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재정법·과학기술기본법 개정안 국무회의 의결…국회 심사 남아
탄핵 정국 속 국회 통과 난망…尹 대통령 재가 등 절차적 정당성 우려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기획재정부는 10일 국무회의에서 R&D 예타 폐지 이행을 위한 국가재정법과 과학기술기본법 개정안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예타 폐지는 지난 5월17일 진행된 2024년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처음으로 공식 언급됐다. 특히 당시 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R&D 예타 전면 폐지 및 투자 규모 확충을 주문하기도 했다. 이후 정부는 지난 8월까지 국가재정법·과학기술기본법 개정안 마련에 나섰고, 법제처 사전컨설팅, 관계부처 협의, 법제처 심사, 국무·차관회의 등을 거쳐 국무회의에 개정안을 상정했다.
예타 제도는 대규모 국가재정 투자 전 사전 타당성을 검증하기 위해 1999년에 도입됐는데, R&D 분야는 지난 2008년부터 예타 대상에 포함됐다. 기존에는 기재부가 R&D 예타까지 도맡았으나 2018년부터는 기술변화에 신속히 대응해야 하는 R&D의 특수성을 고려해 과기정통부가 R&D 예타 제도의 운영을 위탁받았다.
과기정통부 위탁 후에도 기획부터 예타 통과까지는 평균 2~3년 이상이라는 적지않은 시간이 소요됐다. 이번 R&D 예타 폐지 이유를 두고도 정부는 국가 차원의 전략적 대규모 투자를 보다 빠르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예타는 미래수요(편익)에 대한 예측가능성을 기반으로 타당성을 평가하는 제도인데, R&D는 '불확실성'이 큰 분야로 예타 제도로 평가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번 법 개정안이 완전 통과된다면 국가R&D사업과 R&D 수행에 필수적인 건설공사 사업은 예타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와 함께 R&D 예타제도를 대체할 심사 제도 등이 새롭게 도입된다.
신규 심사 제도는 크게 2가지로 나뉜다. 기초·원천 분야 대규모 연구형 R&D는 '사전기획점검제'가 도입돼 기존의 예타 통과 대기 기간 없이 곧바로 사업 예산을 편성받을 수 있게 된다. 이를 통해 예타 대비 약 2년 이상 빠르게 사업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정부의 기대다.
대형 가속기 구축, 우주발사체 개발 등 구축형 R&D 사업은 실패 시 매몰비용이 큰 만큼 예타 폐지 이후에도 '맞춤형 심사제도'가 보완 방안으로 도입된다. 사업 유형 및 관리 난이도에 따라 차별화된 심사를 적용하는 것이 골자다. 단순 장비도입은 신속심사를 적용하지만, 보다 복잡한 대형연구시설 구축의 경우에는 단계적 심사까지 진행한다.
국회가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정국으로 접어들고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으면서 비교적 정쟁과 무관했던 과학기술, ICT(정보통신기술) 정책도 함께 소용돌이에 휩쓸리게 됐다는 우려가 계속되고 있다. 윤 대통령 탄핵 소추를 두고 여야의 극한 대립이 계속되면서 법안 처리가 뒤로 밀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타 폐지의 경우에는 당장 윤 대통령이 지난 5월 직접 언급하며 제도 추진을 주문했다는 점에서 정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적지 않다. 특히 이번 법 개정안들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정부 입법안'인 만큼 대통령의 재가가 필요하다는 점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윤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지 않은 만큼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법안은 윤 대통령 재가를 거쳐 대통령 명의로 국회에 보내질 수밖에 없다. 법제처에 따르면 대통령 재가는 국회에 정부 입법안을 제출하기 위한 필수 요건으로 여겨진다.
계엄 선포 및 해제 이후 야당은 윤 대통령에 내란죄를 적용해야 하며, 대통령 직무에서 즉시 배제해야 한다고 강경하게 비판해왔다. 결국 윤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대통령 명의로 국회에 보내지는 예타 폐지 관련 법안들이 탄핵 논란으로 인해 절차적 정당성에 휘말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입법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할 가능성도 있다.
이미 이번 정기국회 기간 내 통과가 기대됐던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법률안(AI 기본법)과 단통법(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 폐지안 등도 탄핵 정국의 여파로 국회에 묶여있는 가운데 예타 폐지 법안도 같은 길을 걷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R&D 예타 폐지를 두고 과기정통부는 "R&D 예타 조사 폐지로 우리나라의 선제적 기술 확보 및 경쟁력 강화를 적기에 집중 지원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될 것"이라며 "이를 통해 국가의 혁신을 견인할 3대 게임체인저 기술(AI-반도체, 첨단바이오, 양자) 개발 및 미래성장동력인 국가첨단전략산업 육성 등을 위한 골든타임을 확보함으로써 우리나라가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에서 앞서나갈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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