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링포그·공용 에어컨으로 '한증막' 여름 나는 쪽방촌[현장]

기사등록 2023/08/01 07:00:00 최종수정 2023/08/01 07:29:33

영등포 쪽방촌 골목 4곳에 올 6월 설치

물 분사해 온도 낮춰 "더 설치해줬으면"

주민 8~12명당 공용 에어컨 1~2대 둬

"에어컨 덕에 방 안도 서늘" 주민 만족

고가차도 그늘 피서도 "운동으로 이겨"

[서울=뉴시스] 정진형 기자=서울 전역에 폭염 경보가 내려지는 등 기록적인 '한증막 더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지난달 31일 찾은 서울 영등포구 쪽방촌의 주민들은 '쿨링포그'와 공용 에어컨에 의지해 더위를 나고 있었다. 사진은 영등포구 영등포동 쪽방촌에서 공용 에어컨을 가동한 모습. 2023.07.31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정진형 기자 = 서울 전역에 폭염 경보가 내려지는 등 기록적인 '한증막 더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영등포 쪽방촌 주민들은 '쿨링포그'와 공용 에어컨에 의지해 더위를 나고 있었다.

지난달 31일 오전 기자가 찾은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본동 쪽방촌 큰 골목길에선 '쿨링포그'가 열심히 작동하며 물을 뿌리고 있었다.

쿨링포그란 빗방울의 약 1000만분의 1 크기로 수돗물을 고압 분사해 주변 온도를 3~5도 낮춰 옥외 더위를 식히는 냉방장치다. 영등포 쪽방촌에는 여름 직전인 지난달 중순 골목 4군데에 설치해 첫 가동했다.

쪽방촌에서 만난 주민 김충남(77)씨는 "더우면 더운대로 사는 거지"라면서도 "쿨링포그 덕에 예전보다 좋아지긴 했다. 좀 더 설치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만 노즐에서 쏜 물안개는 채 길바닥에 닿기 전에 스러지는 등 쿨링포그도 한낮 기온 35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에는 힘을 쓰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다른 쪽방촌과 달리 어른 키를 훌쩍 넘긴 높이에서 물이 분사된 탓이다.

김형옥 영등포 쪽방상담소장은 "앞서 설치된 곳에서 너무 낮게 달면 주민들이 건들여 고장이 잦대서 높게 달았는데 효과가 좀 떨어져서 보완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가동 시간도 2시간 가량 더 늘릴 계획이다.

한낮 폭염에 달궈진 골목길을 식히기 위한 '살수'도 여전히 병행되고 있다.

기온이 32도를 넘길 때 하루 한 차례 소화전 호스를 연결해 영등포 쪽방상담소 직원들과 주민까지 5~6명이 달라붙어 2시간 동안 골목을 돌며 물을 뿌리고 있다고 한다.

김 소장은 "폭염 때문에 저번주는 내내 뿌렸는데 이번주도 그럴 거 같다"며 "물을 뿌리면 30~40분이면 다 말라버려서 더 더워지면 오전, 오후 한 번씩 더 뿌릴 생각"이라고 했다.

지난 2018~2019년 폭염을 계기로 서울시 등 지자체 지원을 받아 설치한 '공용 에어컨'도 쪽방촌 주민들이 한여름 더위를 견디는 데 한몫을 하고 있다.

[서울=뉴시스] 조수정 기자 = 사진은 지난달 2일 서울 종로구 쪽방촌. 2023.07.02. chocrystal@newsis.com


공용 에어컨은 1개 층에 주민 3명 이상이 거주하면 설치할 수 있다. 혹서기인 7~9월에는 전기요금이 지원돼 큰 부담 없이 틀 수 있다고 한다.

공용 통로에 커튼형 가림막(자바라)을 쳐서 냉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한 채 에어컨을 가동하고 있었다. 한개 층에 사는 주민 8~12명이 에어컨 1~2대에 의존하고 있지만 이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다고 주민들은 입을 모은다.

누워서 TV를 보고 있던 한 주민은 "에어컨 덕에 문만 열어놔도 방 안까지 서늘하다"며 "선풍기만 있을 때보다 낫다"고 전했다.

쪽방상담소 직원들이 순찰을 돌면서 에어컨을 틀라고 권유하는 모습도 보였다. 상의를 걷어 올린 또다른 주민은 "이정도 더위면 선풍기로도 견딜만 하다"며 손사래를 쳤다.

다만 공용 에어컨은 건물이 노후하거나 집주인이 동의하지 않는 경우 설치가 어렵다고 한다. 슬레이트 지붕 위에 실외기를 올려놓은 경우도 있었다.

김 소장은 "서울시 공용 에어컨만 12대에 주민 개개인이 신청해서 다는 경우도 있다"며 "쪽방촌에도 절반 정도는 에어컨이 보급된 거 같다"고 말했다.

바람이 잘 부는 인근 고가차도 밑 그늘에서 땀을 식히는 전통적인 피서법도 여전했다. 이것도 여의치 않을 경우 근처 지하상가나 영등포역 대합실로 간다고 한다.

[구미=뉴시스] 이무열 기자 = 폭염이 연일 계속된 31일 오후 경북 구미시 송정동 신평육교 인근 도로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다. 2023.07.31. lmy@newsis.com


쪽방상담소가 운영하는 무더위 쉼터도 무료로 시원한 생수와 음료수를 나눠주고 있어 주민들이 종종 찾는 피서장소다.

고가차도 아래에는 간이의자를 들고 나오거나 보도블럭에 걸터앉은 쪽방촌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땀을 식히고 있었다. 한 할머니는 보도 턱에 앉아 연신 부채질을 하며 더위를 쫓았다.

70대 장모씨는 구릿빛 몸을 드러낸 반바지 차림으로 골목에 상을 펴고 식사를 하고 있었다. 장씨는 매일 역기 운동을 한다며 "집안이 타고났다. 어머니도 올해 96살인데 여전히 밭에서 김을 매도 멀쩡하다"며 "운동하면 다 이겨낼 수 있다"고 웃어보였다.

하지만 여름철 더위를 나다보면 전기료, 수도세 폭탄을 맞게 마련이다. 쪽방촌 주민들은 요금 지원을 받지만 그마저도 부담거리다.

50년째 쪽방촌 건물을 관리하는 박복례(85) 할머니는 세입자 4명에 본인까지 살면서 한달동안 전기료가 4만원 가량 나와 그나마 다행이라면서도 "딸네 집은 수도세만 50만원 넘게 나왔더라. 세입자들이 더워서 물을 많이 쓰는지 어쩐지"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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