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곡동 LH아트센터에서 공연하는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는 인터미션 두 번을 포함한 무려 200분 짜리 대작이다. 다소 낯설 수 있는 주제와 시대로, 극장에 들어가기 전 내용을 개략적으로 파악해야 이해하기 쉽다.
유대계 동성애자, 에이즈 환자, 몰몬교도, 약물중독자, 흑인 등 차별과 편견의 표적이 되기 쉬웠던 사회적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극에 등장하는 모든 남성은 성소수자다. 하지만 본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 동성애와 에이즈를 대하는 방식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엄격한 율법을 지키며 살아가는 몰몬교도 조셉은 남성을 사랑하는 본인의 성향이 당황스럽다. 신경안정제에 중독된 조셉의 부인 하퍼는 하루 종일 약물에 취해 있지만 남편이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점차 깨닫는다.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여 가는 대부분의 인물과 달리 보수주의 정치계 유력인사이자 성공한 변호사인 로이는 자신이 동성애자이며 에이즈 환자라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부정한다. 에이즈 판정을 내리는 의사 앞에서도 '나는 가끔 남자와도 자는 이성애자'라거나 '에이즈가 아닌 간암에 걸렸다'고 우기는 식이다.
공연은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들어 집중하지 않는다면 따라가기 힘들 수 있다. 에이즈로 죽어가는 프라이어와 약물에 취한 하퍼의 세계관이 교차하는가 하면 투병 중인 프라이어의 눈에 조상들이 나타난다거나 프라이어에게 계시를 전하러 천사가 강림하기도 한다.
미국에서는 TV시리즈로도 제작될 정도로 워낙 유명한 작품이기도 하지만 이번 공연은 유승호와 고준희 등 주로 영상매체에서 활동해 온 배우들의 연극 데뷔작이라는 점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다.
프라이어를 연기한 유승호는 죽음을 앞둔 에이즈 환자의 공포를 드러내거나, 나날이 쇠약해져 가는 가련한 인간상을 표현하는 데서는 흠 잡을 데가 없지만 동성애인과의 관계에서는 흔히 말하는 '케미스트리'가 충분히 살지 않는다.
풋내가 가시지 않은 젊은 배우들 사이에서 이효정의 무게감 있는 연기는 죽은 로이 콘이 살아돌아왔나 싶을 정도로 짜릿하다.
극중 로이는 일명 '악마의 변호사'라 불릴 만큼 악명이 높은 실존인물을 바탕으로 한다. 로이 콘은 매카시즘(반공산주의 선풍)의 광풍에 올라타 공산주의자와 동성애자 색출에 열을 올렸던 인물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동성애자였고 에이즈로 사망했다.
오후 7시30분에 시작한 공연은 밤 11시 즈음까지 이어진다. '더 이상의 집중은 무리다' 싶은 순간 천사가 하늘을 찢고 떨어지면서 파트 투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오는 28일까지 열리는 이번 공연은 '파트 원: 밀레니엄이 다가온다'를 부제로 하는 1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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