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킬러문항' 안 내고 변별력 확보…가능한 방법은?

기사등록 2023/06/20 06:00:00 최종수정 2023/06/20 10:09:46

킬러문항, 통상 '정답률' 낮은 문항으로 일컬어져

학원가 "준킬러 확대될 듯…정답률 공개도 방법"

시민단체 "수능도 선행학습 영향평가 받게 해야"

[서울=뉴시스] 최진석 기자 = 정부와 국민의힘이 실무 당정협회의를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관련 교육과정 밖 '킬러 문항' 배제와 적정 난이도를 확보를 위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는 지난 19일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 킬러문항 관련 안내문구가 보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소위 '수능 킬러 문항'에 관해 "공교육이 아니라 장외에서 배워야 풀 수 있는 문제로 학생을 평가하는 것은 부적절하고 불공정한 행태"라고 밝혔으며, '킬러 문항'은 오는 9월 모의평가부터 배제될 방침이다. 2023.06.20. myjs@newsis.com
[세종=뉴시스]김정현 기자 = 정부는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교육과정 밖 '킬러문항'을 배제하고 적정 난이도를 확보하겠다고 거듭 밝히고 있지만, 킬러문항이 무엇인지 기준부터 모호한 실정이다.

통상적으로 정답률이 무척 낮은 문항이 '킬러문항'으로 꼽혀 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올 수능에서는 상대적으로 정답률이 높은 '준킬러' 문항이 확대될 수 있다는 관측이 많다.

다른 한편에서는 킬러문항에 대한 기준부터 교육 당국이 분명히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육과정 위반'을 기준으로 삼고 아예 법을 고쳐 수능을 선행학습 영향평가 대상에 포함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20일 교육계에 따르면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전날 국회에서 열린 '학교 교육 경쟁력 제고 및 사교육 경감 관련 당정 협의회'에서 교육과정 밖 내용을 출제하는 킬러문항을 직접 겨냥해 질타했다.

그는 "그간 논란이 된, 공교육에서 다루지 않은 소위 '킬러문항'은 변별도(상위권 변별력)를 높이는 쉬운 방법이나 학생을 사교육으로 내모는 근본 원인"이라며 "교육과정 내에서 다루지 않은 내용은 출제를 배제하고 적정 난이도가 확보되도록 출제 기법을 고도화하는 등 모든 지원을 다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정부가 거듭 '교육과정 밖 킬러문항 출제 배제 방침'을 밝힌 만큼 올해 수능에서 어떤 유형의 문제가 배제될 지에 대해서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일단 앞서 윤석열 대통령이 예로 든 '과도한 배경지식을 요구하거나 대학 전공 수준의 국어 비문학 문항', '학교에서 가르칠 수 없는 과목 융합형 문제'와 같은 문제 유형이 대표적인 킬러 문항으로 꼽힌다.

하지만 이는 예시일 뿐 국어 외에 수학이나 탐구에서는 어떤 유형이 킬러문항으로 지목될 수 있는지, 그 기준은 무엇인지는 엄밀하지 않다. 앞서 교육과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밝힌 6월 모의평가에서도 구체적으로 어떤 문항이 문제였는지 드러나지 않았다.

'킬러문항'이라는 것을 잡아낼 수 있는 관련 법령이나 규정은 없다. 교육 당국이 '킬러 문항'은 무엇이다 정의 내린 적도 여태 없었다. 수험생들이나 학원가에서 매우 어려운 수능 문제를 일컬어 '킬러(Killer, 살인자)' 문항이라고 부르면서 통용되는 표현이다.

[서울=뉴시스] 조수정 기자 =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6월 모의평가가 열린 지난 1일 오전 서울 양천구 목동 종로학원에서 수험생들이 답안지와 문제지를 배부받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3.06.20. chocrystal@newsis.com
학원이나 입시 전문가의 관점에 따라 다르지만 통상 정답률이 극히 낮은 문항을 '킬러 문항', 그보다는 높아 중상위권은 풀 수 있는 경우 '준킬러'로 분류한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킬러는 정답률이 5%도 안 되는, 서울 중상위권 대학 수준의 수험생도 손을 못 대는 수준의 문항"이라고 말했다. 반면 서울중등진학연구회 소속 장지환 배재고 교사는 "킬러는 정답률이 1% 내외, 준킬러는 5% 내외"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교육계에서는 올해 수능에 윤 대통령이 언급한 문제 유형에 해당하는 킬러 문항 대신 준킬러 문항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는 분석이 다수 나온다. 교육부가 교육과정 밖 킬러문항은 배제하되 적정 난이도를 유지하겠다고 거듭 밝혔기 때문이다.

이만기 유웨이 교육평가연구소장은 "킬러문항을 없애고 변별력을 확보하려면 준킬러 문항을 갖고 조절하는 수밖에 없지만, 킬러문항과 준킬러를 나누는 경계는 애매하다"며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 공식 정답률을 공개하는 것도 방법일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정답률을 기준으로만 '킬러 문항'을 판단하면 매년 시험 결과에 따라 기준이 바뀔 수 있다. 또 정답률은 고정된 값이 아니라 그 해 수험생의 수준에 따라 변할 수 있어 예측이 불가능한 성격의 지표다.

특히 지난 3년 간 코로나19 유행에 학력 저하 문제가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온 게 하루 이틀이 아니다. 당국이 수험생 학습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출제했다고 설명해도, 정작 채점 결과가 나오면 다수 수험생들이 어렵게 받아들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모호한 정답률 대신 교육과정을 벗어난 문제를 출제하지 못하도록 보다 분명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자는 주장도 교육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매년 수능이 끝날 때마다 정답률이 낮은 문항을 분석해 교육과정 위반 여부를 밝혀 왔던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걱세)이 대표적이다. 2019학년도 수능에 대해선 교육과정을 위반했다며 국가 상대 손해배상 청구소송까지 벌였던 적이 있다.

[세종=뉴시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고등학교 교육과정 내용과 수준을 벗어났다고 지적한 지난해 수능 수학 '미적분' 30번 문제 분석 내용.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지난해 12월 수능 채점결과 발표 당시 이런 주장을 부인했다. (자료=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제공). 2023.06.20. photo@newsis.com
사걱세는 지난해 수능 수학에서 8개가 고교 교육과정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평가원은 수능 채점결과를 발표하며 그런 문항은 없었다고 밝혔다.

EBS 기준 정답률이 5.7%에 불과했던 미적분 30번을 예로 들면, 사걱세는 삼각함수, 삼차함수, 지수함수의 합성으로 이루어진 아주 복잡한 함수를 제시했다고 분석했다. 교육과정상 '지나치게 복잡한 문제는 다루지 않는다'고 적혔으나 이를 어겼다는 설명이다.

반면 평가원이 공개한 해당 문항에 대한 '교육과정 근거'를 보면 '함수의 그래프의 개형을 그릴 수 있다', '합성함수를 미분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교육과정 범위 안에 있던 문제를 출제했다는 의미다.

사걱세는 논술 등 대학별고사가 교육과정을 어겼는지 여부를 심사하는 평가원의 '선행교육 예방연구센터' 기준을 활용해 수능 문항을 분석하고 있지만, 평가원은 매번 자신들과 다른 입장이었다고 설명한다.

현행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공교육정상화법)에 따라 대학별고사는 교육 당국이 교육과정 위반 여부를 점검하고, 위반 대학에 대해 엄중한 사안에 대해서는 모집정지 처분을 내릴 수도 있다. 수능은 이 법의 대상에서 빠져 있다.

국회에는 지난 2021년 9월 더불어민주당 강민정 의원이 대표 발의한 공교육정상화법 개정안이 수능을 사전영향평가 대상에 포함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구본창 사걱세 정책대안연구소장은 "수능 출제위원 가운데 교사 비율을 늘려야 하고, 출제와 검토 기간도 대폭 늘릴 필요가 있다"며 "정부가 의지가 있다면 강 의원이 발의한 공교육정상화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수능도 규제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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