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격' 슬로바키아 피초 총리는…"친러, 언론 장악 시도로 반발 직면"

기사등록 2024/05/16 10:34:44 최종수정 2024/05/16 12:24:53

공산당원 출신…사회민주당 창당 후 총리 연임

2018년 사퇴 후 5년만 재집권…우크라 지원 중단

공영 미디어 장악 등 개혁 추진…대규모 시위 열려

[핸들로바=AP/뉴시스] 로베르트 피초 슬로바키아 총리(59)가 15일(현지시간) 피격 전 정부 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슬로바키아 핸들로바에 도착한 모습. 2024.05.16.

[서울=뉴시스] 이혜원 기자 = 괴한의 총격으로 부상을 입고 치료 중인 로베르트 피초(59) 슬로바키아 총리는 친러 성향의 좌파 포퓰리스트로 평가된다.

15일(현지시각)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피초 총리는 1993년 독립 이후 수년간 슬로바키아 정치에서 중추적 역할을 해왔다. 가장 오랜 기간 재임한 총리이기도 하다.

슬로바키아는 1989년 당시 체코슬로바키아에 속해 있던 공산당에 반대하는 일련의 비폭력 대중 시위인 이른바 '벨벳 혁명'을 통해 독립했다.

공산당 집권 시절 공산당원이었던 피초 총리는 1986년 법학 학위를 취득했고, 1992년 민주좌파당으로 의회에 처음 입성했다. 1990년대 유럽인권재판소와 유럽인권위원회에서 슬로바키아 대표단으로 근무했다.

이후 1999년 사회민주당(SD·스메르)을 창당했고, 2006년부터 처음 총리를 지내다 4년 후 선거에서 패배하면서 야당이 됐다.

2012년 재집권에 성공했지만, 정부 부패를 폭로하던 언론인과 약혼녀가 살해된 사건으로 촉발된 대규모 시위로 2018년 7월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당시 시위는 벨벳혁명 이후 최대 규모였으며, 정부 사퇴와 선거 실시를 요구했다.

이후 5년 뒤인 지난해 10월 선거에서 약 23% 득표율로 연립정부를 구성해 재집권했다.

[반스카 비스트리카=AP/뉴시스] 15일(현지시각) 슬로바키아 반스카 비스트리카의 한 병원에서 마투스 수타이 슬로바키아 내무장관(오른쪽)과 로베르트 칼리낙 부총리 겸 국방장관이 공동 기자회견 하고 있다. 2024.05.16.

피초 총리는 정치적 좌파 포퓰리스트로 평가되지만, 이민과 문화 문제에서 점점 우파적 견해를 수용하고 있다. 특히 최근 몇 년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와 관계로 주목을 받았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이후 대(對)러시아 제재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여왔다. 유세 기간 우크라이나에 탄약 단 한 발도 보내선 안 된다고도 주장했으며,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공급을 중단했다.

슬로바키아가 우크라이나에 지원하는 군사적 기여 수준은 미국이나 영국 등과 비교해 미미한 수준이지만, 지난해 자국 농민에게 피해가 될 수 있다며 우크라이나 곡물 수입을 차단하는 등 경제적 압박을 가하기도 했다.

여기에 지난달 피초 총리의 동맹이자 친러 성향인 페테르 펠레그리니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슬로바키아 내부에서 친러 정치 세력의 지배력은 강화되고 있다.

이같은 행보에 유럽연합(EU) 지도자들은 긴장하고 있다. 슬로바키아가 오르반 총리,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와 친러 동맹을 맺어 EU의 우크라이나 지원을 방해할 수 있다는 우려다.

[한들로바=AP/뉴시스] 15일(현지시각) 로베르트 피초 슬로바키아 총리가 총격당한 슬로바키아 한들로바 현장에서 한 남성이 체포되고 있다. 2024.05.16.

피초 총리는 내부적으로 청탁 금지 특별검사를 없애고 공영 미디어를 장악하기 위한 형법 개정 계획 등 개혁안을 추진해 반발을 사고 있다.

슬로바키아 전역에선 이에 반대하는 수천명 규모 시위가 열리고 있다. 이날 피초 총리를 총격한 피의자도 공영 미디어 개혁을 규탄하는 발언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피초 총리는 이날 슬로바키아 수도 브라티슬라바에서 북동쪽으로 약 180㎞ 떨어진 핸들로바에서 총격을 받고 쓰러졌다. 직후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현재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은 아닌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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