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난지 담은 지도와 피난 안내 글 맞지 않는 일 잦고
통신 두절·정전으로 온라인 소개 명령 보기도 힘들고
외지 피난 난민들 번호 표시 대피 지역 알기 어려워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가자 지구 남부 중심도시 칸유니스를 공격하는 이스라엘군이 주민들에게 소개 명령을 내리면서 오락가락해 주민들을 생명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고 미 뉴욕타임스(NYT)가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메시징 프로그램 웟츠앱(WhatsApp) 사용자들은 이스라엘군의 공격을 피할 수 있는 이점을 누린다. 그러나 웟츠앱에 올라온 칸유니스 주민들 사이의 대화 내용을 보면 이스라엘군이 때로 상충되는 소개명령을 내려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대화 내용에는 “어느 블록이 공격당할지를 어떻게 알지? 어디서 소식을 듣지?”라는 등의 글이 올라 있다.
“블럭 49는 위험한가?”
“여러분 지도를 잘 아는 사람들이 설명 좀 해주세요.”
휴대폰이 없거나 소셜 미디어에 접속할 수 없는 가자 주민들은 정확한 이스라엘군의 소개 명령 정보를 입수할 수 없어 대피가 한층 더 어렵다. 이스라엘군이 가자 지구 남부 공격을 시작하면서 상황이 한층 나빠졌다.
◆대피 안내 지도 발표에 미 정부 민간인 보호 노력 평가했지만…
이스라엘은 가자 주민들에게 피난지를 지정하고 있다고 밝힌다. 피난 정보를 혼동하는 경우 생사가 갈릴 위험이 크지만 난민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혼란이 일어나고 있다.
아비차이 아드라이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가자 지구 남부 공격이 재개된 직후 아랍어로 표기된 일련의 지도를 소셜 미디어에 올렸다. 위험한 지역과 피신할 지역을 설명하는 글이 딸린 지도였다.
지도에 표기된 각 블록의 숫자는 지난 1일 이스라엘군이 발표한 지도에 표기된 숫자와 일치한다. 이스라엘군은 아랍어로 표기된 피난 안내 전단도 살포했다. 미국은 이에 대해 민간인 보호 노력이 개선된 것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가자 주민들이 소개 명령을 따르기가 힘들다는 사실이 곧 드러났다. 가자지구의 통신이 자주 끊어지면서 다수의 가자 주민들이 온라인 지도와 지침을 알지 못하고 있다. 정전이 지속되면서 휴대폰 충전도 어려운 상황이다. 지도를 본 적이 없다는 주민들도 있다.
이스라엘군의 소개 명령이 때때로 오락가락하는 것도 문제다.
지난 2일 올린 지도에서 이스라엘군은 칸유니스 동쪽 지역 이스라엘 접경지역을 위험 지역으로 표시하고 주민들에게 남쪽 라파로 소개하라고 지정했다. 그러나 글로 표시된 소개지 블록들은 지도에 전혀 표기돼 있지 않은 상태였다. 심지어 일부 소개 지정 블록은 남부가 아닌 가자 동쪽 끝 해안가에 있었다.
지난 3일 올린 소개 명령 지도에는 피난 블록 10여 곳이 지정돼 있었으나 함께 올린 글에는 지도에 지정된 블록들 몇 개가 누락돼 있었다. 55, 99, 103-106 블록 들이 지도에는 표기돼 있었으나 글에는 빠진 것이다.
3일자 소개 명령 지도는 4일에도 다시 올랐으며 이후 이스라엘군은 9일이 돼서야 다시 칸유니스 중심지 작은 구역을 대피해야할 지역으로 지정한 지도를 올렸다. 이 지도에는 103 블록이 지도에는 지정돼 있고 글에는 누락돼 있었다.
이스라엘군은 이에 대해 소셜 미디어에 올린 지침이 “일반적 안내 일 뿐”이라고 밝혔다. 이스라엘은 민간인 희생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지만 희생자 발생이 불가피해 유감이라고 밝혀왔다.
이스라엘이 지정한 안전 지역으로 대피한 난민들도 위험에 빠지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안전 지역 대피한 난민들 공격도
유엔아동기금(UNICEF) 제임스 엘더 대변인은 “난민들도 대피 지역에서 식수와 위생이 엉망이라는 것을 안다. 피난에 따른 위험도 안다. 안전 지역이 바뀐다는 것도 안다. 안전 지역이 폭격 당한 일이 있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혼란스러워하고 겁먹은 상태에서 계속 공격받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주 이스라엘군이 안전 지대로 지정한 가자 지구 남부 이집트 접경 라파의 샤부라 지역이 폭격을 당했다. 이스라엘군은 하마스의 군사 및 행정 능력 제거를 위한 공격이라면서 국제법에 따라 “민간인 피해를 줄이기 위한 가능한 예방책”을 취했다고 밝혔다.
팔레스타인 거주지를 관할하는 이스라엘 당국인 COGAT는 가자 주민들에게 언제 어느 곳으로 대피할 지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알리고 있다고 밝혔다.
COGAT 공보 책임자인 모셰 테트로 대령은 “우리의 공격 경고가 효과가 있는 지를 확인하기 위해 계속 점검하고 있다. 메시지가 전달됐는지, 주민들이 메시지를 잘 따르는 지를 확인한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은 가자 전쟁 발발 이래 주민 절반 이상에게 소개 명령을 내렸다. 유엔에 따르면 가자 주민의 80% 이상인 190만 명 가까이가 난민이다.
난민들이 대피 지역에 몰리면서 수백 명이 화장실 1곳을 공동사용해야 하는 처지다. 유엔은 라파의 경우 “더 이상 난민을 수용할 빈 공간이 없다. 남부는 물론 다른 대피 지역도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다섯 자녀를 둔 어머니 마이사 알자라르(32)는 전쟁 초기 가자시티에서 칸유니스로 왔는데 이스라엘군이 다른 곳으로 가라고 한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이 뿌린 전단에 사람들이 겁을 먹었다”고 했다.
◆“차라리 핵폭탄을 터트려라. 그게 지금보다는 나을 것”
그는 페이스북 메신저로 통화하면서 “현재 있는 곳이 어딘지도 모르고 어느 지역에 어떤 번호가 매겨져 있는 지도 모른다. 남편은 라파로 피난할 수 있을지 알아보러 갔다. 정말 짜증난다. 사람들을 길거리로 내몰고 있다. 악취가 나고 전염병이 돈다”고 말했다.
알자라르는 울먹이면서 아이들에게 소금물을 먹여야 했던 이야기, 남편이 값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구하기도 힘든 식량을 힘들게 구하고 있다는 얘기, 아픈 아이들에게 줄 약을 구할 수 없다는 얘기 등을 길게 이어나갔다.
그는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낫다. 차라리 핵폭탄을 떨어트려라. 그게 지금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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