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종합병원 타이틀, 필수의료 강화해야 유지…이번엔 통할까

기사등록 2023/06/21 05:00:00 최종수정 2023/06/21 06:28:05

복지부 '5기 상급종합병원 지정' 기준…중증 진료 강화

입원환자전담전문의·중환자 병상 상대평가 지표 신설

전문가 "상급종합병원, 본연 역할 수행 관심 가질 것"

[서울=뉴시스] 20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중증 응급환자 진료에 대한 종합병원의 노력을 유도하기 위해 경증 외래 환자 진료에 대한 지표 비중을 낮추고 중증 응급환자 진료 비중은 높였다. 입원 중증환자 비율이 높으면 가점도 부여하기로 했다. (그래픽=전진우 기자) 618tue@newsis.com
[서울=뉴시스]이연희 권지원 기자 = 최근 소아과 부족, '응급실 뺑뺑이' 사망 등 필수의료 공백 우려가 커지자 정부가 '상급종합병원' 지정 기준에 필수의료 분야를 대폭 강화해 대형병원의 참여를 유도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 소아청소년과 및 산부인과 상시 입원 체계를 갖추지 않은 종합병원은 '상급종합병원'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반면 중증 환자를 많이 진료할수록 높은 점수를 받게 된다.

21일 뉴시스 취재를 종합하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상급종합병원' 타이틀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대형 종합병원에서 실질적인 변화가 생길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보건복지부(복지부)는 지난 20일 제5기 상급종합 지정 기준을 발표해 상급종합병원의 중증 환자 진료 기능 관련 지표를 대폭 강화했다. 입원 환자 중 중증 환자 비율을 높이고, 입원 및 외래환자 중 경증환자 비율은 낮췄다.

상급종합병원은 중증 질환에 대해 난이도 높은 의료행위를 전문적으로 제공하는 종합병원으로, 복지부 장관이 3년마다 지정한다. 상급종합병원으로 지정되면 종합병원보다 5%p(포인트) 높은 30% 수준의 수가를 받게 된다.

이번에 확정된 제5기 지정기준은 상급종합병원이 중증질환 진료에 중추적인 역할에 집중할 수 있도록 관련 지표를 강화했다.

이 같은 대책이 나오게 된 주요 배경에는 소아 청소년 진료 공백과 응급의료 붕괴 등 필수의료 공백이 심각하다는 우려가 작용했다. 상급종합병원이었던 가천대 길병원에서 전공의 부족으로 지난해 말부터 소아청소년과 입원진료를 두 달간 종료한 바 있다. 지난해 서울 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과 최근 잇따라 발생하는 응급실 뺑뺑이 사건을 계기로 필수의료 확충 필요성이 제기됐다.

5기 상급종합병원 지정기준을 살펴보면 내년 1월부터 필수진료과목 중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상시 입원환자 진료체계를 갖추도록 했다. 지표에서 입원 환자 중 중증 환자 진료 기준은 기존 30%에서 최소 34% 이상으로 늘렸다. 상대평가 만점 기준도 현재 44%에서 50%로 높였다.

경증 환자 비율도 낮춰 중증 환자 진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개선했다. 경증에 해당하는 단순진료질병군 환자와 의원중점 외래질병 환자의 비율은 각각 12%이하, 7%이하로 제한한다. 또한 경증 환자 회송률과 입원 중증 환자 비율이 높으면 가점을 부여하기로 했다.

필수의료 활성화를 위해 입원환자 전담전문의 지표도 올해 신설했다. 입원환자 전담 전문의를 300병상당 1명씩 배정하고 운영 형태별로 배점을 추가한다.

전문가들은 대형 종합병원이 중증 응급환자 진료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할 수 있도록 정부가 방향을 유도한 점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신호 차의과대 보건의료산업학과 교수는 뉴시스와 통화에서 "상급종합병원이 원래 수행해야 될 역할을 제대로 더 잘 할 수 있도록 지표가 만들어졌다"면서 "응급환자와 관련된 지표가 (응급 관련) 문제점을 100% 해결한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단초는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성중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은 뉴시스와 통화에서 "병원이 외래환자가 많고 검사, 수술을 해야 돈을 버는 구조이기 때문에 당장 시급한 중증외상·응급·중환자 등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상급종합병원 명성을 유지하고 가산 수가를 받으려면 응급의료시스템에 관심을 가져 달라는 메시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풍선효과에 대한 우려도 일부 제기됐다. 대형병원의 상급종합병원 지정 경쟁 때문에 안 그래도 취약한 지방이나 2차 의료기관의 중증·응급의료 인력이 상급종합병원에 흡수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입원환자 전담전문의 지표는 상대평가로 점수를 책정하기 때문에 다른 병원보다 우위를 점해야만 더 높은 점수를 받는 구조다.

김 센터장은 "상급종합병원들이 필요한 의료 인력을 채우려면 해당 병원 출신만으로는 무리"라며 "지역에 나간 의사들을 (병원으로) 다 부르게 될 수도 있다"며 의료인력 쏠림 현상을 우려했다.

이미 지역에서 공공의료를 담당하는 지방의료원은 전문의 채용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상황인 만큼 수도권·상급종합병원으로 인력이 몰릴 경우 지역 의료기반이 더 취약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한 예로 올해 초 속초의료원은 응급의학과 전문의 연봉을 4억원대로 제시해 채용 공고를 4번 내 겨우 충원한 바 있다. 경남산청보건의료원 역시 연봉 3억6000만원을 제시하며 5차례 공고를 낸 끝에 가까스로 필수 인력을 채웠다. 상급종합병원협의회도 계획 발표 이전에 복지부에 반대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신호 교수는 "900병상 규모의 병원으로 가정할 때 확보해야 할 입원환자 전담 전문의는 3명이기 때문에 의료기관이 노력한다면 지표를 충족시키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라면서도 "전담의로서 요구되는 기능(function)을 제대로 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dyhlee@newsis.com, leakwon@newsis.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