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합격' 발표 임박인데…의료계 "모집 중단" 고집, 왜?

기사등록 2024/12/02 17:51:27 최종수정 2024/12/02 18:40:15

"의대교육 질저하 결국 환자 피해로"

"의대교수 늘렸다 줄였다 반복 못해"

[서울=뉴시스] 김금보 기자 =  사진은 3일 서울시내 한 의과대학. 2024.11.03. kgb@newsis.com
[서울=뉴시스] 백영미 기자 = 지난달 2025학년도 수능이 끝나고 대입 일정이 본격화됐지만 의료계에선 내년도 의대 신입생 모집 중지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의대 증원으로 내년도 의대 교육이 불가능하고 장기적인 의료체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 골자다.

2일 의료계에 따르면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의협 비대위) 등은 오는 6일부터 의대 수시전형 합격자 발표가 시작되지만 의대 교육의 질 저하는 결국 환자 피해로 이어지는 만큼 지금이라도 내년도 의대 모집을 중단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앞서 일본 동경대가 1968년 학내 소요로 이듬해 신입생을 선발하지 않았고 세종대가 1990년 학생들의 수업 거부로 신입생 모집 인원을 1000명 가까이 줄인 사례가 있다.

박형욱 의협 비대위원장은 지난 22일 비대위 1차 회의 결과 브리핑에서 "3000명을 교육할 수 있는 환경에서 갑자기 7500명의 의대생을 교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그 후유증은 10년 이상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의사들이 평생 환자들을 진료하게 돼 돌이킬 수 없게 된다"고 했다. 국민의 건강과 직결되는 역량 있는 의사 배출에 필수불가결한 양질의 의학 교육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년에 의대 증원에 반대해 휴학한 의대생 3000여 명이 복귀하면 신입생 4567명까지 포함해 기존의 두 배가 넘는 7500명 이상이 예과 1학년 수업을 받게 돼 의학 교육이 어렵다는 것이다.

의대 본과 1학년 학생들은 대개 6∼8명씩 조를 짜서 해부용 시신(카데바)으로 실습한다. 현재도 카데바 확보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의대 정원이 급격히 늘어나면 "카데바 1구당 학생 30~40명이 실습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의대생들이 병원을 돌며 임상 실습을 하려면 사전에 교육을 담당할 임상 교수와 실습 환경을 갖춘 병원도 확보해야 한다.

또 의사 양성 시스템은 전공의 과정인 인턴(1년)·레지던트(3~4년)를 거쳐 전문의 자격을 따는 하나의 고리로 연결돼 있어 장기간에 걸쳐 도미노처럼 무너져 내릴 수 있다. 원로 교수들은 의대 정원 문제는 미래 의료 체계를 좌우할 수 있다며 공정하고 투명한 의사 결정 구조를 바탕으로 과학적인 의사 수 추계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허대석 서울대 의대 혈액종양내과 명예교수는 최근 페이스북에 "교육은 백년대계로, 의과대학 입학 정원 확대는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닌 한국의 미래 의료 체계를 좌우할 중대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발표한 2025학년도 의대 모집 정원은 기존 3058명에서 (약 50%)증원된 1509명을 합쳐 총 4567명이다. 2026학년도 의대 정원은 내년 5월께 발표될 예정이다.

[청주=뉴시스] 조성현 기자 = 25일 오후 충북 청주시 서원구 개신동 충북대학교 의과대학 4층 해부학실습실이 텅 비어있다. 2024.03.25. jsh0128@newsis.com
허 교수는 "대표적인 예로 수시로 변하는 학생 수를 고려해 교수 요원을 1년 단위로 채용했다 해고했다를 반복할 수 없다"면서 "의학 교육의 본질을 무시한 정책은 오히려 한국 의료의 혼란과 불확실성을 키울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해부학·생리학·생화학·병리학 등 질병의 진단과 치료에 활용되는 기초의학은 강의실 수업 외에 다양한 연구와 실험, 토론 등이 종합적으로 이뤄져야 해 우수한 교수 확보가 중요하다.

의료계가 내년도 의대 모집 중지를 요구하고 있는 데에는 의협이 비대위 체제로 전환된 후 10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사태 해결의 열쇠를 쥔 의대생과 전공의 단체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은 전날 페이스북을 통해 "현재 최선은 2025년도 의대 모집 정지"라고 거듭 밝혔다. "의정 갈등으로 학교와 병원을 떠난 의대생과 전공의들이 돌아올 명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정부는 내년도 의대 정원 조정 가능성이 없다는 입장이다. "대학이 사전 공표한 전형계획·모집요강에 변화가 생기면 학생·학부모에게 큰 피해를 주고 입시의 안정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이유다. 2026학년도 의대 정원 원점 논의 가능성만 열어뒀다.

정부가 오는 5일 원서접수를 시작으로 '내년도 상반기 전공의 모집'에 들어가지만, 수련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의 복귀 가능성은 낮게 점쳐져 사태가 내년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향후 상대적으로 연봉이 높은 개원가로 향하면서 대학병원 교수 기피 현상이 심화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교수는 "사직 전공의들이 2차 병원과 개원가에서 주로 일하고 있고, 일부는 대학병원에서 연구원으로 있다"면서 "이대로 가다간 중증·희귀 난치질환 등 고난도 진료를 하는 상급종합병원 교수 배출이 더 어려워질 것 같아 걱정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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