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코 시대 최고 밴드 '시크' 프로듀서 겸 기타리스트
데뷔 47년 만에 첫 내한
다이애나 로스·마돈나·다프트 펑크 등 자신이 참여한 히트곡 퍼레이드
디스코 시대 최고 밴드 '시크(Chic)' 프로듀서 겸 기타리스트로 유명한 미국 거장 뮤지션 로저스가 24일 오후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펼친 첫 내한공연 '나일 로저스 & 시크'는 그의 펑키(funky)한 기타가 그 자체라는 걸 보여준 흥겨운 파티였다.
거장의 거룩한 의식이 본질이 아니라 펑크(funk), 디스코 음악을 하는 백전노장의 그루브가 어떤 것인지를 진짜라는 걸 특기하는 사례였다.
본격적인 공연 시작 전 크림색 베레모를 쓰고 흰색 상의를 입은 로저스를 중심으로 시크 멤버들이 나온 뒤 과거 이 밴드의 활약상이 영상에 압축됐다. 로저스가 처음부터 관객의 합창을 유도한 '르 프리크(Le Freak)'를 신호탄으로 '에브리바디 댄스(Everybody Dance)', '댄스, 댄스, 댄스(Dance, Dance, Dance)', '아이 원트 유어 러브' 등 출발부터 시크의 히트곡 퍼레이드가 펼쳐졌다. 그런 가운데 로저스의 예리하면서도 따듯한 철성(鐵聲)의 기타, 흥겨운 금속성의 브라스가 만나 폭발적인 그루브를 선사했다.
로저스는 로스의 '아임 커밍 아웃'을 연주하기 전 그녀를 비롯 시스터 슬레지, 마돈나, 데이비드 보위, 비욘세, 다프트 펑크, 듀란듀란 등 자신이 연주 등에 참여한 곡들의 뮤지션들의 이름을 하나 하나 거명했다. 실제 이 뮤지션들의 곡 중 자신이 참여한 노래들을 이날 연달아 들려줬다. 팝 히트곡이 연이어지니 관객들이 공연 내내 즐거울 수밖에 없었다.
특히 비욘세의 '커프 잇', 다프트 펑크의 '겟 러키' '루즈 유어셀프 투 댄스' 등 자신에게 그래미를 안겨준 곡들을 연주하기 직전엔 자신이 여섯 개의 그래미 상을 받았고 그 중엔 평생공로상도 포함돼 있다며 기분 좋게 뿌듯해했다.
일흔이 넘어서도 녹슬지 않은 기량을 지닌 로저스의 음악이 어떤 위력을 품고 있는지는 그의 연주를 직접 들으면 가장 잘 알겠지만, '처킹(Chucking) 기법'을 설명하는 게 그나마 이해를 돕는 방법일 것이다. 단순한 코드, 주법으로 현을 끊어내면서 입체적인 결의 리듬감을 빚어내는 그의 고유 스타일인데 즉 '로저스 그루브'다. '겟 러키'의 도입부가 대표적이다.
공연 종반부 시크의 '마이 피트 킵 댄싱'부터 '마이 포비든 러버'를 거쳐 펑키한 댄스 비트가 중심이 되는 '렛츠 댄스'까지 이어지는 대목은, 공연장에 징검돌을 하나씩 놓는 리듬감을 만들어냈다. '이것이 좋은 리듬'이라고 강조하는 그루브가 아니라, '당신 것도 좋은 리듬이야'라며 무엇이든 확신을 주는 박자감. 그건 리듬이 리드미컬하게 사다듬이 돼 가는 과정을 만드는 초다듬이었다. 사다듬은 '단단히 다져서 확실한 대답을 받음'이라는 뜻인데 로저스의 정교한 리듬이 관객들의 확실한 환호를 받기 위한 단단한 다짐이었다.
로저스는 전날 출연한 MBC FM4U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자신이 (60년대 흑인 급진주의 단체인) 블랙 팬서(Black Panther)였다면서 기타가 정치적인 악기라 이를 선택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뮤지션은 본인을 스스로 표현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그것이 그루브일 것이다. 저마다의 그루브가 많아질수록 음악계는 다양해진다. 로저스라는 존재의 리듬을 국내에서 만나기 위해 그가 데뷔하고 47년이 흘렀다. 충분히 기다릴 만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