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고령화로 명절 모임엔 어른만 가득
아이들은 동년배 없는 명절 꺼려 모임 불편
어른들, 아이들 재롱잔치·웃음소리 그리워해
윷놀이 등 명절 게임 사라지고 모임 간소화
[서울=뉴시스]박광온 기자 = #. 전라북도 김제에 사는 전덕임(73)씨는 이웃집에 방학과 설 명절을 맞아 놀러 온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부럽다고 한다. 30대 후반인 전씨 딸은 결혼 후 아직 자녀를 낳지 않고 있고 다른 친척들도 비슷한 상황이라 명절 때 아이들 소리가 그리워져서다. 전씨는 "아이를 낳지 않는 사회라고 하는데, 정말 우리 같은 시골은 그게 크게 느껴진다"며 "불과 20년 전만 해도 설날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했는데, 이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고 한숨지었다.
최근 저출생으로 어린아이 수가 급격히 줄어든 반면 고령 인구 수는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어, 설 명절 간 가족 모임 풍경도 많이 바뀌고 있다. 제기차기와 윷놀이 등 전통 놀이를 하던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사라지고, 어른들의 술잔 기울이는 소리만 남은 풍경이다.
6일 통계청이 발표한 주민등록 인구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31일 기준 0~17세 아동 인구는 707만7206명으로, 2014년(918만6841명)보다 23%(210만9635명) 감소했다. 전체 인구에서 아동이 차지하는 비율은 2014년 18%에서 지난해 13.8%로 4.2%포인트 줄었다.
특히 합계 출산율은 2018년 0.98명으로 1명선이 무너졌으며 2022년 기준 0.778명으로 떨어진 상태다. 합계 출산율이란 가임 여성(15~49세)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뜻한다.
서울 은평구에서 5년째 유치원 교사로 일하고 있는 장모(26)씨는 "서울 내에서도 유치원에 오는 아이들이 많이 줄어든 것 같다"며 "10년 전만 해도 연령대별로 25명씩 반이 4개 정도 됐다고 하는데 지금은 5세 반부터 2개로 줄어들었고 반 자체 인원이 줄어든 반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 한국사회보장정보원이 발표한 '2023년 12월 보육사업 통계'에 따르면 전국 어린이집은 2만8954곳으로 2022년 12월 3만923곳에 비해 1969곳 줄었다. 육아정책연구소의 육아정책포럼 자료를 보면 유치원은 2018년 9021곳에서 2022년 8562곳으로 459곳(5.1%) 감소했다.
이처럼 어린아이 수는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는 반면, 고령 인구 수는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31일 기준 70대 이상 인구는 631만9402명으로, 주민등록 인구통계 집계 이래 처음으로 20대(619만7386명)를 추월했다.
또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전년보다 5.00% 증가한 973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18.96%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렇게 저출생과 인구 고령화 현상이 겹치면서, 청년층 이하는 또래가 적은 명절 모임을 불편해하고, 어른들은 일가친척이 모일 때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했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모습이다.
취업준비생 주모(28)씨는 "어렸을 때는 내 또래 친척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어른들만 가득하다"며 "그러다 보니 잔소리만 들어 이번 명절에는 집에서 쉬려고 한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5학년생인 이정준(10)군도 "친척 집에 가면 비슷한 나이대 친척들이 없어서 좀 불편하다"며 "가서 용돈 받는 건 기분 좋지만 오래 있고 싶지는 않다"고 전했다.
서울 강서구에 사는 박모(66)씨는 "불과 20년 전까지만 해도 큰 집엔 아이들이 넘쳐나 각종 놀거리와 먹을거리들을 준비했었는데, 지금은 어른들만 가득하다"며 "그때는 친척들에게 용돈 주는 게 부담스러웠는데, 지금은 용돈 부담보다 아이들의 재롱과 웃음소리가 더 그립다"고 밝혔다.
저출생으로 설 명절에 모이는 가족들의 평균 연령대도 큰 폭으로 높아지면서 윷놀이와 제기차기 등 전통놀이도 민속촌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로 줄어들었고 명절 음식도 예년처럼 많이 하지 않는 분위기다.
서울 중구에서 20년째 문방구를 운영하는 A씨는 "10년, 15년 전만 해도 이 시기에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손주들과 함께 놀려고 신이 나서 윷놀이 도구 등을 사러 왔었다"며 "그런데 아이들이 줄다 보니 그런 모습은 많이 사라졌다"고 전했다.
경기 평택시에 사는 김영미(56)씨도 "과거엔 시댁 식구들과 함께 가족들을 위한 송편과 전 등 다양한 음식들을 했었는데, 지금은 어른들만 가득하니 굳이 많은 음식을 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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