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어머니·일본인 아버지 둔 Z세대 신 아이콘
5일 오후 서울 명화라이브홀서 첫 한국 단독 공연
"한국·일본 음악 통해 사이 좋아져…그 흐름 멈추지 않게 하는 게 몫"
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명화라이브홀. 한국계 일본 Z세대 래퍼 챤미나(26·CHANMINA·ちゃんみな·오토모나이 미나)는 대표곡 중 하나인 '달리아'(Dahlia·ダリア)를 부르던 중 이렇게 사자후를 토했다. "저 소녀는 아름답지 않아 / 목소리만이 전부지"라는 가사 내용과 맞물려 뭉클했다.
챤미나는 한국인 어머니와 일본인 아버지를 뒀다. 1998년 서울에서 태어나 세 살까지 한국에 살았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갔고, 미국까지 오가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주변 사람들은 그런 그녀에게 항상 물었다. '너는 어느 쪽이냐.'
챤미냐는 이날 공연에서 이와 관련 심경을 털어놨다. "어린 시절 한국에선 '넌 일본이 아니냐', 일본에선 '넌 한국인 아니냐'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힘들었지만 어린 시절 한국에 살아서 한국어를 할 수 있었고 음악을 사랑해 이렇게 다시 찾아올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얼굴이 사랑스러워요. 일본에서 데뷔를 했지만 한국에 돌아오는 건 오랜 꿈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챤미나는 "다다이마(ただいま)"를 외쳤다. 관객들은 "오카에리(おかえり)"라고 응답했다. 우리말로 옮기면 "잘 다녀왔습니다"와 '어서 와요"다. 언젠가 돌아올 것이며 그 과정에선 기다려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진심이 묻어나는 교감이었다. "본집으로 돌아온 느낌이에요. 한국 활동을 열심히 할 거예요. 나중에 '챤미나 처음부터 좋아했다'라는 말을 여러분들이 자신 있게 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할 테니 예쁘게 봐주세요."
이어 챤미나는 "여러분들이 제 인생에 들어와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며 '유 저스트 워크드 인 마이 라이프(You Just Walked In My Life)'를 불렀다.
챤미나의 국내 첫 단독 공연인 이날 '에어리어 오브 다이아몬드 투(AREA OF DIAMOND 2)'엔 이렇게 감격적인 서사가 있었다.
이날 공연은 찬미냐가 대형 아티스트로 거듭날 가능성이 크다는 걸 목도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힙합뿐 아니라 팝, 록 등 다양한 장르를 오가는 그녀는 래퍼로만 한정짓기엔 스펙트럼이 무척 넓었다.
특히 Z세대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만큼 잠재력도 크다. 챤미나라는 예명도 일본 Z세대 유행을 반영했다. 일본에서 가까운 상대를 부를 때 이름 뒤에 붙이는 애칭 짱을 더한 '미나짱'을 뒤집은 것이다.
공연 시작 전 대기실에서 만난 챤미나는 한국어 실력이 부족하다고 했지만 능수능란한 능변으로 답했다. 노래할 땐 모두를 집어삼킬듯 카리스마가 넘쳤는데, 인터뷰나 팬들과 대화를 나눌 때는 누구보다 상냥했고 겸손했다.
-공연장 로비에 잠깐 서 있었는데도 관객 중에 스타일이 좋은 젊은 여성 팬들이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너무 뿌듯해요. 일본에서도 원래 여자 팬분들만 있었는데요. 요즘은 남녀노소 다양한 분이 오십니다. 무엇보다 제 공연에 오시는 분들이 잘 꾸며서 오시는 걸 보면 너무 마음이 따뜻해져요."
-2022년 래퍼 애쉬 아일랜드(ASH ISLAND)가 참여한 '돈트 고(Don't go)'를 시작으로 '미러(Mirror)'와 지난해 '비스킷(Biscuit)'까지 한국어 싱글을 발표하며 적극적인 한국 활동도 펼치고 있는데요. 작년엔 '뮤콘 2023' 쇼케이스 무대에 오르고, 유튜브 콘텐츠 딩고 '킬링 벌스'에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한국 활동은 어떻습니까?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 되겠다'라는 생각이 여전해요. 특히 한국 단독 공연은 제가 갖고 있던 오랫동안 목표라 이 상황 자체가 너무 감사해요."
-챤미나 씨를 비롯해 한국에 J팝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저도 친구한테 들고 알았어요. 이마세 씨 노래가 한국 차트에 들어갔다고 해서 '우와 일본 아티스트가 차트에 들어가니까 너무 신기하다. 좋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챤미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인 2016년 '미성년(未成年 feat. めっし)'과 '프린세스(Princess)'를 선보였다. 2017년 2월에 '퍼커(FXXKER)'로 정식 데뷔했다.
-반대로 일본에선 K팝 열풍이 여전하잖아요. 챤미나 씨도 잘 알려진 것처럼 지드래곤 씨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소녀시대 태연, 강다니엘, 아이콘 바비 등 K팝 가수들과도 협업했습니다.
"전 일본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니어서 그런지 일본에서 K팝이 들리는 것도 너무 좋고, 한국에서 일본 노래를 듣는 것도 너무 좋아요."
-지난해가 '김대중-오부치 대중문화 개방' 25주년이었는데요. 챤미나 씨가 한일 문화교류에 있어 최적화된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악교류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제가 어렸을 때보다 지금 충분히 한국과 일본이 음악을 통해서 사이가 많이 좋아졌다고 개인적으로는 생각을 해요. 그 흐름을 멈추지 않게 하는 게 제 몫이죠. 한국에서 데뷔하는 일본인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저도 한국어를 조금 하니까 그걸 잘 써서 제가 느끼고 있는 것들이나 마음을 다양한 사람들한테 전해줄 수 있는 존재가 됐으면 합니다."
-한국어를 너무 잘하시는데요. 한국어뿐만 아니라 일본어, 영어로도 가사를 쓰잖아요. 언어는 사고 체계를 반영하기도 하잖아요. 각 언어로 가사를 쓸 때마다 중요하게 여기는 메시지나 가치관이 조금씩은 달라질 거 같습니다. 다양한 언어로 가사를 쓰는 게 어렵지는 않나요.
"저한테는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닌 것 같아요. (언어를 미리 정해놓고 쓴다기보다) 제가 느낀 감정을 준 상대방이 누구인지에 따라 언어가 달라지는 느낌이 있거든요. 그 상황에 제가 꽂혀 있는 언어에 따라 달라지는 거죠."
-그래서인지 사고가 유연한 거 같아요. 노래 소재도 다양하고 세계관이 열려 있는 거 같거든요. 가사를 쓸 때 언어에 따라 발음도 고민이 될 거 같아요. 음절당 자음과 모음을 각각 하나씩 나열하는 일본어 발음구조상 받침 발음이 불가하다고도 알고 있거든요.
"일본어는 많이 놀기 편한 언어인 것 같아요. 악센트를 좀 이상하게 넣어도 일본어로 안 들리기도 하거든요. 근데 한국어나 영어는 조그마한 차이로, 단어 자체의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에 발음에 신경을 많이 써요."
"전 어릴 때 한국에선 '너는 한국인이 아니다'라는 말을 들었어요. 반대로 일본에 있을 때 역시 마찬가지로 '너는 일본인이 아니다'라는 얘기를 듣고요. 미국에 가면 또 '아시아인 여기 오지마'라는 소리도 들었죠. 특히 한국과 일본이 축구를 할 때면 '누구 편이냐. 누굴 응원할 거야'라고 학교 갈 때마다 물어봤어요. 그 질문은 제게 '엄마가 좋냐 아빠가 좋냐'라는 질문과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런 점 때문에 저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생각을 했죠. 저는 일본인 같지도 않을 것 같고 한국인 같지도 아닐 것 같거든요. 하지만 전 동시에 한국인이고 일본인이에요."
태극기와 일장기를 더한 모양의 문신이 찬미냐의 왼팔에 새겨져 있다.
-멋있네요. 최근 힙합계에선 한국과 일본뿐 아니라 아시아권 내 음악 교류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어요. 태국, 인도네시아 등지에서도 힙합이 부흥하고 있잖아요. 또 미국을 기반으로 현지에 다양한 아시안 아티스트를 소개해온 '88라이징(88rising)' 같은 레이블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기도 하죠. 이런 아시아인들의 음악 교류에도 챤미나 씨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어릴 때부터 음악을 하면서 음악을 통해 세상이 더 친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시아권 뮤지션들도 힙합을 통해, 음악을 통해 더 친해지고 서로를 존중해줬으면 좋겠어요. 사랑스럽게 하는 이야기가 많아지면 좋겠어요."
챤미나는 작사와 작곡뿐 아니라 안무, 라이브 공연 연출까지 프로듀싱하는 멀티플레이어다. 실제 이날 공연은 춤 비중이 꽤 높았다. 그녀는 기타 연주도 선보였다. 챤미나가 '안 괜찮을 때' 들어달라고 요청한 '아임 낫 오케이(I'm Not OK)' 무대는 흡사 록 페스티벌을 방불케했다.
-챤미나 씨는 래퍼 혹은 힙합 뮤지션으로만 한정하기엔 음악적 스펙트럼이 넓은 거 같아요. 보컬적인 측면도 뛰어나고요. 확실히 싱어송라이터로서 작가적 기질이 두드러지는데 지금 뮤지션으로서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인가요.
"현재 뮤지션으로서 내적인 고민은 없어요. 일단 뮤지션을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너무 감사한 일이라서요. 다만 현재 세상에서 '이 말은 하면 안 된다' '이거는 하면 안 된다'는 게 갈수록 많아 지는 것 같아서 그게 고민이에요. 음악엔 그런 게 없어서 음악을 좋아했거든요. 음악에 들어오는 느낌은 자유로워야 하는데, 세상은 갈수록 그걸 어렵게 만드는 거 같아요."
특히 이날 가장 큰 환호성을 얻은 곡 중 하나인 '미인(美人)'은 천변만화하는 챤미나 보컬에 이런 메시지를 담은 상징성이 큰 노래였다.
"제가 초등학교 때부터 작곡, 작사를 시작했는데 한국어, 일본어, 영어가 헷갈렸어요. 그런데 그때 그때마다 생각나는 언어로 쓸 수 있어서 제게 가장 자유로운 곳이 음악이었어요. 하지만 데뷔를 했을 때 제가 못 생겼다는 이유로 (팬들은 이때 말도 안 된다고 입모아 외쳤다) 싫어했죠. 당시 상처도 많이 받아서 살을 빼려고 하다보니 몸이 고장나서 이상한 병에 걸리기도 했어요. 그때 쓴 곡이 '미인'이에요. 여러분들이 갖고 있는 모습은 충분히 아름다워요. 몸을 망가뜨리지 않았으면 해요. 곡을 쓸 때만 자유로웠는데 제가 방구석 침대에서 만든 노래들을 같이 불러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달리아'는 '미인'에 담지 못한 다른 스토리에 대한 노래예요. 같이 끝까지 살아주세요. 제발!"
이렇게 챤미나는 근원적인 정체성 부분부터 사회적인 것까지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꿈을 계속 꿔왔다.
-2021년 부도칸 공연이 분기점이 됐다고 들었습니다. 가장 서보고 싶은 공연장이 있다면 도쿄돔인가요?
"도쿄돔에도 이른 시일 내에 공연해보고 싶어요."
-최근에 테일러 스위프트도 도쿄돔 공연을 멋지게 성료했는데 챤미나 씨도 충분할 거 같습니다. 마지막 질문인데요. 음악을 시작하고 찬미냐 시의 삶에서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
"우선 저희 어머님·아버님한테 제 얼굴을 보여주기가 쉬워졌어요. 그 전까지 인정을 못 받았거든요. 이제 인정해 주시는 걸 넘어 많이 좋아해 주시죠.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인정 받기가 가장 어렵죠라고 답하자) 그 부분이 저한테는 제일 큰 변화인 것 같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큰 자신감이 생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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