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민(SUMIN), '시치미' 떼다…가감 없는 '곡선 미학'

기사등록 2023/11/26 15:02:04

"'보컬리스트 수민'으로서 더 다가가고 싶어"

새 EP '시치미' 공개…12월 日서도 발매

엄정화·선우정아 피처링한 '옷장'·'인간극장' 더블타이틀곡

[서울=뉴시스] 수민. (사진 = 뮤지션 측 제공) 2023.11.26.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수민(SUMIN·박수민)은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희귀한 사례다. 싱어송라이터로서 맵시가 근사하고, 프로듀서로서 원근법이 다채롭다.
 
솔로 음반 '유어 홈(Your Home)'은 백화제방의 세련미가 무엇인지 꽃 피워냈고, 프로듀서 슬롬과 합작한 앨범 '미니시리즈(MINISERIES)'는 단편극의 상상력을 만개했다. 수민이 작업한, 글로벌 슈퍼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정규 2집 '윙스'에 실린 지민의 솔로곡 '라이(Lie)'는 이 팀에 비장한 서사를 더했다. 

수민이는 새 EP '시치미'로 명실상부 팔방미인이 됐다. 보컬리스트라는 명함이 더 깊게 새겨졌다. 유연하고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음색엔 그간 국내 대중음악계가 가보지 못한 영역이 아른거린다.

사실 수민이 그간 발표한 노래들은 '곡선의 미학'이라고 불릴 정도로 유려하고 은유적이었다. 그 돌고 도는 기하학적 원형의 길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이들이 열광했다. 이번 '시치미'에선 그 길을 좀 덜 돌아가면서 공감대의 폭을 넓혔다. 수민이 만든 음악이니, 마냥 쉽지는 않지만 이전보다 좀 더 대중적인 건 사실이다.

수민이 곡선의 미학에 녹여낸 '가감 없음' 덕분이다. 안정기로 접어든 그녀의 삶이 자연스레 반영된 음반 때문이기도 하다. 음악적 변화의 당위성을 예술적 미(美)와 숭고함으로 욕망하는 수민 특유의 수사학이 이번엔 비행기처럼 구름 사이로 높이 떴다, 안정적으로 온기를 갖고 연착륙했다.

'시치미'는 이렇게 2023년이 아직 한 달이 남았지만, 올해의 명반 중 하나가 됐다. 그런데 수민은 역작 앞에서도 그렇지 않다고 '시치미'를 뗐다. 다음은 최근 서울 효창동 자택에서 만나 수민과 나눈 일문일답.

-앨범에 대한 반응이 너무 좋아요. 우여곡절 끝에 발매하신 앨범인데 소회가 궁금합니다.

"엄청 시원섭섭해요. 애착이 컸던 앨범이에요. 자식이 독립한 것 같은 느낌이 들고요. 좋기도 하고요. 여러 가지 복잡한 심경인 것 같아요. 좋은 의미로 복잡해요."

-이달 초 '시치미'의 '리스닝 세션'에서 작업 중 (음원이 담긴) 하드를 날리셨다고 털어놓으셨잖아요. 예술이라는 게 처음 창작할 당시 분위기, 느낌의 아우라를 복제하기 힘들어서 소환해내기엔 쉽지는 않으셨을 것 같아요.

"사실 그때 고백 못한 게 하나 더 있었는데, 하드가 한 번 더 날라갔었어요. 근네 제가 ENTP거든요. 불안정한 감정에 머물러 있는 것보다는 빨리 대책을 마련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죠. 처음 하드가 날라갔을 때는 정신이 없었는데 두 번째 때는 '뭐 어떻게 하겠어. 할 수 있는 걸 해야지' 생각했어요. 다행히 마스터링에 착수했었던 기억이 있어서 마스터에 참여했던 나잠수 엔지니어분께 부탁을 드려서 공유받고 그걸 뼈대로 해 제 음악을 제가 카피해서 재구성을 했죠. 질을 더 높이기 위해 디테일들을 다시 만들어 나갔습니다. 씁쓸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더 좋았다'인 것 같습니다."

-말 나온 김에 이번 음반의 믹싱과 마스터링이 너무 좋아요. 질감이 입체적이면서 사운드가 깔끔합니다.

"믹싱은 제가 직접 집행했고 마스터링은 나잠수 엔지니어분께서 해주셨어요. 이번 앨범에선 저의 친절한 모습과 불친절한 모습의 어떤 경계를 좀 부드럽게 만들고 싶었어요. 자극적인 부분들은 조금 더 도드라지게 표현했는데, 진짜 집중했던 부분은 사람들한테 편하게 들릴 수 있는 가사 작법 전체를 다 고려했던 것 같아요. 믹싱은 보컬이 더 잘 들릴 수 있는 방식을 굉장히 고민했죠. 제가 프로듀서 룰도 있어서 그런지 자꾸 저를 프로듀싱하는 습관이 있어요. 프로덕션 위주로 가는 습관이 있어서 보컬로서 녹음을 하지만 프로덕션이 유난히 부각된 음악들을 주로 해왔었다고 느껴지거든요. 근데 이번 앨범에서는 '보컬리스트 수민'으로서 조금 더 친근감 있게 다가갈 수 있는 요소에 대해 고민했어요."
[서울=뉴시스] 수민. (사진 = 뮤지션 측 제공) 2023.11.26.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근데 예전보다 '좀 많이 듣기 편해졌다'는 반응이 팬들 사이에서 많더라고요. 수민 씨의 방향성이 다 통하는 거네요.

"사실 전 좀 돌아가는 유형의 아티스트이기는 해요. 그 여정이 꽤 즐겁거든요. 가끔은 강아지 같을 때도 있고 가끔은 고양이 같을 때도 있는 느낌으로 앨범을 만들다가, 이번 '시치미'에서는 개인적인 삶을 좀 많이 반영했어요. 요즘 제 삶이 '안정기로 돌입하고 있다'라는 느낌이 드는데 그게 저도 모르게 앨범에 반영된 느낌이에요. 자이언티 씨랑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데 자이언티 씨도 '매운 맛'으로 '아티스트 커리어'를 쌓아가다가 중간 지점에서 '부드러운 자이언티'의 모습을 한번 보여준 적이 있었어요. 그런 모습들이 잘 발현한 걸 보고 그 커리어를 너무 닮고 싶었어요. 힙스터들이 빠르게 소비할 수 있는 음악도 너무너무 좋지만 제가 어렸을 때 듣고 자라 자연스레 탑재된 가요의 감성부터 팝의 감성까지 대체로 아우르고 싶어요. 그런 생각이 든 시기인데, 이거 되게 좋아요. 제가 특정 장르에서 플레이를 하는 아티스트로 소개되는 것에 대한 서운함도 늘 있었지만 그것마저도 너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여기까지 왔어요. 그런데 지금은 제 나이와 제 안정적인 삶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음악을 하고 있어요. 물론 계산해야 하는 것도 있지만 억지스러운 감정을 끄집어내서 작업을 해야 하는 때는 이제 좀 많이 지나간 느낌입니다."

-근데 좋은 음악을 하시려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세련된 화법의 곡들이 나온 거 같아요. 이제 대중적 화법을 생각하시는 건, 수민 씨가 할 수 있는 과정들은 '이미 다 겪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인가요?

"'할 만큼 했다'는 아니지만 '그래도 경험했다'는 있는 것 같아요. 다양한 옵션을 많이 만들어 놓다 보니까 이번엔 '이 길로 갈까 저 길로 갈까' 판단이 좀 서는 것 같아요. 한 번도 이탈하지 않고 저를 꾸준히 좋아해 주시는 팬분들이 있거든요. 그게 저는 너무 신기해요. 제 음악적인 변화를 인내와 끈기로 아주 기다려주시는 분들이요."

-수민 자체가 브랜드화된 거죠. 최근 안정된 삶은 '아티스트 수민' '개인 박수민' 모두에게 해당하는 건가요?

"당연히 사람이 늘 안정적일 수는 없죠. 나이 들면서 그때마다 직면하는 어떤 문제들이 또 생기잖아요.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있고 그게 다 '가감 없이' 삶에 반영되는 것 같아요. 제가 이전보다 성숙해졌다고는 하지만 가끔씩 저도 도파민 중독의 상태로 있을 때도 있고 그런 모습들이 '옷장'처럼 귀엽고 위트 있는 노래로 발현이 될 때도 있죠. 지금은 그냥 느껴지는 감정들 그대로 좀 담아내려고 하는데 그 첫 단추가 '시치미'인 것 같아요."

-'시치미'라는 제목도 너무 좋아요.

"저랑 함께 작업하는 비주얼 디렉터 소요(SOYO)라는 친구가 있거든요. 제가 매일 매일 전화해서 작업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인데, 제 성향과 성격의 변화를 이 친구가 가장 잘 알고 있어요. 제가 굉장히 솔직하다고 스스로 말하고 다녔던 모습이 있었는데 그 당시에 '방어 기제'가 꽤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 상황에 직면한 때 앨범 작업을 했는데 제목이 뻔한 문장이나 단어보다는 쓰기에도 귀엽고, 말하기에도 위트가 있고 '그 모든 게 다 수민스러우면 좋겠다'는 고민을 했어요. 그것에 대해 소요랑 얘기하다가 그가 '시치미가 어떻겠냐'고 제안을 해준 거예요."

-'시치미'라는 어감이 수민 씨랑 진짜 잘 어울려요. 형태나 어감도 고민하신 거죠?

"외국인들이 앨범 타이틀을 부를 때를 늘 상상해요. 받침도 없고 탁음도 없고 하니까 다들 쉽게 발음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리고 앨범 제목들을 대체로 한글로 짓는 걸 선호하는 편이에요. 방어기제를 내려놓지 못했던 제 감정이 침입 당했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는데 그런 부분들이랑 제가 성숙해가는 과정에서 시치미라는 말이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그래서 아트워크에서도 제가 일부러 입을 가렸어요. 시치미라는 말과 너무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요."

-물론 노래마다 다르겠지만, 작사를 하실 때 가장 신경 쓰는 뉘앙스나 발음법 같은 게 있나요?
[서울=뉴시스] 수민. (사진 = 뮤지션 측 제공) 2023.11.26.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이전엔 텍스처 위주의 음악이 '진짜 재밌다'라고 느껴졌었어요. 이번에는 아무래도 더 많은 분들이 들어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고 (대중적인) 확장을 목표로 만든 앨범이었다 보니까 가사를 뱉을 때 가독성 같은 것들을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더라고요. 첫 트랙 '늦은 아침'의 경우 굉장히 미니멀한 발라드 트랙이다 보니까, 가사도 제 소리도 모든 연주도 디테일하게 잘 들릴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굉장히 정확하게 발음하는 것에 목표를 둔 트랙이죠. '옷장' 같은 경우도 비슷하긴 하지만 소리를 낼 때 제가 마치 '드럼 같았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이 있었어요. 리듬도 정확하고 후크(HOOK)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외국인들이 들었을 때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발음이 너무 재밌어서 그냥 카피하게 되는 그런 방향성으로 곡들을 써내려갔어요. 그렇다고 가사를 놓치려고도 하지 않았죠."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프로듀싱적인 측면이 아니라 플레이어적인 측면에서 더 신경을 많이 쓰신 거네요. '리스닝 세션'에서 말씀하신 '늦은 아침' 배경은 이곳이 된 거죠? 송년회를 하신 뒤 '늦은 아침'을 맞이하신 곳이요.

"송년회 때 오전 5~6시쯤 헤어졌고 이곳 소파에서 잠들었어요. 와주신 분들이 정리하고 간다고 했는데 그냥 가라고 제가 했고 너무 피곤해서 잠들고 일어났는데 그때가 오전 11시쯤이더라고요. 근데 이곳 꼬락서니를 보자마자 울었거든요. 제 마음상태가 어지럽혀져 있는 모습들로 귀결되는 것 같아서요. '이 상황을 잘 간직해야지'라는 생각을 했고 그걸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음악으로 간직해야지'라고 마음 먹었죠. 집을 다 치우자마자 작업실에서 시도해 본 적 없는 '수민표 발라드'를 만들기 시작했죠. 덤덤하고 담대하고 담백한 '수민 표 발라드'라는 걸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이 음악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이 노래는 대중적으로도 흥할 거 같아요.

"저로서는 첫 시도였었는데 곡을 다 만들어 놓고 제목을 못 붙이고 있었어요. 또 소요에게 전화를 해 '이런 상황이어서 이런 노래를 만들었는데 제목을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고 얘기했더니, '늦은 아침'으로 하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늦은 아침'이라는 말이 너무 슬픈 거예요. 왜냐하면 제가 '아침형 인간'이거든요. 원래 늦은 아침엔 잘 안 일어나요. 근데 뭔가 그렇게 감정의 상태의 골이 깊어지면서, 저의 어떤 물리적인 변화나 제가 예상하지 못했던 저의 우울함이 슬픔과 잘 맞물렸어요. 그래서 '늦은 아침'이라는 게 상징하는 바가 많다라는 생각을 했고 제목이 됐죠."

-'옷장'은 피처링한 엄정화 씨랑 되게 잘 맞는 곡이더라고요. 근데 베이스가 이 곡의 아이덴티티라고 하셨습니다.

"일단 저도 베이스를 연주하거든요. 베이스라는 악기는 너무 매력적이에요. 또 드럼과 베이스는 모든 밴드 연주에서 기초가 된다고 생각을 해요. 저도 베이스와 드럼이 부각된 음악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죠. 솔, 펑크, 디스코에서 너무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언젠가는 베이스 실연자를 제 앨범에 신중하게 섭외해서 꼭 연주를 받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죠. 그래서 베이스 실연을 박종우(피제이드레블(PJNOTREBLE)) 씨에게 부탁을 드렸어요. 본인의 연주 색깔을 잃지 않으면서 국내에서 정말 많은 세션을 하셨어요. 그게 정말 어렵거든요. 연주가 스타일리시하면서 프로듀싱도 하시는 분이라, 저희 프로덕션에서도 과도하지 않으면서 얼마나 연출적으로 베이스라는 악기에 잘 접근하실지 알았어요. 역시 너무 흥분하지 않고 특정 포인트에서만 매운 맛을 보여주고 제가 원하는 아이코닉한 베이스 라인을 만들어주셨습니다."

-'눈치'라는 트랙은 두 타이틀곡 사이에 '눈치 있게' 잘 끼여 있습니다. 

"'눈치'는 작업을 하면서 이번 앨범 수록곡일 수밖에 없겠다는 직감이 있었어요. 근데 타이틀곡 사이에 그냥 껴 놓고 싶었어요. 저한테는 굉장히 최신 음악이기도 했고 나름 획기적이라고 생각했던 어젠다의 곡이라 타이틀곡과 타이틀곡 사이에 끼워넣어서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들을 수 있게 하자는 꽤나 단순한 이유였죠. 그리고 사실 '인간극장'이라는 꽤나 말랑말랑한, 평소 수민한테 볼 수 없었던 모습까지 가는데 빌드업을 하기에도 좋은 순번이라고 생각했고요."

-'인간극장'은 어떻게 만들어진 곡인가요?

"작업하는 '이거 되게 '이지 리스닝용'으로 만들고 있긴 하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사실 어렵고 자극적이고 테크니컬한 음악만이 '좋은 음악'이라고 할 수는 없어요. '선택적으로 잘 쓸 수 있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라는 생각도 늘 하고 있었고요. 이렇게 잘 정제돼 있고 마무리가 잘 돼 보이는 앨범에서 '이 정도 난도의 곡은 정말 필수겠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내용적으로는 '인간적인 고민'이 반영됐어요. 사실 저는 가장 인간적이어야지 음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런 부분들에 대해선 좀 늘 감췄던 것 같아요. 늘 웃으면서 되게 일관했던 것 같은데, 그러다 보니까 그게 쌓이면서 속이 썩는 것 같고 뭔가 '저답지 않은 것 같다'라는 생각이 점점 들었어요. 집에 있을 때는 아무랑 연락을 하지 않다가 밖에서는 '나이스하게 보이려고 노력'을 하고요. 저에게만 이런 '이중적 면모'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찾아보니 꽤나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이런 현상을 겪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싶어서 뭔가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을 좀 내려놓는 만들고 싶다라는 생각이 커졌고 확신이 들어서 만들었죠. 이후에 선우정아라는 사람의 목소리를 너무 받고 싶은 거예요. 저보다 담담하게 가사를 읊어 내려가 주실 수 있으실 것 같아서 선우정아 언니밖에 생각이 나질 않았어요. 선우정아 언니랑은 만났을 법도 한데, 서로 같은 공연에 섭외된 적도 없고 친해질 계기도 없었거든요. 그런데 이 곡이 친해진 계기가 됐어요. 선우정아 언니도 곡의 이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있다고 말씀을 해 주셨어요. 또 언니가 특별히 본인이가사를 쓰시거나 제가 만든 가사와 멜로디를 특별히 수정하지 않으셨어요."
[서울=뉴시스] 수민. (사진 = 뮤지션 측 제공) 2023.11.26.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여성 뮤지션 아이콘들인 엄정화, 선우정아 씨 두 분이 수민 씨한테 이렇게 힘을 실어주신 것만 해도 의미가 있는 앨범이라고 생각해요. 또 메이저와 인디를 아우를 수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고요.

"맞아요. 저도 너무 감개무량해요. 사실 저도 이렇게 될 지 몰랐어요."

-'비행기' 트랙도 너무 좋았어요. '리스닝 세션'에서 '사운드 가독성'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 표현이 흥미로웠습니다.

"이 곡은 사실 이번 앨범 내에서 그루브나 리듬적인 요소들이 가장 불친절하긴 해요. 리듬들이 깔끔하게 맞아떨어진다기보다는 어딘가 비틀어져 있어요. 레이백(lay back·리듬을 정박보다 뒤로 미는 것)도 작업을 하면서 많이 옮겼거든요. 미세하게 계속 옮기면서 어떻게 하면 좀 더 '꾸덕꾸덕'한 리듬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했죠. 이 곡 역시 박종우 씨가 실현을 해주셨어요. 박종우 씨가 이 곡의 베이스를 꼭 연주 해주셔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류의 음악들을 정말 잘 소화하는 뮤지션이거든요. 노래가 조금 불친절할 수 있겠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있었어요. 가사는 저 혼자 수위 조절을 하면서 오로지 '소리 텍스처'에만 집중했죠. 그렇다고 해서 가사 내용 자체는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래퍼 피에이치원(pH-1) 씨가 딕션이 확실한 분이라 그 점을 맡아주셨죠. 저와 오티스 림(Otis Lim) 씨가 곡의 분위기를 만들어줬다면 pH-1이 곡의 정확한 주제나 스토리를 많이 들려줬어요."

-'기분 좋아지는 노래'는 이번 음반을 마무리하기에 딱이에요. 귀여우면서도 깔끔한. 이 곡은 어떤 의도, 상징성이 있나요?

"사실 저한테는 이게 보너스 트랙 같은 음악이거든요. '깜짝 선물' 같은 음악이죠. 제가 이 곡 작업을 할 때 진짜 기분이 너무너무 좋았어요. '듣는 사람도 무조건 기분 좋아질 것 같은데, 나만 좋을 수 없는데'라는 말도 안 되는 나르시시즘에 빠졌죠. 프로덕션이 많이 가미된 음악이기는 해요. 장면 전환도 많고요. 동시에 보컬적인 디테일도 다 챙기려고 했어요. '이런 재밌는 노래가 있네'라는 지점을 목표로 삼았던 노래예요. 이 곡도 사실 되게 섹시하다면 섹시한 곡인데 이성을 만났을 때 저의 자세에 대한 것도 많이 포함돼 있어요. 이 곡을 작업할 때 제이콥 콜리어라는 아티스트에 많이 꽂혀 있던 상태였어요. 영향을 받은 부분도 있죠. 그리고 래퍼 소코도모(sokodomo)가 백보컬로 참여했는데, 피처링보다는 오히려 그렇게 살짝 감춰져 있는 식으로 들어오는 게 너무 재밌을 거 같았어요. 솔 음악이나 옛날 앨범들 크레디트를 찾아보면 멋진 싱어 분들이 코러스로만 참여하는 경우도 많잖아요. 그런 부분이 되게 재밌었어요. 소코도모의 목소리는 제가 갖고 있지 못한 대역의 소리를 구사하다 보니까 그런 것들이 합쳐지면 '진짜 재밌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진짜 수민 씨 음반은 이전에도 느꼈지만, 이미지적으로는 치밀한데 감성적인 부분도 되게 찔러요. 그게 맵시가 있는데 이번 '시치미'에서도 그 맵시가 느껴지지만 '편안한 느낌'이 좀 더 부여된 것 같아요. 근데 수민 씨 입장에선 쉽지 않았을 거 같아요. 힘을 더 쓸 수 있는데, 덜 쓰는 것도 어렵잖아요.

"그쵸. 그런데 놀랍게도 이번에도 이전과 되게 비슷한 에너지를 썼어요. 제 음악을 좋아해 주시거나 제가 궁금한 분들은 ' 노선을 확 틀었네'라는 생각을 하실 수도 있고요. 저도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도 들고요. 다만 저는 반 발짝 움직인 것 같은데, 한 발짝 움직였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듣는 분들이 급체하지 않도록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제 음악을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그래서 앨범을 준비하는 과정, 부수적인 작업들을 하는 과정에서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캡션 하나, 음감회 포스터, 계속 올렸던 티징 이미지와 트랙리스트까지. 얼굴 각도에도 신경을 썼죠. 그렇게 디테일들을 계속 만들었어요."

-이전보다 편안하고 쉽게 보인다고, 절대 쉽게 만들어지는 건 아니라는 걸 다시 깨달았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수민 씨의 넓은 스펙트럼을 다 경험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활동 반경도 계속 넓어지는 것 같고요.

"사실 플레이어를 하고 싶은 건지 프로듀서를 하고 싶은 건지 고민하고 있어요. 그 비율이 거의 51대 49 비율로 되게 비등비등해요. 그러니까 지금 제가 그걸 같이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때때로 어떤 자리에선 조금 더 명확하고 간결한 수식어 딱 하나가 필요할 때가 있잖아요. 그런 자리에서 설명이 길어지는 것에 대한 콤플렉스가 좀 있는 것 같아요. 구구절절함 대신 시원시원하게 소개를 해주고 싶을 때가 있는 거죠. 아직은 과도기 과정을 겪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아마 근데 이런 생각을 계속 하게 될 것 같아요. '그냥 제 팔자다. 이게 수민스러운 거구나' 싶기도 해요."

-그런 과정에서 이번 앨범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이 보컬리스트 되게 재밌다'라고 생각해서 열어봤는데 '프로듀싱도 수민이 했네'라는 느낌이 들었으면 해요. 아무래도 이전보다 보컬에 다른 의미로 심혈을 많이 기울였다 보니까, 보컬리스트 수민으로서의 매력을 먼저 느껴주시고 수민이가 만들었구나를 느껴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감히 했어요. '시치미'는 바이닐로도 발매(25일) 됐고, 12월13일에는 일본에서 발매가 돼요. 또 12월엔 앨범 발매 기념 일본 투어도 돌아요. 도와주시는 분들이 생겨나면서 12월 첫째 주부터 중순까지 일본에 체류하며 도쿄, 오사카에서 몇 차례씩 공연할 거 같아요. 일본 라디오 채널도 몇 군데 나가고요. 내년 초엔 한국에서도 콘서트를 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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