟁 초기 몇 주 동안은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고 사후 민간인 피해 평가조차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사후 평가에서도 민간인 희생자를 따로 세지 않으면서 희생자 평가 모델이 제대로 된 것인지를 평가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지난해 11월16일 이스라엘군이 가자 시티의 주거지를 공습한 사례가 모델이 부정확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하터널 입구를 파괴하기 위해 큰 주택을 공격했다. 전쟁 전 16명의 일가가 거주하던 곳이었으나 전쟁 직후 12명이 늘어났고 공습 시점에는 65살 할아버지부터 2살 손녀까지 52명이 있었다고 한다.

전쟁이 벌어지면서 이웃은 대부분 피신한 상태였다. 통신량을 근거로 거주자를 평가한 방식에 따라 건물 안에는 몇 사람만 남았을 것으로 평가됐다.

이에 더해 공습 직전 가자 지구 전체에서 통신이 두절됐다. 결국 평가 모델에 따라 전쟁 전 거주자 모두가 건물에 남아 있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가 이뤄진 것이다. 통신이 다시 개통된 3일 뒤 건물 이 폭격됐다. 폭격으로 42명이 숨지고 10명 만 생존한 것으로 전해진다.

◆느슨한 통제와 처벌 부재

약 2개월 전 이스라엘군 수천 명의 피난민이 머물고 있는 가자 중부의 병원을 공격했다. 이때 발생한 화재로 여러 명이 불에 타 숨졌다.

이스라엘군은 하마스 지휘소를 노린 미사일 공격이었다며 병원 내부에 탄약고가 있어 화재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과 11월 최대 1만5000발의 포탄을 투하하던 이스라엘군의 공습이 지난 2월~5월 사이 2500개 이하로 줄었다. 또 이스라엘군은 교전 수칙도 다시 강화했다.

지난해 11월5일 이스라엘군 지휘부는 이스라엘 보병에 직접적 위협이 되지 않는 하급 전투원을 노린 공격에 민간인 10명 이상이 희생될 위험이 있는 경우 특별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선언했다. 지난 1월 말부터는 고위급 하마스 지휘관 공격을 제외한 모든 공격을 승인받도록 했다.

이마저도 전쟁 발발 이전과 비교하면 매우 느슨한 수준이다. 중간급 장교가 민간인 10명 이내의 희생자가 발생할 수 있는 공격을 승인할 수 있게 돼 있다.

그럼에도 기준보다 훨씬 더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경우가 많다.

지난 7월 이스라엘이 무함마드 데이프 하마스 사령관을 노려 여러발의 미사일을 발사했다. 에어워스에 따르면 이 공격으로 57명이 사망했다.

이스라엘 장교들은 민간인 희생에 따른 책임을 지는 경우도 거의 없다. 지금까지 처벌된 장교는 외국 자원봉사자들을 전투원으로 오인해 드론 공격한 사건을 지휘한 2명뿐이다.

이스라엘군은 합동참모본부에 설치된 위원회가 수백 건의 공습 사례를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소된 사람은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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