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산테러에 쇠망치 가격까지
2022년에만 4만1559건 발생
"공론화된 사건은 빙산의 일각"
정부, 남은 후속절차 속도 내야
[세종=뉴시스]성소의 기자 = "지금 저한테도 민원인들의 항의 전화가 걸려오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공무원들을 보호하면서 민원인의 권리를 제약하냐고요."
정부가 관계 부처 합동으로 민원공무원 보호 대책을 발표한 다음날인 지난 3일, 행정안전부 담당 과장이 한 말이다. 민원 공무원 보호를 강화하자는 데 공감대가 큰 만큼 후속 절차를 빠르게 진행할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같이 답했다. 민원 담당 공무원들의 사망 등 피해가 최근 공론화 됐음에도 문제해결 필요성에 공감하지 않는 민원인들이 있다는 얘기다.
지난 2일 정부는 민원인의 갑질 행태를 뿌리 뽑기 위해 '민원공무원 보호 대책'을 발표했다. 김포시 소속 9급 공무원 A씨가 집단 민원에 시달리던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계기가 됐다. A씨는 포트홀(도로 파임) 보수 공사 업무를 담당했는데, 이 공사로 차량 정체가 빚어지자 주민들로부터 많은 항의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일부 민원인들은 지역 기반 온라인 카페에 A씨가 공사를 승인한 주무관이라며 그의 이름과 직통 전화번호 등을 게재하기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온라인상 괴롭힘과 민원 전화에 시달리던 A씨는 지난 3월 사망한 채 발견됐다.
A씨 사건에 앞서 지난 1월에는 경기 파주시 소속 공무원 B씨가 민원인으로부터 살해 당한 사건도 있었다. B씨는 환경 관련 민원을 1000건 이상 제기해온 민원인의 사연을 듣기 위해 자택을 방문했다가, 쇠망치로 머리를 수차례 가격 당해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와 B씨 사건은 그 자체 만으로 큰 충격이었지만,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공무원들은 입을 모은다. 그간 공론화 되지 않았을 뿐 심각한 악성민원 피해 사례는 이전부터 수없이 반복돼왔다는 것이다.
행정기관 시스템이 다운될 정도로 같은 민원을 수천번 접수하는 사례는 기본이고, 매일 출근하듯 주민센터를 방문해 공무원에게 윽박 지르고 심한 욕설을 가하는 등 유형도 다양하다. 민원이 받아 들여지지 않은 데 앙심을 품고 공무원에게 염산 테러를 가한 사건도 있었다. 이런 식의 민원인들의 위법행위는 지난 2022년에만 4만1559건 발생했다.
정부는 이러한 도 넘는 악성민원을 근절하고자 지난 2일 범정부 대책을 내놨다. 민원인이 욕설, 협박, 성희롱 등 위법행위를 저지르면 공무원이 전화를 끊을 수 있도록 하고, 지방자치단체나 중앙행정기관 홈페이지에서 공무원의 이름과 직통 전화번호 등을 비공개할 수 있도록 했다. 공무원이 악성민원 피해를 입었을 경우 소속 행정기관의 고발도 의무화했다.
공무원의 예산과 인력을 확충하는 등 근본적인 대책이 빠졌다는 비판도 있지만, 대부분 현장에서 빠르게 적용할 수 있는 조치들을 담고 있어 공무원들은 이번 대책의 빠른 시행을 염원하고 있다.
그러나 앞서 밝혔 듯 공무원들의 보호 대책이 민원인의 권리를 제약하는 것이라며 달가워하지 않아 하는 반응도 존재한다. 17개 관계 부처들이 참여해 만든 대책이지만, 세부 내용에 있어서는 부처 간 입장 차이도 있다.
일례로 민원 통화 자동 녹음을 도입하는 것에 대해서는 개인정보 침해 우려가 뒤따를 수 있다. 주무 부처인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개보위)가 반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지난 2022년에도 개보위는 개인정보 침해 우려로 통화 자동 녹음 도입을 반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에도 개보위 등 관계 부처에서 발목을 잡으면 민원공무원 보호 대책들은 시행이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 최악의 경우 일부 정책은 도입이 무산될 수도 있다. 일선 현장에서는 매년 반복되는 민원 공무원들의 비극을 막기 위해 대책들이 하루 빨리 시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가 일선 공무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후속 조치에 속도를 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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