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언어학자' 노마 히데키 "K팝, 다문화적·다원적인 조형으로서 'K아트'"

기사등록 2024/11/05 12:00:00 최종수정 2024/11/05 16:26:46

'한글의 탄생' 저자로 유명한 학자 'K-팝 원론' 펴내

K팝 매력을 '한국어의 독특한 음악성'에서 찾아

'성문 폐쇄'·'후두 긴장', K팝의 차별성…복수언어성도 특징"

"K-팝을 사랑한다는 건, '지금·이곳' 온몸으로 아끼는 영위"

"K-팝, 전쟁이나 학살과는 정반대의 극서 존재하는 아트"

"지식 사회, 아직 K-팝의 본질을 못 보고 있다"

[서울=뉴시스] 노마 히데키. (사진 = 연립서가 제공) 2024.11.0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한글의 탄생'의 저자로 한일 양국에서 인정 받는 언어학자인 노마 히데키(野間秀樹) 전(前) 일본 도쿄외국어대 대학원 교수가 최근 펴낸 'K-팝(K-POP) 원론'(연립서가)은 K팝 원론서 혹은 예술서를 넘어 인문학서 또는 사회학서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랩넷(LAVnet) 시대'에 최적화된 'K아트'로 K-팝을 재정의한 노마 전 교수는 K팝을 '21세기의 지구형 공유 오페라'로 정의하며 한국이 스스로 한계 지은 'K'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영역으로 넓혀낸다. '한국적'이라는 개념이 아니라 다문화, 다원주의에 방점을 찍어 K팝이 잊고 있던 본령을 소환해낸다.

특히 K팝이 자본집약적인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동반되는 획일주의, 전체주의 등을 경계하는 점을 톺아볼 만하다. 사실 포크와 록이 유행하던 시절에 이 음악을 듣고 자란 구세대가 이 음악을 저항의 상징으로 활용한 것처럼, K팝을 듣고 자란 세대들은 이 음악을 자신들의 저항·표현 수단으로 자연스레 활용해왔다.

단적인 예가 소녀시대의 데뷔곡이자 대표곡 '다시 만난 세계'다. 2016년 이화여대의 학내 시위 현장에서 투쟁가 대신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가 울려 퍼지면서 아이돌이 단지 대중문화의 아이콘을 넘어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걸 확인하게 만들었다.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 이젠 안녕"이라는 노랫말을 지닌 '다시 만난 세계'는 이 시대 청년층에게 자연스레 저항가가 될 수밖에 없었다. 2020년 총리 퇴진과 왕실 개혁 등을 요구하며 태국에서 진행된 반정부 시위 속 젊은 세대 사이에서도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가 울려 퍼졌다. 세계 젊은 세대의 저항가가 된 셈이다.

사실 K팝 아이돌 음악은 태생과 확산부터 국내외 소수자들의 연대에서 출발했다. 1990년대 한국 대중음악 황금기에서 작품성 없는 음악 취급을 받았고, 처음 해외에서 주목을 받을 때는 소수 마니아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창구로 삼았다. K팝은 다양한 인종이 뭉친 팬덤의 연대 게릴라 활동을 통해 퍼져나갔는데, 주류의 음악이 되면서 초창기 정신을 잃었다는 진단도 나온다. 

노마 전 교수는 태국 출신이자 K팝 간판 걸그룹 '블랙핑크(BLACKPINK)' 멤버로 동남아권을 비롯한 세계에서 큰 인기를 누리는 리사의 예를 들며 다원주의야말로 오늘날의 K아트를 이룩한 핵심이라고 짚는다.

노마 전 교수의 K팝에 대한 식견은 이 영역뿐 아니라 언어학, 신체학, 미학 등을 넘나들며 전방위로 뻗어나간다. 한국어에 능통한 그는 번역가 없이 700쪽을 넘는 이 책을 홀로 썼다. 어머니는 함경도가 고향이다. 노마 전 교수는 독학으로 한국어를 익혔고, 한글의 미학을 새롭게 조형한 '한글의 탄생'이라는 수작도 탄생시켰다. 미술을 공부한 이력을 살려 K팝 스타의 인물도 그려 넣은 노마 전 교수만큼 K팝의 텍스트와 조형성을 분석할 수 있는 학자는 없다.

하이브, SM·JYP·YG엔터테인먼트 등 국내 4대 K팝 기획사 위주로 그려넣은 'K팝 역사지도', 843편의 K팝 뮤직비디오 추천 리스트는 그를 K팝 전문가로 부를 수밖에 없게 만든다.

다음은 노마 전 교수와 서면을 통해 한국어로 주고 받는 일문일답.
[서울=뉴시스] 엔믹스 '러브 미 라이크 디스' 퍼포먼스 비디오. (사진 = JYP엔터테인먼트 제공) 2024.11.0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이번 책과 이전 인터뷰 등을 보면, 교수님은 K팝에 대해 '종합예술'로서 방점을 찍고 계시죠. 반면 말씀하신 종합예술로서 K팝의 퀄리티는 갈수록 자본집약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전 예술과 상업성 이 둘의 오묘한 결합이 'K팝의 미학' 중 하나라고 보는데, 이 부분에 대해선 어떻게 해석하시나요? 교수님은 K팝과 자본의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이 책의 핵심은 '작품론'에 있습니다. 당연히 작품 안에 예술성도 상업성도 읽을 수 있지요. 자본의 힘은 당연히 작품의 질에 크게 관여됩니다만 작품 하나 하나의 질을 결정짓는 것은 경제가 아니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아티스트와 크리에이터의 사상과 감성 그리고 역량이 결정적입니다. 쉽게 말해서 특히 일본의 K-팝 담론 등에서 흔히 보이는 'K-팝은 돈을 들이고 있으니까 성공했다'와 같은 논의는 적어도 작품의 질에 관해서는 큰 오류라는 단언할 수 있습니다. 뮤비(MV) 하나만 보아도 돈을 들이면 좋은 뮤비를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은 이미 많은 작품군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엔믹스(NMIXX)의 '러브 미 라이크 디스(Love Me Like This)' 퍼포먼스 비디오는 스튜디오에서 찍은 댄스 동영상인데 따로 존재하는 그 아름다운 뮤비를 넘는 미와 고양감을 실현하고 있습니다. 아티스트의 존재감과 압도적인 신체성, 그것을 최대화하는 카메라 워크, 조명, 의상, 안무의 승리죠. 에스파(aespa)의 '새비지' 카메라워크 가이드'라고 명명된 동영상은 크리에이터들의 자신감까지 공감할 수 있습니다. 1:41의 화면을 보시면 이것이 얼마나 극한적인 영상인지 알 수가 있어요. 키스 오브 라이프(KISS OF LIFE)'의 ''플레이 컬러 | 4K' 키스오브라이프 - 테 키에로(Te Quiero)'도 놀라운 명작입니다. 이런 작품들은 아티스트의 목소리를 비롯한 청각적인 조형과 함께 시각적인 조형이 압도적인 높이에서 통합돼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대규모 예산이 아니더라도 주변에 넘쳐 흐르는, 돈을 들인 수많은 뮤비들을 압도하고 있는 거죠. 저는 현대미술 작품을 실천하는 입장으로서는 이런 작품들에 최고의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작품이 시장에서 어떻게 유통되느냐는 문제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죠. 거기서는 말씀하신 상업성이라는 문제가 크게 부각되는 거지요. 지금 말씀드린, 카메라 워크를 비롯한 조형은 책에도 썼듯이 엑소(EXO)가 2013년에 마마(MAMA)에서 보여줬던 기념비적인 무대의 동영상이나, 같은 해 방탄소년단(BTS)이 뮤비 'BTS 위 아 불렛프루프 Pt.2'에서 이룩한 조형이 진화한 현재의 도달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언어학자시다 보니 K팝의 매력을 '한국어의 독특한 음악성'에서 풀어내신 점이 특히 인상적이었는데요. 책이나 인터뷰에서 언급도 하셨지만, 한국어 음의 다변화가 K팝의 매력이나 즐기는 데나 전파성에 도움을 준다고 언급하셨죠. 이런 특성을 살려 한국어 가사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보십니까?

"곡을 만들 때 이야기라면 특히 작사가, 작곡가, 래퍼 분들은 한국어의 성질에 대해 이미 맹렬하게 '신경을 쓰고' 계시죠. 그것을 언어학적인 방법으로 의식하고 있지는 않더라도요. 단 한국어 자체의 음에 대해서는 한국어의 비모어화자(≠외국사람)가 크리에이터가 될 경우에는 '신경을 쓰는' 것은 아주 어려울 겁니다. 음성학 특강을 1년 들었을 정도로는 실천하는 데까지는 도달 못할 겁니다. 한국어 모어화자(≠한국사람)도 평소에는 언어음에 대해 깊이 생각은 안 하는 게 일반적이니까요. 아티스트나 크리에이터 입장이 아니라 우리가 작품을 접할 때 이야기라면 한국어 언어음에 대해 언어학적으로 특히 다른 언어에서 보는 관점에서 이것저것 알고 조금 더 '신경을 쓰면' 새로운 발견도 많아져서 즐거움이 증폭되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자세한 내용을 말씀드리려면 길어질 테니 독자 분들은 제 책의 제3악장, 제4악장을 참조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성문 폐쇄'와 '후두 긴장'을 K팝의 차별성으로 보셨는데 이 부분이 청자로 하여금 어떤 매력을 느끼게 하는 겁니까?

"'성문 폐쇄'와 '후두 긴장'은 일반적인 모음처럼(자음 단독으로, 특히 t, s 같은 무성자음 하나 가지고는 한 박으로 셀 수 없음) 하나의 박을 형성하면서 음표를 이루는 소리는 아니고 단어를 구성하는 소리도 아닌데 아주 미세하면서도 확실하게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음표'가 되는 셈이지요. 체험은 할 수 있는데 보이지 않는 음표. 일반적인 음표와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는 거죠. 당연히 노래의 존재감이 더해지는 겁니다. K-팝의 많은 곡에서 굉장히 재미있는 구성요소가 돼 있습니다. 다른 많은 언어에서도 '성문 폐쇄'와 '후두 긴장'은 무의식적으로 나타나긴 합니다. 그러나 성문 폐쇄를 이토록 가사 안에 말하자면 '지적으로 아로새기는' 가창법은 다른 언어권에 노래에서는 그리 많이는 접하기 어려울 겁니다. 책의 제3악장에서 분석했듯이 아이브(IVE)의 '러드 다이브'나 방탄소년단의 '피 땀 눈물'은 그 아름다움과 긴장감으로 우리의 심장을 관통해 주는 걸작입니다."
[서울=뉴시스] 방탄소년단 '피 땀 눈물' 뮤직비디오. (사진 = 빅히트 뮤직 제공) 2024.11.0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또 교수님은 또 K-팝을 톺아보시면서 특징 중 하나로 '복수언어성'(plurilingualism)을 꼽으셨는데요, 한국어와 영어 혹은 한국어와 일본어 혹은 한국어와 여러 언어가 이렇게 병치 혹은 혼용되는 이유는 무엇이고 이런 특징이 K팝에서 어떤 매력을 끌어낸다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복수 언어주의'는 K-팝의 중요한 특징일 뿐만 아니라 말하자면 천하무적의 전략입니다. K-팝에서도 유튜브가 시작된 초기에는 제목만 봐도 '프로미스(Promise)(약속)'처럼 번역어를 붙이는 형식이 많이 나타나기 시작했지요. 유튜브 상의 다른 언어권 시청자를 의식한 거죠. 이것은 한쪽 언어에 번역어가 종속되면서 붙어 있다고 볼 수도 있고, 영어와 한국어가 교체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언어를 사용하다가 다른 언어로 바꾸는 형상을 언어학에서는 '코드 스위칭(code switiching)이라 하죠. 그런데 그것이 진화되면서 에스파의 2021년 작품 '포에버(Forever)(약속)'과 같은 용법이 널리 쓰이게 됐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번역도 병치도 코드 스위칭도 아닌 거지요. 이 때 영어와 한국어 두 가지 언어에는 주종관계가 없습니다. 접하는 사람이 양쪽의 의미를 조형해도 되고, 한 쪽만 조형해도 되고, 그것은 접하는 우리의 몫인 거죠. 이것을 저는 '복수 언어주의'라고 보고 있는 겁니다. 마마무(MAMAMOO)'의 2018년 작품 '이거티스틱(Egotistic)(너나 해)' 같으면 너무나 재미있잖아요? 이 제목에서는 언어의 주종관계가 없어요. 양쪽이 존재하고 양쪽이 살아 있는 거죠. 뮤비 작품도 아름다운 걸작입니다. K-팝에서는 제목에서 전개되는 복수 언어주의적인 이런 수법이 가사에서도 널리 실천되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이질적인 것을 소중하게 감싸안아 주면서 한국어권은 너그럽게 받아들여 새로운 차원에서 작품을 창조해 나가게 된 거죠. 그것이 오늘날의 새로운 'K', '한국적'이라고 좁게 한정하는 게 아니라 다문화적으로 그리고 복수 언어적으로 널리 열린 '코레아네스크'(한국풍)인 거지요. K-팝은 이미 그러한 다문화적, 다원적인 조형으로서의 'K아트'로서 성립돼 있습니다. 오늘날의 선진적인 K아트의 다원주의(polycentrism)라는 본질이 언어의 표면에서 나타난 것이 복수 언어주의입니다."

-한국어와 영어로 각운을 맞추는 '말성의 방식'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으신 거 같아요.

"네. 소리든 빛이든 즉 언어음이든 문자든 언어가 형태가 될 때는 반드시 말 자체에 대한 성질 '말'성과 의미의 세계에 조형되는 '이야기'성이라는 두 가지가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서 시는 많은 경우에 '말'성에 관심을 기울이는 문학이고 소설의 비평으로서 스토리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주로 '이야기'성에 관한 것입니다. K-팝의 시, 가사는 '말'성에 대한 집착이 아주 강합니다. 페티시즘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재치있는 말 장난으로 넘쳐 흐릅니다. 그룹명부터가 그렇잖아요? 동방신기, 2NE1, Kep1er 등등. K-POP에서 의성의태어와 간투사(間投詞)를 다용하는 것도 '말'성에 대한 관심의 표현입니다. 그런 '말'성의 재미를 두 가지 언어로 확대하는 묘미를 복수 언어주의가 보여 주는 거죠."

-교수님이 짚으신 것처럼 이런 말성과 신체성이 복잡하게 어우러지는 부분이 또 K팝의 매력 같은데요. 이런 부분이 어떤 시너지를 낸다고 보시나요? 아울러 신체성의 희열과 애잔함에 대해 짚어주신 대목도 참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신체 그 자체를 추구한 20세기 아트도 있었습니다만 K-팝은 그것을 한 단계 추상화한 '신체성'이라는 차원에서 공유하려고 해 왔습니다. 개개인의 신체와 공유성이라는 완전히 모순된 성격을 멋지게 통합하게 한 것이 '랩넷(LAVnet)'이라는 큰 무대였던 거죠. 전형적으로는 유튜브가 그것입니다. 랭귀지(Language)(언어), 오디오(Audio)(청각적인 소리의 세계), 비주얼(Visual)(시각적인 빛의 세계)가 인터넷(INTERnet) 상을 고속으로 날아다니는 것이 '랩넷'이라는 시공간입니다. 오늘날의 K아트는 이런 '랩넷' 시대의 아트로서 탄생한 것입니다. 거기서 '신체성'은 공적인 공간의 '댄스(dance)'(춤)와 그것을 사적인 공간에서 지탱하는 '앤틱스(antics)'(장난, 희롱, 유머러스한 동작, 몸짓 등)라는 두 가지 계열의 동영상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실천되기 시작됐습니다. 그것은 환상이라 할지라도 아티스트가 '자다 깬 모습'의 앤틱스까지 공유하게 되죠. 시너지라기보다 그런 모든 자극 체험을 바로 언어가 지탱하고 있는 거죠. 유튜브는 동영상 사이트라고 생각하면 시각적인 면만 강조되는데 사실 언어가 없으면 순식간에 붕괴되죠. 신체성은 우리의 존재의 가장 깊은 근거에 관한 것이며 언어는 그런 존재를 함께하는 것을 지탱하고 있다는 관계입니다.  2011년 3월11일 후쿠시마의 지진, 해일, 핵의 위기로 온 세계가 인간 존재의 근본인 '신체'를 다시금 주목하게 됐습니다. 아무도 입에 담지는 않았지만 그것도 우리가 K-팝에 '신체성'을 희구하게 되는 중요한 간접적 요인이 된 상징적인 사태였다고 보고 있습니다. 신체야말로 '지금·이곳'에서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최후이자 출발점이 되는 근거지이니까요. 아주 난폭하게 통틀어서 말한다면 모든 K아트 작품에는 우리가 뜨겁게 그리고 함께 살아있는 '지금·이곳'에 대한 희열이자 애석함의 결정이라 해도 크게 틀린 것은 아닐 겁니다. K-팝을 사랑한다는 것은 때로는 젊은 청춘의, 혹은 아프고도 아름다운 이 시간의, 혹은 누구를 사랑하는 주옥과 같은 순간 순간의, 그러한 귀한 시간, '지금·이곳'을 온몸으로 아끼는 영위가 아닐까요?"
[서울=뉴시스] 로제, 브루노 마스. (사진 = 더블랙레이블 제공) 2024.10.18.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그런 의미에서 로제의 '아파트'의 인기에 대해선 어떻게 보시나요? 사실 아파트라는 영어는 한국 내에서 사용되는 콩글리시인데, 이에 대한 영미권을 중심으로 한 해외 반응도 각양각색이더라고요.

"책에서는 특히 제7악장, 제8악장의 작품의 작법에 대한 기술에서 강조했듯이 K-팝에서는 '예정 조화'를 피하는 '변화'라는 요인이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로제님과 브루노 마스님의 만남이라는 변화, 각자가 걸어온 길에서의 변화, 둘이서 벌이는 시각적인 장난 같은 동작의 앤틱스의 변화, 경쾌하고 즐거운 "아파트"의 기계적인 반복에서 애수를 띠고 아름다운 선율로 전환되는 곡 내부에서의 변화, 그러한 다층의 변화의 통합체인 거지요. 이 다층의 변화가 결정적입니다. 그러나저러나 로제님의 귀여운 동작 앤틱스와 선글라스를 뺏겨도 추호도 변함없는 브루노 마스님의 애정 어린 표정은 최고네요. 영어에는 없는 '아파트'라는 한국어의 외래어가 지니는 단어의 '말'성은 한국어 비모어화자에게는 발음이 신기한 뿐더러 의미를 작은 수수께끼로 남긴 채로 즐길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복수 언어주의 그 자체입니다. 단순히 영어 일색이었다면? 이러한 변화는 생기지 않았죠. 그냥 팝스(POPS)의 한 곡으로만 남았을 겁니다. 영어와 한국어에 주종관계가 없는 복수 언어주의와 다문화를 상징하는 것 같은 두 명의 아티스트. 출연료는 막대하겠지만 동영상의 미장센은 그리 막대한 돈을 들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사상과 감성, 그리고 역량이 쟁취한 지평이지요. 축하드려요, 두 분! 그리고 크리에이터 여러분!"

-아울러 K팝이 한글의 매력을 드러낸다고 보시는지요?

"네. 한글이라는 문자의 조형이 K-팝의 엠블럼 같은 기능을 하고 있지요. K-팝과 한글, 서로가 서로를 살리고 돋보이게 하는 그런 관계인 것 같네요."

-일본어판을 번역하는 대신 직접 한글로 다시 집필하신 주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일본어판 간행 이후에 제 생각이 많이 진화된 것이 주체적인 조건이고 일본어판 이후에 특히 4~5 세대에 좋은 작품들이 많이 나타났다는 것이 객체적인 조건입니다. 그리고 한국어와 일본어는 종종 발상이 다른 데가 있어서 일본어의 재미를 살리면서 번역을 하려면 너무나 힘이 듭니다. 그런데 묘한 한국어가 됐겠지요? 여러분은 어떻게 느끼셨는지 궁금합니다. 미흡한 점 많을 테니 많은 가르침을 부탁드립니다."
[서울=뉴시스] 엑스지(XG) 'IYKYK' 뮤비. (사진 = XGALX 제공) 2024.11.0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교수님은 현대미술 분야에서 미술 작가로도 활동하신 것으로 아는데 물론 팀마다 다르지만 K팝의 시각적 특징을 거칠게 요약해 주신다면요.

"아이고 이건 또 어려운 질문이시네요. 현재의 K-팝은 말씀하셨듯이 아주 다양하기 때문에 시각적인 특징을 한 마디로 말씀드리기가 어렵죠. 우선 제가 주로 논의하고 있는 것은 K-팝 중에서도 극히 일부의 아주 좋은 작품군입니다. 다른 아트나 문예, 학술논문에서도 그렇습니다만 솔직히 항상 제 관심을 끌지 않는 작품 쪽이 훨씬 많은 거죠. 좋은 작품을 거칠게 요약한다면 '새로운 코레아네스크의 미학'이라 해 놓죠. 색채는 분명히 뚜렷한 경향이 있습니다. 원색의 비중이 적고 채도(彩度)는 비교적 억제돼 있는데 파스텔 컬러 같은 명도(明度)가 높은 즉 밝은 색을 즐겨 사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색동' 같은 20세기 적인 배색은 최근에는 없어졌지요. 조형은 대범한 맛보다도 섬세한 것이 주류이죠. K-팝 중에서도 영파씨(YOUNG POSSE)의 '마카로니 치즈(MACARONI CHEESE)'나 로제님의 '아파트(APT.)'는 청각적인 면이 아니라 시각적인 면에서 색채와 대범한 맛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어느 쪽인가 하면 K-팝의 주류가 아니라 미국적인 색채와 조형이 많이 보이는 작품인 것 같아요. 시각적으로 '새로운 코레아네스크의 미학'의 선진적인 전위라 할 수 있는 건 아이브의 '해야(HEYA)' 뮤비로 대걸작입니다. 저는 '21세기의 고구려 벽화'라고 부르고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는 엑스지(XG)'의 'IYKYK' 뮤비(2024년 10월11일 공개)는 AI까지 구사한 놀라운 '새로운 코레아네스크의 미학'의 작품입니다. 자본은 어떻든 아티스트도 크리에이터도 완전히 K아트의 표현양식인데 오직 언어만이 완전히 영어 지향이라서 앞으로의 K-팝은 이런 식으로 먼저 언어에서 'K'가 희석돼 그냥 '팝스(POPS)'가 되는 걸까 하는, 앞날의 한 방향을 암시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시각적인 면에서는 뮤비에서 이렇다 할 장면만 뽑아내서 사진전을 열면 정말 재미있을 거예요. 저에게 훌륭한 뮤비 100개 작품에서 200 장면을 뽑으라 하시면 기록사진, 보도사진을 제외한 많은 사진전을 압도하는 사진전을 꾸밀 자신이 있습니다. 그만큼 오늘날의 뮤비 작품 영상의 질은 높은 겁니다. 그런 사진전을 연다면 기획사들의 협조가 필요하고 미술관의 사상과 감성도 한발 더 앞으로 함께 나가 주셔야 되겠지요? 그 사진전에서는 '미술관 정원에서 미니 콘서트' 같은 기획도 통과돼야 되니까요. 저는 그런 큰 사진전 대신에 제가 그린 그림을 책에 실었습니다. 출판사도 적극적으로 찬성해 주셨고요. 그러니 이 'K-팝 원론'이라는 책 자체가 저 자신의 방식으로 K아트를 고유하며 즐기는 하나의 조그마한 결정이자 제 평론 작품인 것과 동시에 미술작품이기도 한 거지요. 표지와 K-팝 역사지도 페이지를 넘기면 컬러 본문 첫 페이지에 '중·근세 동아시아에서 문인화는 화조풍월(花鳥風月)을 그렸다. 21세기 문인화는 K팝을 그린다'라는 말이 나타납니다. 아티스트를 그린 그림과 함께요."

-최근 인터뷰에서 영파씨, 키스오브라이프, 엑스지(XG)를 주목할 만한 팀으로 꼽으셨더라고요. K팝 팬들 사이에선 핫한 팀들인데 새롭게 떠오르는 팀들을 직접 찾아보시는지, 아니면 알고리즘 등의 도움을 받는지 궁금합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작품을 만나게 되는 거죠. 100편 정도를 모은 앤솔러지 같은 동영상은 도움이 됩니다."

-올해 K팝의 각종 민낯이 드러나는 안타까운 상황도 발생했습니다. 교수님은 K팝이 전체주의와 결별해야 한다는 진단도 내려주셨는데요. 물론 이 어려움을 극복할 것이라고 저를 비롯한 K팝 팬들은 믿고 있지만 좀 더 빨리, 현명하게 극복하기 위해선 어떤 자세,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아티스트와 크리에이터가 자유롭게 발언을 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아트에 대해서도 창조적으로 이야기도 나눌 수 있도록이요. 온 세계가 인정하고 있는 이만한 제노사이드=대학살을 보면서 혹시 자본의 힘으로 계약 조건 같은 것을 이용해서 아티스트나 크리에이터가 소리도 못 내게 억압돼 있는 거라면 그것이야말로 말도 안 되는 사회잖아요? 온갖 차별과 억압에 대해서는 아티스트도 팬도 단호하게 거부할 수 있어야 K아트가 더욱더 풍요로운 세계가 될 겁니다. 아티스트가 자기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될 때 진정 창조적인 K아트로서 비약할 것입니다. 책의 제8악장과 최종악장에서도 강조했듯이 K-팝은 전쟁이나 학살과는 정반대의 극에서 존재할 수 있는 아트입니다. 우리도 그냥 멋있다, 예쁘다 만으로 끝날 게 아니라 우리가 우리 사상과 감성을 단련해 나가야 되는 거죠."
[서울=뉴시스] 노마 히데키 'K-POP 원론' 커버. (사진 = 연립서가 제공) 2024.11.0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최근 여러 이슈가 겹치면서 K팝을 예술의 영역으로 분류하는데 주저하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각종 세미나, 포럼이 열리고 있지만 지식인들은 K팝의 음악적인 요소나 예술적인 부분보다 사회 현상으로서 더 주목하고 있습니다. K팝과 예술, K팝과 지식인의 건강한 관계 설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주 중요한 지적인 것 같아요. 바로 그것이 제 책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지식 사회가 아직 이 K-팝의 본질을 못 보고 있고 거기서 자리매김조차 못 하고 있는 거죠. 그 존재양식도 표현양식도 지금까지 지구상에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아트의 모습인데, 아직 이 방대한 K-팝 작품군에 대한 명칭도 붙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대중음악의 한 장르로밖에 보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그냥 춤추고 노래하고 있는 게 아니라니까요. 저는 그것을 'K아트'라고 부르는 거지요. 새로운 아트가 등장하면 기존의 사상과 감성으로는 포섭을 못하기 때문에 종종 매도하는 말로 명칭을 붙이죠. 로마네스크, 인상파 등등. 저는 일부러 '코레아네스크'라는 명칭도 사용했습니다. 이 아트를 마치 지식 사회가 '에스크(esque)'라는 비하하는 접미사를 붙여서 부르고 있다는 비유이고, 우습게 보고 있다는 것에 대한 항의인 거죠. 그런데 로마네스크도 아라베스크도 지금은 떳떳한 아트의 한 양식이지요? 코레아네스크도 마찬가지입니다. 좁고 배타적이고 국뽕 같은 '한국적'이라는 개념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를 너그럽게 감싸안아 주면서 받아들여 새로운 것을 창출해내는, 멀티에스닉하고 다문화적인 다원주의의 새로운 코레아네스크. 아트의 사적소유(私的所有)의 형태까지 바꿔 버린, 온 세계가 함께하는 영위로서의 아트. 말과 소리와 빛과 신체성이 어우러진 종합예술. 이것이야말로 한국어권이 온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아트가 아닐까요? 이래도 아직도 사회 현상으로만 다뤄야 하나요? 작품을 봐야지요. 우리는 이만큼이나 훌륭한 작품들을 만나고 있는 거니까요. 다시 강조하겠습니다만 지금 우리가 눈앞에서 보고 있는 이 아트는 20세기까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아트인 겁니다."

-최근 K팝 기획사들의 화두는 K를 없앤 K팝입니다. K팝 시스템을 갖고 해외 시장에 진출하되 아직은 마니아성이 짙은 K를 덜어내고 좀 더 넓은 시장을 공략하자는 전략인데, 이걸 어떻게 보시나요?

"자본이 원하는 방향에 대해서 이래라 저래라 할 수는 없습니다만 사실은 특히 언어라는 관점에서 'K', 즉 한국어가 기여하고 있는 이점에 대해서는 오히려 모르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지금은 이미 '포용력이 있는 다원주의적인 K'가 하나의 브랜드가 돼 있습니다. '아파트' 하나만 보아도 그렇잖습니까? 'K'가 살아 있는 복수 언어주의가 이긴 거지요. '좁은 K'가 아니라 제가 말씀드리고 있는 '넓고 큰 K'라는 브랜드가 없어지면 영어권의 일반적인 팝송으로서 경쟁하게 됩니다. 경쟁력의 핵이 없어지는 거지요. 이것도 책에서 강조했습니다."

-K를 없앤 전략은 교수님께서도 짚어주신 다성성과도 연결될 수 있다고 봅니다. 단일민족이라는 상상적 신화를 갖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탄생한 K팝이 단성성을 벗어나 다성성을 갖게 된 과정이 재밌는데, 이를 어떻게 보시나요?

"다성성을 더 넓게 다원성, 다원주의라고 부른다면 다원주의야말로 오늘날의 K아트를 이룩한 핵심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예를 들면 태국에 대한 이미지도 인식도 블랙핑크(BLACKPINK) 리사님의 존재 하나로 도대체 얼마나 바뀌었나요? 완전히 바뀌었죠. 호주를 비롯 다문화권에서 자란 경험을 좁은 "한국적"이라는 개념으로 묶어 버리는 게 아니라 다양성을 살리려고 했지요. 이질적인 존재를 배타적인 배외주의로 접했더라면 절대로 이만한 전 지구적인 공감은 얻어내지 못했을 겁니다. 아티스트도 그리에이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YG라는 사령탑에는 최대한의 찬사를 보내고 싶습니다. 이것은 다원주의의 실천이고 다원주의의 승리인 거지요. '내가 있고 네가 있다' '작품에서는 항상 각자가 주인공이고 각자의 목소리와 선율이 다성적으로 존재하고 항상 각자가 살아 숨 쉬고 있다' '전쟁? 차별?' 웃기지 말라는 거지요. 우리가 갈 길을 이토록 선명하게 가리키고 있는 아트인 겁니다. 획일주의, 전체주의, 밀리터리즘, 배외주의는, 자기집단 우월주의는 우리의 사상과 감성 안에 항상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가사나 의상이나 안무 등에 툭하면 나타나는 거죠. 나아갈 길은 선명합니다. 풍요롭고 너그러운 다원주의의 길이지요."
[서울=뉴시스] 노마 히데키. (사진 = 연립서가 제공) 2024.11.0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또 책 서두에 정리해주신 K팝 역사지도를 정말 말끔하게 정리가 돼 있던데요. 개인적으로 3세대와 3.5세대는 분류할 필요가 있고 5세대는 구분하기에 아직 이르다는 생각도 있긴 합니다만. 세대별로 특징을 분류하는 것도 K팝의 특징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런 세대론에 대해선 어떻게 보시나요?

"세대론은 편의상 따르고 있습니다. 사실 K-팝의 아트로서의 역사에서는 랩넷 시대 이전과 이후가 결정적으로 다른 거지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작품은 아티스트마다 그리고 작품마다 다름으로 너무 세대를 강조하는 것도 좀 무리가 있지요."

-또 단체 활동과 솔로 활동을 현실성과 존재감으로 치환시켜서 논의하신 부분도 인상 깊었습니다. K팝에서 단체 활동과 솔로 활동 그 이후의 활동은 어떤 상관 관계를 갖고 있다고 보시나요?

"K-팝이 다원적인 집단, 함께하는 집단의 힘을 온 세계에 알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룹 활동을 했던 아티스트가 솔로활동을 할 경우에도 항상 젊어지고 있는 개인사의 성과 위에 존립하는 것이지요. 20세기까지 있었던 미술 작품 같은 것과는 달라서 어떤 뮤비 작품은 항상 그 전에 작품, 주위의 작품 등 그 아티스트와 관련되는 작품군을 랩넷이 알려 주게 돼 있습니다. 남의 작품까지 포함해서 많은 작품들이 항상 이어져 있는 거지요. 솔로 활동도 그룹 활동과 분리돼 존재하는 것은 아닌 거지요."

-'21세기의 지구형 공유 오페라' K팝의 생명력은 오래 갈까요? 앞서 칸토팝, J팝의 전례를 보며 K팝도 하락세가 찾아오는 건 당연하고 그래서 연착륙이 중요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교수님은 K팝의 생명력을 어떻게 보십니까?

"아트로서의 생명력은 아직 티저, 예고편이라 해도 좋을 겁니다. 가능성은 어마어마하게 큰 거죠. 단 지금도 나날이 나타나고 있는 새 아티스트들의 작품, 뮤비에 대해서는 맹렬한 반성이 필요할 겁니다. 제가 보기에는 뮤비만 봐도 많은 작품은 너무나 아쉬운 점이 많아요. 한 마디로 뮤비가 아티스트를 망하게 할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오랫동안 연습생 생활을 겪은 아티스트들을요. 이것은 비평이 아니라 간절한 소원이에요. 방대한 동영상 안에서 우리가 뮤비로서 그 작품에 접할 수 있는 것은 기적적인 순간입니다. 불과 몇 초. 전체 3분을 끝까지 보는 뮤비는 극히 드물어요. 그 며 초 사이에 우리 심장에 아티스트와 작품을 깊이 심어 줘야 되는데, 많은 뮤비는 어떻게 만들어져 있습니까? 아티스트와 함께 춤을 춰야 하는데 카메라만 멋대로 춤을 추고 아티스트는 얼굴도 안 보이고. 실루엣으로 아티스트를 그린다? 안 되지요. 방탄소년단조차 아직 멤버의 누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 쪽이 세계에는 많은데 신인 아티스트 작품이 왜 실루엣으로 5초, 10초를 그려야 되는데요? 선글라스? 왜 그 귀한 몇 초에 선글라스인가요? '아파트'에서 그 브루노 마스님 같은 거물조차 로제님에게 선글라스를 뺏겼잖아요? 그 브루노 마스님의 눈이 우리의 심장 깊이 꽂혔던 게 아니었어요? 곡에서 고음으로 고양감을 품어내려고 아티스트는 턱을 올리고 눈을 감고 노래를? 그것은 자기도취일 뿐입니다. 팬은 너그럽게 함께해 줘도 지나가는 사람은 자기도취로밖에 안 보지요. 고음 파트가 되면 될수록 어려운 파트가 되면 될수록 눈은 떠야 되고 카메라를 따뜻하게 직시해야 되고 아무렇지도 않게 불러야 돼요. 우리의 동정을 사는 게 아니라 우리의 감정을 잡아 주셔야 돼요. 벌써 12년 전에 지드래곤(G-DRAGON)님은 그 고속랩을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하고 있었잖아요? 랩넷 시대에서 동영상 몇 초과의 만남이라는 기적을 절대로 우습게 보면 안됩니다. 우리는 그 몇 초가 재미없으면 금방 다른 동영상으로 가 버려요. 무엇보다 귀한 우리의 만남이니 그 짧은 시간에 제발 우리의 심장을 잡아 주시기를.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K아트의 아트로서의 힘을 막는 것은 획일주의, 전체주의, 밀리터리즘, 배외주의, 자기집단 우월주의 같은 사상과 감성인데 거기서 중요한 것은 자본의 의사이죠. 자본이 아트의 진가를 온전히 평가한다면 K아트는 더욱 더 활발해질 것이고 자본이 경제만을 바라본다면 앞날을 어둡지요. 긴 안목으로 보면 아트의 힘을 믿는 쪽이 경제에도 좋고 생명력을 얻을 텐데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한국와 일본의 대중음악이 양국의 문화 교류에 디딤돌 역할을 이미 하고 있는데 이 역할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보시는지요.

"더 커질 것입니다. 저는 J-팝은 잘 모릅니다만 일반적으로 말해서 아트의 힘, 대중음악의 힘은 아주 큰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디딤돌 정도가 아니지요. 1970년대 일본에서 한국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한글이라는 문자의 존재도 모르고 거의 아무것도 몰랐던 시대에 일본의 현대미술 분야의 젊은이들은 한국문화를 존경의 눈으로 볼지언정 우습게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요. 왜? 이우환 선생님이라는 압도적인 미술작가, 아티스트가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자칫하면 차별주의나 배외주의가 도사리는 우리의 사상과 감성을 크게 바꿔 줄 수 있는 게 아트나 인문학의 힘입니다. 그런 힘은 돈으로 못 사지요. 단 경제가 함께할 줄 수 있어요. 저는 경제가 선진적인 아트나 학문, 그리고 책을 함께해 주길 간절히 바랍니다. 'K-팝 원론'은 이런 말로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K아트에 영광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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