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시간 외 연락 꺼리는 근로자 는다…'연결되지 않을 권리' 논의 한창
미국·호주 '연결차단권' 잇단 발의…우리나라도 '퇴근 후 카톡금지법' 논의
듀얼넘버 이어 가상번호 온앤오프 서비스까지 나왔지만…
[서울=뉴시스]최은수 기자 = 요즘 주변에서 업무용 휴대전화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휴대전화를 하나 더 구입해 업무용으로만 쓰는 '투 폰'이나 휴대전화 한 대에서 전화번호 2개를 사용할 수 있는 이동통신사 듀얼 넘버 서비스가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이같은 현상은 젊은 2030세대를 중심으로 일과 삶은 분리하고 워크 라이프 밸런스(워라밸·일과 삶의 균형)를 중시하는 트렌드가 사회에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또 그만큼 업무 시간 외 연락에 대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근로자들이 많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을 업무용으로 쓰는 경우가 많아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업무 카톡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실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홍배 의원이 공개한 2016년 한국노동연구원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직장인 약 70%가 퇴근 후에도 업무지시와 자료요청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이 중 50.6%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응답했고 스마트 기기로 인한 초과 근무시간은 11.3시간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근무시간 외 업무지시를 받은 빈도를 보면 한 달에 한 번은 37%를 차지해 가장 높았고, 이어 일주일에 한 번 22.2%, 1년에 한 번이 16.6% 등의 순이었습니다. 업무지시를 받지 않았다는 비율은 12.2%에 그쳤습니다.
이에 해외에선 업무 관련 연락을 받지 않을 ‘연결되지 않을 권리’(연결차단권)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지난 4월 민주당 소속 맷 헤이니 캘리포니아주 하원의원이 퇴근하거나 휴일 등을 맞아 근무하지 않는 직원에게 연락한 고용주에게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호주에서는 지난 8월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규정한 공정근로법 개정안이 시행됐습니다. 연결되지 않을 권리는 근무시간 외에 e메일, 전화, 문자 메시지 등의 연락에 응답하는 것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국내에서도 지난 7월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전화·문자·카카오톡·텔레그램 등 각종 통신수단 등을 이용한 업무지시를 금지하는 근로기준법 일부개정법률안, 일명 '퇴근 후 카톡 금지법'을 대표발의했습니다. 사용자가 전화, 전자문서, 소셜네크워크서비스 등 통신수단으로 근로자에게 근로시간 외 업무지시를 해선 안 된다는 내용입니다. 박 의원은 입법 취지에 대해 “노동자의 온전한 휴식권은 더욱 건강한 일터를 위한 우리 노동제도의 법적 권리”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런 추세에 맞춰 IT기업이나 통신사들은 관련 서비스를 내놓고 있습니다. 국내 통신3사는 휴대전화로 두 개의 번호를 이용할 수 있는 듀얼넘버 서비스를 제공 중입니다. 월 1만 원 이하의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습니다. 지난 2022년 e심 제도 시행 이후 유심과 e심을 함께 개통하는 듀얼심 이용이 가능해지면서 더욱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다만 통신사 듀얼 넘버 서비스가 휴대전화 두 대를 사용하는 것 대비 관리가 간편하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업무 시간 외에도 수시로 울리는 전화, 알림 등으로 업무와 일상이 완전히 분리되지 않는다는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이에 때마침 LG유플러스가 이달 기존 듀얼넘버 서비스 이용자들이 필요에 따라 두 번째 가상번호의 수신을 쉽게 켜고 끌 수 있는 온앤오프 서비스를 출시했습니다. 가격은 월 3850원입니다.
기존 듀얼넘버 서비스는 가상번호의 수신이 24시간 가능했던 반면에 이 서비스를 활용하면 필요에 따라 가상번호를 끄고 불필요한 연락을 차단할 수 있습니다. 업무 시간이 종료된 후에는 업무에 사용하는 가상번호를 끄면 업무용 연락을 받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죠.
이밖에도 택배·중고거래·주차·식당 웨이팅 등에 사용하는 이용자들은 필요한 용도 외에 가상번호를 오프로 설정해 혹시나 모를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스팸 및 보이스피싱 피해를 예방할 수 있게 됐습니다.
LG유플러스는 이러한 서비스를 내놓게 된 배경으로 두 개의 번호를 활용해 일과 사생활을 분리하는 고객 비중이 높았고, 가상번호를 관리할 수 있는 기능에 대한 이용자들의 수요가 높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처럼 업무와 일상을 분리할 수 있는 서비스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실효성은 미지수입니다. 우리 사회가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제 '퇴근 후 카톡 금지법'이 지난 몇년 간 우리나라 국회에서 수차례 발의됐지만 현실성 논란이 있었고, 의원들의 공감을 받지 못해 여러번 좌초됐습니다. 또 업무시간 외라도 긴급한 연락이 필요한 경우가 있고, 업종별로 여건 차이가 크다는 이유로 이런 법제화 흐름에 대한 반대 의견이 만만치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일상과 업무가 네트워크로 얼키고 설키고 있는 초연결 사회. 디지털 기술이 주는 편리함·효율성이 강조돼왔지만 그 가치 뒤에 희생됐던 프라이버시 권리도 이제는 존중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잊힐 권리'가 지금은 다수가 인정하는 권리가 된 것처럼 '연결되지 않을 권리'도 당연한 걸로 받아들이는 날이 그리 멀진 않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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