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1년 이복현 '강한 금감원장'…상생금융·지배구조에 드라이브

기사등록 2023/06/01 08:51:18 최종수정 2023/06/01 08:54:05
[서울=뉴시스] 정병혁 기자 =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31일 광주 동구 광주은행 본점을 방문해 지역 소상공인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금융 지원 방안을 논의하는 간담회를 하고 있다.(사진=금융감독원 제공) 2023.05.31.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김형섭 기자 =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오는 7일로 취임 1주년을 맞는다. 금감원 설립 이래 첫 검사 출신이자 1972년생의 역대 최연소 금감원장으로 기록된 이 원장의 지난 1년은 '강한 존재감'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 원장은 취임 당시부터 화려한 이력으로 주목을 받았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한 인재이자 기업·금융범죄 전문인 특수통 검사 출신. 무엇보다 이른바 '윤석열 사단 막내'라는 별명이 붙은 '실세 금감원장'으로 통했다.

일각에서는 제아무리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갖춘 경제 범죄 수사 전문가라지만 복잡한 금융현안에 대한 이해도는 떨어지지 않겠냐는 우려도 있었던 게 사실이지만 이 원장은 이같은 우려를 빠르게 불식시켰다.

◆금융 현장 발로 뛰며 상생금융 동참 이끌어내

취임 초기부터 쌍용차 인수 불발 과정에서 '먹튀' 의혹이 제기된 에디슨모터스에 대한 패스트트랙(긴급조치) 이첩, 공매도가 집중된 모건스탠리에 대한 검사와 공매도 조사전담반 설치 및 특별점검, 우리은행 직원의 700억원 횡령과 16조원대 은행 불법외화송금 사건에 대한 신속 대응과 고강도 검사 등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키웠다.

올해 들어서는 지난 2월 윤석열 대통령의 '은행 돈 잔치' 비판과 관련해 상생금융을 은행권에 심으면서 강한 존재감을 증명했다. 윤 대통령의 의중을 누구보다 잘 아는 측근인 만큼 은행 개혁에 팔을 걷어붙인 것이란 해석을 낳기도 했다.

금융위원회가 은행권 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로 정책적 대안을 모색하는 사이 이 원장은 직접 현장을 돌며 은행들로부터 상생금융 동참을 이끌어냈다.

하나은행을 시작으로 국민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을 모두 돌았을 뿐만 아니라 부산은행, 대구은행, 광주은행 등 3대 지방은행과 인터넷은행 및 핀테크 기업들로까지 보폭을 넓혔다.

이 원장은 일련의 은행 방문에서 "은행권이 국민과 상생하려는 노력이 크게 부족하다는 부정적 여론에 귀를 귀울여야 할 것", "중소기업·소상공인들의 고통을 덜기 위한 은행권의 자발적인 동참이 절실하다", "고객이 없으면 은행도 존재할 수 없다" 등 은행의 상생금융과 자발적 개혁을 이끌어내는 메시지를 던졌다.

이 원장이 나서자 은행들도 움직였다. 그가 방문하는 곳마다 취약차주 지원과 대출금리 인하 등의 보따리를 풀었다.

금감원은 국민·하나·신한·우리·부산·대구 등 6개 은행 기준으로 상생금융에 따른 가계대출 금리 인하가 연간 170만명 차주에게 약 3300억원 가량 발생할 것으로 추산했다.

[서울=뉴시스] 최동준 기자 =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22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2023년 금융감독자문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인사하고 있다. 2023.05.22. photocdj@newsis.com
◆금융사 지배구조 개선 화두로…지주회장 장기집권 체제 끝내

'셀프 연임' 문제가 반복돼 왔던 금융회사의 지배구조 개선 논의에서도 이 원장은 특유의 직설화법으로 이슈를 주도했다. 금융지주 회장들의 장기집권 체제 종료를 이끌어내는데 이 원장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있다.

라임펀드 사태와 관련한 불완전판매 책임으로 금융당국으로부터 '문책경고'를 받고도 연임을 고민하던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에게 지난해 11월 "현명한 판단을 내릴 것으로 생각한다"고 직격탄을 날린 장면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12월 3연임을 포기한 조용병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에 대해서는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시는 것을 보니 개인적으로 존경스럽다"고 찬사를 보낸 것도 두고두고 회자될 대목이다.

이 원장은 지난해 거액의 횡령과 이상 외화송금 등 금융권의 내부통제 부실이 도마에 오른 가운데 주요 금융사 수장들의 임기 만료가 도래하자 금융권의 지배구조 개선 필요성을 화두로 던졌다.

그 결과 지난해 연말부터 올해 연초까지 신한금융지주, NH농협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BNK금융지주 등 임기 만료를 앞둔 현직 회장들은 연임하지 않고 용퇴하거나 스스로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이 과정에서 금융당국은 장기집권에 반대하는 시그널을 공개적으로 내거나 보이지 않게 압박했다.

◆흥국생명 사태 해결에도 결정적 역할

반대로 겉으로는 그의 존재감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물밑에서 사태 해결에 결정적 역할을 한 사례도 있다. 지난해 11월 채권시장을 요동치게 했던 흥국생명의 5억 달러 규모 해외 신종자본증권에 대한 조기상환권(콜옵션) 미행사 결정을 결국에는 철회한 건이다.

당초 금융당국은 흥국생명의 콜옵션 미행사는 회사 나름의 합리적 판단이며 건전성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 만큼 과도한 시장 불안으로 이어질 문제는 아니란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흥국생명 뿐만 아니라 다른 금융사의 채권가격도 동반 급락하고 우리 정부·기업이 해외에서 발행하는 외화표시채권인 '코리안 페이퍼(한국물)'까지 여파가 미치는 등 파장은 일파만파로 커졌다.

[대구=뉴시스] 이무열 기자 =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3일 오전 대구은행 본점에서 열린 상생금융 확대를 위한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04.03. lmy@newsis.com
이에 따라 금융당국도 서둘러 사태 해결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이 원장과 금감원이 주축이 돼 기획재정부, 금융위 등과 대응 방안을 협의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당시 그가 "시장에서 신종자본증권의 조기상환에 대한 기대가 있는 점과 흥국생명 측의 자금여력도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한지 몇 시간 되지 않아 흥국생명이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행사를 전격 발표하면서 이 원장이 사태 해결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금감원 내부에서도 이 원장의 업무 추진력과 금융현안에 대한 높은 이해력, 빠른 상황 판단 등을 호평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지난해 금융위기로 이어질 수도 있었던 상황에서 이 원장이 F4(경제부총리·한국은행총재·금융위원장·금감원장) 회의 등에서 물밑조율을 해가며 전방위적 대응을 주도했다고 할 수 있다"며 "상생금융 행보도 외부의 말이 많은 가운데서도 실제로 발로 뛰는 현장 행정과 소통으로 상생금융을 구현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강한 존재감 탓에 관치 우려도 여전

다만 일각에서는 금융사들에 대한 그립력을 높인 이 원장의 강한 존재감이 자칫 관치 금융으로 연결될 것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예대금리차와 금리인하요구권 실적 공시를 추진하던 지난해 6월 시중은행장들을 만난 자리에서 "은행들의 지나친 이익 추구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 금리를 보다 합리적이고 투명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산정·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했을 때가 그랬다. 손 전 회장의 거취와 관련한 강경 발언들을 쏟아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특유의 직설 화법이 빚어낸 월권 논란도 있었다. 그는 올해 3월 해외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연내 공매도 금지 조치 해제를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가 감독당국 수장의 업무범위를 넘어섰을 뿐만 아니라 금융위와도 결이 다른 말을 했다는 비판을 샀다.

이제 3년의 임기 중 2년차에 접어든 이 원장의 최대 과제는 SG증권발 주가폭락 사태로 떠오른 주가조작 등 자본시장 불공정·불법행위 근절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이 원장은 지난 23일 '불공정거래 근절을 위한 유관기관 합동토론회' 뒤 기자들과 만나 "시장 교란세력에 대한 전쟁을 선포한 것"이라며 "저의 거취를 걸다시피하는 책임감을 갖고 올 한해 중점 정책사항으로 추진해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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