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전 부치면 조상님 노하나…누구를 위한 명절인지"

기사등록 2024/02/12 08:00:00 최종수정 2024/02/12 08:06:27

"명절 음식준비 및 설거지 등 여성에게 부담 쏠리면서 스트레스"

"명절 스트레스는 결혼율 저하 및 저출생에도 영향 미칠 수 있어"

"가사는 남성과 여성이 함께해야 하는 일이라는 인식 확산해야"

[인천=뉴시스] 전진환 기자 = 설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 8일 오전 인천 중구 인천항연안여객터미널에서 귀성객들이 고향으로 가는 여객선 승선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2024.02.11.

[서울=뉴시스]김혜경 기자 = "결혼 후 첫 설 명절입니다. 시댁에서 전 부치고 설거지하고 정말 하루종일 일만 하다 왔습니다. 왜 남자들은 손 하나 까딱 안하고 여자들만 일하나요?"

"설거지 거리가 많아서 남편한테 도와 달라고 했더니 시어머니가 난리가 나셨네요. '쟤가 뭘 할 줄 아냐'면서 들어가 있으라고 하시네요. 저는 뭐 태어날 때부터 설거지 할 줄 알았나요. 남편은 처갓집 가서도 차려주는 밥만 맛있게 먹고 설거지 하나 안 하는데, 왜 여자만 명절에 힘들어야 하죠?"

12일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게시글 내용이다. 온 가족이 오랜만에 한 상에 둘러앉아 안부를 묻고 정을 나누는 설 명절이지만, 음식 준비 등으로 가족 간 다툼과 불화를 겪는 일도 되풀이되고 있다.

결혼 5년 차 김모씨(37·여)는 명절만 되면 한숨부터 나온다고 말했다. 김씨는 명절이 되면 자차로 3~4시간 거리인 시댁에 가서 이틀 정도 지내고 온다.

그는 "본 적도 없는 남편 조상님 차례상을 왜 며느리가 다 준비해야 하느냐"며 "남자들이 음식 준비하면 조상님이 노하는 것이냐"고 했다. 그러면서 "평상시에도 회사 다니면서 육아하고 살림까지 정말 힘들어 죽겠는데, 명절에도 쉬지를 못하니 이건 도대체 누구를 위한 명절이냐"고 토로했다.

이처럼 명절 기간 발생하는 가정 내 불화는 이혼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이혼 통계 자료를 살펴보면 설 명절 이후인 2~3월, 추석 명절 이후인 10~11월의 이혼 건수가 바로 전달보다 평균 10% 이상 높게 나타나고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전기택 박사는 명절 스트레스가 반복되는 원인에 대해 "남녀 간 가사분담이 평등하게 이뤄지지 않는 것이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전 박사는 "평상시 가정이나 학교, 전체 사회적으로 가사가 여성만의 일이 아니고 남성과 여성이 함께 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확산돼야 하는데, 그런 인식이 충분히 확산되지 않았다고 본다"고 했다.

이어 "이 같은 명절 스트레스는 결혼 자체를 꺼리는 요인으로도 작용할 수 있고, 결국 간접적으로 저출생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 "결혼 이후 남녀 간 평등한 가사분담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여성 입장에서는 출산 자체를 꺼릴 수 밖에 없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 박사는 명절 스트레스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으로 "가정 내에서 부모들이 성별과 무관하게 가사를 같이하는 문화를 확산해야 한다. 부모들이 먼저 솔선수범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학교에서도 남녀가 가사를 분담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또 사회적으로 여러가지 노력이 기울여져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22년 부부 중 가사를 공평하게 분담하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남편과 아내 모두 20%가량에 불과했다.

성인의 평균 가사노동 시간도 2019년 기준 남자가 56분, 여자가 3시간13분으로 차이가 컸다. 맞벌이 부부의 경우에도 남편의 가사노동 시간은 54분, 아내는 3시간7분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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