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극 '이날치전' 리뷰
국립창극단 신작 '이날치傳(전)'이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조선 후기 8명창 이경숙(1820-1892)의 삶을 소재로 한 팩션(faction) 창극이다. 본명보다 널리 알려진 '날치'라는 이름은 날쌔게 줄을 잘 탄다고 해서 붙여졌다. 노비로 태어나 어름사니(줄광대)로 이름을 날리다 수행고수를 거쳐 명창의 반열에 올랐다.
극은 첫 장면부터 관객의 심장을 들었다 놨다 한다. 국가무형유산 줄타기 이수자 남창동이 줄광대 시절 날치 역을 맡아 묘기를 펼친다. 한 치(약 3㎝) 폭의 줄 위에서 백 텀블링까지 선보이자 관객석에서는 박수가 터져나온다.
날치와 주인댁 아가씨 '유연이'는 사랑하는 사이다. 이를 주인마님에게 들켜 사당패에 팔려 연이와 헤어진 것이 날치 인생 천추의 한이자 차별받는 세상에서 사람대접 한 번 받아 보리라 분투하는 계기가 됐다.
이날치가 태어난 조선 후기는 신분제가 유지되고는 있었지만 사대부의 몰락, 경제적 부를 얻은 중인층의 세력 확장 등으로 신분제 사회가 균열되던 시기였다.
작품에는 춘향가·적벽가·심청가 등 판소리의 주요 눈대목이 두루 녹아 있다. 특히 통인청대사습놀이 장면에서 조선 후기에 손꼽힌 명창들의 소리 특징과 더늠(명창이 자신만의 창법과 개성으로 새롭게 짜거나 다듬은 대목)을 녹여냈다.
'수궁가' 중 '토끼기변'은 송우룡, '춘향가' 중 '천자뒤풀이'는 김세종, '적벽가' 중 '동남풍 비는 대목'은 박만순', '심청가' 중 '심봉사 눈 뜨는 대목'은 박유전의 더늠으로 들을 수 있다. 이들 넷의 실력 겨루기는 마치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연출했다. 또 박만순과 이날치가 광통교 소리대결에서 함께 '적벽가' 중 '불 지르는 대목'을 부르는 모습은 마치 힙합 서바이벌 '쇼미 더 머니'를 방불케 한다.
클라이막스는 흥선대원군 이하응과 그의 형 이최응 앞에서 부른 '심청가' 중 '심청이 물에 빠지는 대목'이다. 쉽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이최응의 마음을 움직이면 이천냥을 얻고, 그렇지 못하면 목숨을 내놔야 한다. 14일 이날치를 연기한 김수인은 이 대목을 처절하게 부르며 이날치의 한스런 인생을 토해내듯 소리했다.
목숨을 건진 날치는 말한다. "줄타기 끝이 살판이잖아요. 줄광대가 살판으로 끝나잖아요. 허니 소리광대도 살판으로 끝을 맺어야죠. 죽을판을 살판으로 바꿔 놓아야지요."
이날치는 왕 앞에서 노래하는 '어전광대'가 되고, 무과 선달의 직계까지 제수받지만 떠나기로 결심한다. 연이와 살기 위해서다. 이날치는 이름이 드높은 데 비해 말년 행적에 관해 알려진 사실이 드문데, 창극에서는 이를 사랑을 찾아 떠난 것으로 설정했다.
연이를 데려오면 될 것을 굳이 왜 본인마저 자취를 감추었는가에 대해서는 연이가 머리에 쓴 미사포와 프로그램북을 자세히 보지 않고는 관객들이 알아채기 어려울 듯 하다. 당시는 한참 천주교도에 대한 박해가 심하던 때였다.
◆★공연 페어링 : 한산소곡주
'이날치전'은 주요 판소리 눈대목은 물론이고 줄타기, 고법, 탈춤, 버나 등 우리 전통예술을 한 자리에 모은 '버라이어티 쇼'라고 할 수 있다. 이날치의 이름에서 밴드명을 따온 '이날치밴드'의 히트곡 '범 내려온다'를 부르면서는 사자춤도 등장한다.
자칫 볼거리와 들을거리가 많아 과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는데, 여러 재미가 개성을 잃지 않고 조화롭게 섞여 들었다.
첫 맛은 달고 끝 맛은 구수한데, 산미가 적절해 단 술이라도 질리지 않도록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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