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피클보다 스파게티가 맛있는 천국

기사등록 2024/10/28 15:39:17
[서울=뉴시스] 피클보다 스파게티가 맛있는 천국 (사진=고블 제공) 2024.10.28.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이수지 기자 = '세상이 나를 억까 한다'’는 말이 유행처럼 떠돌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만큼 지금의 한국 사회는 '억울함'이란 정념으로 가득 차 있다.

그 억울함은 단순히 개인 정서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정서로 확대됐다. 이 울혈은 생계를 유지하기조차 각박해진 사회에서부터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이 억울함은 종종 잘못된 대상을 향한 분노로 수렴되기도 한다.

소설가 김준녕은 소설집 '피클보다 스파게티가 맛있는 천국'(고블)에서 억울한 상황에 처하게 된 인물들의 서사를 입체적으로 재현해 그 억울함이 잘못된 대상에게 어떻게 전가되는지까지 보여준다.

이 소설집 중 단편 '악마와 함께 춤을'에서는 지역 공장의 허점을 찾아 구조 조정을 하라는 압박에 시달리는 주인공이 말하는 돌연변이 문어 '옥토'를 만나는 탓에 자꾸만 일이 엇나간다. 그는 결국 자신에게 부당행위를 하라고 명령하고 실적을 압박하는 본사가 아닌 옥토에게 책임을 돌린다.

장편 '붐뱁, 잉글리시, 트랩'으로 한국의 언어적 계급주의를 풍자했던 작가는 이번 소설집에는 현재 한국 사회가 처한 사회 풍속도를 여러 방면에서 뜯어내어 그 부조리한 측면들을 고발한다.

우주적 사고에 우연히 휘말리는 바람에 마치 시시포스와 같은 형벌에 처해지는 주인공을 통해 이 사회의 자본과 노동에 대해 풀이하는 SF적 우화, 갑자기 줄어든 R&D 예산으로 벼랑에 내몰린 연구자들의 실태, AI가 모든 창작을 대체한 시대에 문체부가 만든 비좁은 방에서 감시받으면서 쓴 소설만이 진짜로 인정받는 세상 등 소설들은 부조리함을 반영한 풍자를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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