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이명동 기자 = "내가 대통령이라면 하루 안에 그 전쟁을 끝낼 것이다. 24시간이면 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5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미래를 놓고 이같이 공언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는 대통령 당선인이 됐고, 우크라이나는 끝 모르는 포성 속 19일(현지시각) 전쟁 1000일을 맞았다.
그의 백악관 복귀가 확정되자 종전을 쳐다보는 시선이 많아졌다. 전쟁 종식에 보여온 그의 열의 때문이다.
앞서 영국 선데이타임스는 데이비드 캐머런 당시 영국 외무장관이 지난 4월 트럼프 당선인과 만나 미국이 주도하는 우크라이나 전쟁 협상을 거론했다고 보도했다.
캐머런 전 장관은 미국 하원이 610억 달러(약 85조원) 지원안 통과를 놓고 분열한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지원 유지를 호소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전쟁을 '끝낸' 대통령이 되려면 우크라이나가 그때까지 버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당시 트럼프 당선인은 "아무도 내게 이런 조건을 제시하지 않았다. 대화를 나누게 돼 기쁘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종전 과정에 관여하겠다는 그의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가 전쟁 '중재자'로서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 위해 행동할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해진다. 트럼프 당선인의 일거수일투족에 유럽이 떠들썩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떻게 그가 전쟁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을까. 바로 미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방위비 절반 이상을 분담해 지출하고 있고, 우크라이나에 압도적인 지원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할 그가 영토 분쟁을 벌이는 두 지도자를 협상장으로 불러내 이견을 좁히도록 할 힘을 가진 이유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인 측은 현재 전선을 동결해 1300㎞에 달하는 국경에 비무장지대(DMZ)를 설치하고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20년 유예하는 종전안을 구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가 영토 일부를 러시아에 양도하고 그 대신 평화를 얻자는 방안이다.
우크라이나가 선뜻 이를 수용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인은 그 제안을 수용하도록 만들 힘이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대화의 장(場)으로 나서도록 종용해 타협할 수 없어 보이는 서로 다른 미래를 '어떤 방식으로' 결론 내게 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반발이 계속된다면 미국은 수도꼭지를 잠근 채 우크라이나에 '힘'에 의한 결과와 현실에 기반한 '말'에 의한 결과 중 선택을 종용하도록 압박할 수 있다.
이 같은 압박 속 마지못한 타협을 회피하기 위해 젤렌스키 대통령이 선택한 묘수가 바로 지난 8월 러시아 본토 쿠르스크 지역 진격이다. 동·남부 전선이 무너진다는 비판에도 이를 고집한 까닭은 주화파(主和派) 주장의 핵심인 일부 영토 양도를 전제로 한 동결안을 막기 위해서다.
본토 일부를 빼앗긴 이상 러시아도 트럼프 측이 거론하는 동결안은 수용할 수 없는 선택지가 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를 비롯한 서방 언론이 타전했던 물밑 협상설이 백지화한 것도 바로 쿠르스크 점령으로 인한 러시아 반발 탓이다.
새 미국 대통령 취임까지 63일, 앞으로 전황은 어떻게 될까. 양국 이익이 강하게 충돌하는 쿠르스크가 열전(熱戰)의 핵으로 부상할 것으로 예견된다. 협상에 나서기 위해서 러시아는 쿠르스크를 탈환해야만 하고, 우크라이나는 영토 동결을 방지하기 위해 이 지역을 사수해야만 한다.
문제는 파병된 북한군이 쿠르스크 지역에 투입됐다는 사실이다. 한국으로서는 큰 악재다. 한반도 안보 환경에 불안정성을 불어넣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드미트로 포노마렌코 주한 우크라이나대사는 이번 파병으로 전투 경험을 가진 인민군이 최대 10만 명가량 생길 것으로 내다봤다. 실전 역량이 강화한 북한군이 휴전선 위로 주둔하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러시아는 파병 대가로 북한에 탄도미사일·군사위성 기술이나 방위 공약을 제공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은 이미 이란제 샤헤드나 러시아제 란체트(랜싯)와 유사한 자폭용 무인기(드론) 대량생산 역량을 갖추면서 우크라이나와 한반도 양측에 긴장을 고조하고 있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한국 정부가 살상 무기 지원을 통해 전쟁에 깊숙하게 연루될 수 있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 당국자는 "(북한군 파병으로)새로이 강력한 친구를 얻은 것 같다"며 한국의 적극적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한번 물살에 휩쓸리면 되돌아 나오기는 무척 어렵다. 북한의 행위를 고려한 비례적 대응만큼이나 국익에 기반한 복합적 판단이 요구되는 지금이다.
한반도에서 7000㎞ 넘게 떨어진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은 1000일을 밤낮없이 이어왔다. 그 결말은 어떠한 형태로든 세계 안보 지형 판도를 뒤바꿀 것이 분명하다. 결과를 속단할 수는 없다. 전장에는 언제나 안개가 드리워 있고 정치인의 말에는 언제나 모호함이 묻어있다. 한국은 북한군이 공식적으로 전쟁에 개입한 이상 차가운 이성으로 우크라이나에 눈을 떼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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