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대책, 패러다임 바꿔야…대통령직속 대책위 필요"(종합)

기사등록 2023/09/19 15:11:47 최종수정 2023/09/19 18:08:05

"지자체 자살대응 역량 강화해야"

종교계도 범국가 대책 마련 촉구

"유가족 활동 자살예방 큰 효과"

[서울=뉴시스] 조성봉 기자=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열린 '정부의 생명존중·자살방지 정책 평가와 향후 과제' 토론회에서 강기윤(오른쪽) 국민의힘 의원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2023.09.19. suncho21@newsis.com
[서울=뉴시스] 백영미 기자 =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1위인 자살률을 낮추려면 상설화된 대통령 직속 자살대책위원회를 컨트롤타워로 만들고 지자체의 자살 대응 역량을 강화해 전 부처, 지자체, 의료계, 종교계, 시민단체 등이 협력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생명존중·자살예방 정책 토론회'가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김대선 한국종교인연대 상임위원장, 오웅진 신부, 원불교 김대선 교무 등 종교 지도자들과 대통령실, 학계, 시민단체, 자살유가족, 정부당국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양두석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자살방센터장이 좌장을 맡아 진행된 토론회에서 박경석 시민사회단체 꿈에품에 대표는 "자살공화국이라는 국가적 재난 상황 속에서 대통령실이 컨트롤타워가 되고 국민과 정부 부처가 합심해 이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며 "자살정책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국가 차원에서 모든 주체들이 함께 참여해 대응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박인주 나눔국민운동본부 이사장은 "민관산학이 참여하는 정책집행기구 성격의 대통령 직속 자살대책위원회 구성한 후 위원회 산하에 국가종합자살대책지휘센터를 설치하고 17개 광역시도와 226개 기초자치단체에도 자살대책위원회를 두고 운영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자살예방 예산도 국가의 책임성 강화 차원에서 2023년도 488억 원에서 3000억 원으로 대폭 증액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의 지난해 합계 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낳으리라 예상되는 자녀 수)은 0.78명으로 OECD 회원국 중 꼴찌인 반면 자살률은 OECD 회원국 중 1위다. 2021년 기준 우리나라의 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는 23.6명으로, OECD 평균(11.1명)보다 2배 이상 많다. 또 자살은 암(26.0%), 심장 질환(9.9%), 폐렴(7.2%), 뇌혈관 질환(7.1%)에 이어 한국인 사망원인 5위(4.2%)다. 자살 또는 자살 시도자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6조5000억 원 가량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17개 시도와 226개 지방자치단체 중 일반인들에게 전문적인 상담을 해줄 수 있는 자살예방센터가 있는 곳은 38곳이고, 내부에 상담 조직을 갖춘 지자체는 87곳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자살은 사회경제적 원인과 밀접해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지역사회 중심으로 자살 대응 역량을 강화하고 정부와 지자체가 종교·민간단체와 협업해 구체적인 자살예방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범수 동국대 생사문화산업학과 교수는 "자살 위험자에 대한 접근은 아직까지도 여전히 정신 및 보건의료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어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며 "자살대책 사업은 각 지방자치단체 주도로 이뤄져야 하고, 지방자치단체에도 예산을 확대 배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은 지난 2017년 자살을 '대부분 내몰린 끝의 죽음'으로 규정하고 ‘누구도 자살로 내몰릴 수 없는 사회 실현을 지향한다'고 선언했다. 이후 국가, 지방 공공 단체, 민간단체, 기업, 국민의 자살예방의 역할을 명확화하고, 정부와 각 단체간 협력을 통해 자살을 대폭 줄였다.

하상훈 생명의전화 원장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예산을 매칭해서라도 각 지역의 정신건강복지센터와 독립적인 지역 자살예방센터를 만들어 자살예방 사업의 전달체계를 확립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대통령 직속이 아닌 현 국무총리 직속 위원회가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무총리가 주재하는 현 자살예방정책위원회가 14개 중앙부처에 대한 조정 역할을 할 수 있는 실질적인 컨트롤 타워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사자인 유가족이 사회적 활동에 적극 참여해 애도의 과정을 갖고 자살도 예방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고, 유가족의 목소리를 자살 예방 정책에 적극 반영해 정책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견해도 나왔다. 

김혜정 자살유가족과 따뜻한 친구들 대표는 "자살로 떠난 이들은 나약하거나 무책임해서 목숨을 버린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도 강렬하게 삶을 원했던 사람들"이라면서 "유가족은 가족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갑작스런 이별로 인한 상실감, 사회적 낙인으로 자살 고위험군 1순위가 되지만 고통을 나누기 매우 어려운 실정이여서 정교한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조성봉 기자=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열린 '정부의 생명존중·자살방지 정책 평가와 향후 과제' 토론회에서 꽃동네 오웅진 신부가 박수를 치고 있다.  2023.09.19. suncho21@newsis.com
풀뿌리 민간 조직이 자살 예방을 위한 사회문화적 인식 확대에 나서 정부의 지원 정책의 빈틈을 메워야 한다고 보고 있다. 유가족도 예외가 아니다.

김 대표는 "자살 유가족의 자율적인 활동이 자살 예방에 가장 강력한 효과가 있다"면서 "미국은 자살 유가족 행진 등을 통해 유가족이 서로 치유를 돕고 사회적 애도의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도록 하면서 강력한 자살 예방 메시지도 던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왜 우울증 약을 계속 먹어야 하나, 우울증은 결과일 뿐 자살의 원인이 아니다"면서 "위기일 때 정신과 진료도 필요하지만, 치료 기간이 길어질수록 사회적 고립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지적했다. 또 "유가족은 자살의 원인을 누구보다 잘 감지하고 있는 만큼 이들의 목소리를 자살 예방 정책에 적극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종교계는 자살률을 낮추려면 범국가적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김대선 한국종교인연대 상임위원장은 "오늘 이 자리는 형식적인 토론회가 되어선 안 된다"면서 "하루 평균 40명에 가까운 생명이 자살로 목숨을 잃고 있는데, 이대로 사회가 지속 가능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면서 무원스님(한국종교인연대 공동상임대표)의 축사를 대독했다. 이어 "종교계와 시민사회가 정부와 힘을 합해 거버넌스(참여기구)를 만들어 국민들의 마음을 돌려놓는 근본적인 전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웅진 신부(예수의꽃동네유지재단 이사장)는 "생명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것이므로 어떤 이유로도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가서는 안 된다"며 "정치, 사회 지도층의 참여로 생명존중 정신을 고양시켜 자살률을 낮추는 데 솔선하자"고 촉구했다.

국회와 정부, 대통령실도 자살 예방 정책에 힘을 모으겠다고 약속했다.

강기윤 국민의힘 국회의원은 "생명 존중과 자살예방을 위해 묵묵히 노력하는 시민사회단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국회 차원에서 추진해야 하는 일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두리 보건복지부 자살예방정책과 과장은 "자살 예방을 위한 사회 안전망 확충을 위해 정부와 시민단체, 종교계 등과의 민관 협력이 중요하다"면서 "자살로 인한 사망이 재난 수준으로 심각해 관련 예산도 점진적이 아닌 대폭 확충할 필요가 있다. 3천 억 정도 증액된다면 각종 정책에 균형 있게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통령실 김대남 국민통합국장(시민소통비서관 직무대리)도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에서 자살예방에 필요한 정보들을 취합했고, 국가가 해야 할 몫이 있어 대통령실에서 꼼꼼히 살펴보겠다"며 "추석을 기점으로 기존 외교에서 민생,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힘을 더 싣게 되는 만큼 자살예방 정책에 더욱 신경을 쓰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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