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문화다양성 주간' 다양성콘서트서 '블루 카멜 앙상블'과 공연
불멸의 히트곡으로 막대한 음원 수입을 얻는 게 아닌, 음악의 불모지에서 공연을 기반 삼은 정당한 노동의 대가(代價)로 성실히 하루하루를 직조해나가며 영감을 얻은 노래들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곡이 '그 쇳물 쓰지 마라'다. 2010년 9월 충남 당진의 한 철강업체의 용광로에서 추락사한 20대 노동자의 죽음을 기리는 제페토 시인이 쓴 시에 하림이 멜로디를 붙인 이 곡은 2020년 소셜 미디어 챌린지로 퍼지면서 사회에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 민중가수 혹은 사회운동가로 불리기 시작한 하림의 출발은 사실 대중음악 산업 한 가운데 있었다. 정규 1집 '다중인격자'(2001)의 '출국'과 '난치병', 정규 2집 '휘슬 인 어 메이즈(Whistle In A Maze)'(2004)의 '여기보다 어딘가에'와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 같은 히트곡도 냈다. JTBC 음악 예능 프로그램 '비긴 어게인 2'(2018) 등에 출연하면서 최근까지도 대중적으로 얼굴을 알렸다.
하지만 하림의 노래가 향하는 곳이 대중문화 주류가 아닌 지 오래됐다. 매체에 자주 노출되는 대중문화가 아닌 자주 노출되지 않지만 삶의 현장에서 흐르는 문화가 진짜 대중문화라고 생각하는 그다.
최근 서울 금천구 작업실에서 만난 하림은 "위에 뜬 물만 바라볼 게 아니라 그 아래를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먹고 살기에 바빠서 OTT조차 보실 수 없는 분들이요. 그분들이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연구하고 공부해야 하는 게 대중예술가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하림은 "문화다양성에 철처하게 입각해서 나이·계층·직업에 상관 없이 즐길 수 있는 이 시대의 컨템퍼러리 아트는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 중이에요. 이에 대해 예술가가 가져야 하는 생각은 무엇일까 고민을 많이 해야 한다"고 했다.
하림은 문화체육관광부·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전국 12개 지역 문화예술기관과 지난 21일부터 27일까지 펼쳐온 '2023 문화다양성 주간'에 힘을 보탰다. 올해 9회째를 맞는 문화다양성 주간의 이번 주제는 '다양한 가치, 다함께 같이'다. 서로의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문화다양성의 가치를 통해 사회구성원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들자는 뜻이다.
특히 하림은 마지막날인 27일 오후 여의도물빛무대에서 열린 다양성콘서트에 자신이 이끄는 공연팀 중 하나인 월드뮤직 밴드 '블루 카멜 앙상블'과 출연한다. 다음은 하림과 나눈 일문일답.
-정규 음반을 안 내신 지 벌써 20년이 다 돼 갑니다. 많은 분들이 계속 묻고 있는 걸로 아는데 정규 3집은 언제 나옵니까?
"그걸 저도 모르겠어요. 전 문화예술시장 종사자예요. 전 이 영역에서 소분류인 엔터테인먼트 사업에서 시작을 했는데 활동 반경이 점점 확장돼 공연, 문화 기획, 문화예술 사회운동 등으로 확장이 됐죠. 엔터테인먼트 부분은 큰 영역 중에 하나가 돼서 메인 직업이라고 생각을 한 지 오래됐습니다. 그러다보니까 후순위로 밀리죠. 이번에 '문화다양성 주간'도 대중음악 가수로서가 아닌, 제가 해온 콘텐츠가 문화다양성에 연관된 게 많다 보니까 불러 주신 거잖아요. 그런데 문화다양성은 제가 의도한 게 아니에요. 제가 하는 음악들이 확장돼다 보니 월드뮤직과 맞닿았고, 그게 다시 다양성과도 맞닿은 거죠. 그러는 사이 음반 시장도 많이 바뀌었어요. 꼭 3집을 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여행 가서 만든 음악, 공연하면서 편곡한 곡들을 프로젝트 별로 발표하고 싶어요. 원래 공연 위주의 '사라지는 음악'을 중요하게 여겼는데 사석에서 만난 최동훈 영화감독님이 예술가에겐 '기록의 의무'가 있다고 말씀하신 게 마음에 남았어요. 예술은 우리 삶의 고양을 위해 필요한 것이고 그래서 기록이 필요하다는 얘기였죠. 그래서 '기록을 해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더 하게 됐습니다."
"공연은 복제가 느리잖아요. 또 노동집약적이고 노동의 가치를 정당하게 보상하는 편이죠. 전 공연이 성격에 맞아요. 공연 팀을 4개정도 운영하고 있는데 이 자체만으로는 먹고 살기는 팍팍하지만 공연만 전업은 아니라 괜찮아요. 나혜석, 동백꽃, 제주 4·3, 남쪽 할머니에 대해 노래하면서 저도 갈등과 고민이 많았어요. '음악의 역할' '음악이 작용하는 방법' 등에 대해서요. 처음엔 '왜 날 좋아하는 걸까'라는 질문이 시작이었던 거 같아요. 이후 감동을 줄 수 있는 부분이 조금 더 넓고 다양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래서 제 노래를 원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갔어요. 그러면서 길이 공평하다는 걸 알게 됐죠. 관객이랑 예술가가 일대일로 반응할 수 있다는 걸 여행하면서 버스킹을 통해 알게 된 거예요. 인기 대중가수나 히트곡에 열광하는 현상보다 어느 장소든 음악을 나눠주는 것 자체에 열광하는 것을 보게 된 거죠. 그러면서 평상시에 엔터테인먼트에 가까이 가지 못하시는 분들을 더 만나게 됐어요. 이주 노동자나 시골 학교 학생들이요. 음악을 화려하게보다 담백해게 더 보편적으로 쓰고 싶어졌죠. 여행 다니고 친구들과 공연을 만들고 공부 삼아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있어 보기도 했어요. 또 월드뮤직을 좋아하니 외국인들과 어울리면서 이주노동자들을 좋아하게 됐죠. 더 열린 마음도 생기고요. 근데 제가 대중음악 가수로서 이전에 쌓아온 이름이 있으니 관련 목소리를 내다 보면 공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후 노래는 어떻게 작용해야 하는 지에 대한 책도 보고 그렇게 쌓아가다 보니 어느 날 사회운동가라는 말이 붙더라고요. '그 쇳물 쓰지 마라' 같은 노래 때문이었겠죠. 이후 넓고 깊은 책임감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 일을 제대로 해보고 싶어 회사(소속사)를 그만두게 됐어요. 이제 '잔잔한 발라드는 안 할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쪽(사회 관련 노래)에 소질이 있어라고 하니까 주변에서 (회사에서 나오는 걸) 못 말리시더라고요."
-사회운동가라는 수식이 부담스럽지는 않으세요?
"제가 대중으로부터 받은 사랑이 있잖아요. 별 것 아닌 노래 몇 곡으로 살고 있잖아요. 그것에 대해 떳떳하게 고개를 들고 다니려면, 좋은 일들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사회운동이라면 사회운동가로 부르셔도 됩니다. 제가 가진 재능을 효과적으로 분배하는 것이 그렇다면요. 공연을 만든다든가, 노래를 만들어준다거나, 아니면 몸으로 메시지 홍보에 도움을 준다든가 하는 측면에서요. 그게 사회운동이라면 사회운동이죠."
-특히 '그 쇳물 쓰지 마라' 같은 경우엔 노동에 대한 인식을 웬만큼 갖고 있지 않으면 힘들었을 거 같아요.
-그런 생각과 고민 중엔 노래를 어렵게 만들지 않은 것도 포함되나요?
"저희 어머니·아버지께 들려드린 뒤 따라 부를 수 있는지를 확인해요. 노래를 못하는 사람들이 불러도 웬만큼 노래가 되는지도 신경 쓰죠. 요즘 대중음악은 화려하고 멋지게 보이는 게 우선이죠. 편곡도 그렇고요. 전 기본적인 음악 재능 정도로 노래를 부를 수 있게 하는 게 목표입니다."
-하림 씨처럼 음악적으로 기교가 있는 분들은 쉽게 만드는 게 더 어렵지 않나요?
"기본이 무엇일까에 대해 계속 공부하고 있어요. 기본에서 벗어나면 벗어날수록 콘텐츠는 산으로 가죠. '이 공연을 처음에 만들고자 했던 목적이 뭐야'라는 생각을 갖고 있으면 일이 깔끔해져요. 그런데 그런 기본 이유들이 시기별로 각자 달라요. 요즘 제가 자주 하는 말은 '삶에서 한번밖에 못 만나'예요. 저는 팬덤으로 음악을 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을 한 번 만나게 되거든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순간 순간이 더 소중해요."
"국악을 하다가 이번에 블루카멜 앙상블에 허디거디(hurdy-gurdy)(서유럽에서 연주된 찰현악기(활로 줄을 문질러서 소리를 내는 악기)) 연주로 합류하시는 분이 계세요. 해금도 연주하시고요. 블루카멜 앙상블은 처음 만들 때부터 확장이 가능하게 했어요. 현재는 여덟 명이 확정된 상태지만 몽골의 전통악기인 마두금 연주자가 함께 하기도 했죠. 블루카멜 앙상블과 별개로 함께 하는 공연팀으로는 아프리카 오버랜드, 집시의 테이블 그리고 근대 음악을 부르는 팀인 경성경음악단이 있어요. '비긴 어게인' 이후 (상업적인) 대중가수 일도 많아졌는데 뜨거운 물, 찬 물을 왔다 갔다 하면서 느끼는 온도 차를 인정하는 게 제겐 숙제예요. 그 고민을 하면서 기획사를 그만둔 것도 있죠. 예전엔 제가 대중음악 가수로서 성공하는 게 목적이고 안 돼서 다른 공연팀을 만들지 않았나라는 생각도 갖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제 스타가 되려고 하는 목적에서 벗어났어요. 다양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는 목적은 같은 거니까 공연 일들이 중요해졌죠. 대중음악 쪽에서 노래를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이름을 빼니까 다소 마음이 편해졌어요."
-문화다양성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행사가 지속적으로 열린다는 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이 키워드로 공식적인 자리를 만들고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게끔 하는 근거를 마련해줘서 감사해요. 사실 여러가지 생각을 말로 정리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에요. 부정적인 여론이 나오면 새로운 말들을 만들거나 그 부정적인 말들을 걸러낼 수 있는 필터를 찾아서 또 다른 개념을 만들어야 하죠. 그래야 덜 싸우고 더 행복해질 수 있는데 그런 과정에서 이런 행사가 필요합니다. 이런 이야기나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하는 시대가 있었죠. 그 시대가 언제인지는 몰라요. 그런데 그 때 우리가 같이 입을 다문 게 아닌가라고 생각해요. 시대의 묵은 때를 털고 제 뒤에부터는 움직여줬으면 하는 바람을 늘 가지고 있어요. '그 쇳물 쓰지 마라' 때도 아무도 움직여주지 않았어요. 제가 반말을 할 수 있는 친구들이 움직여줬죠. 그 친구들이 소중하고 귀해요. 문화다양성 무대도 마찬가지예요. 관련해서 노래를 부르고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이 행사의 가치는 충분해요."
-음악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점점 강해지는 거 같아요.
"맞아요. 전에 누군가 이야기했던 게 떠올라요. 도어스의 짐 모리슨, 밥 말리, 비틀스의 존 레넌의 이름을 거명하면서 '음악이 세상을 바꾼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세 분의 공통점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생전에 크게 인기를 얻었던 분들이라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저희끼리 유명해지고 세상을 뜨게 되면 자연스럽게 음악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게 된다는 이야기를 했죠. 저 역시 여행 하다 파리 외곽 묘지 페르-라셰즈에 있느 모리슨 묘 앞에서 같은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20여년 음악을 하고, 중간에 '그 쇳물 쓰지 마라'가 알려지는 걸 지켜보고, 국경 없는 음악회를 스스로 만들어 이주민하고 노래하고 놀아보면서 '노래는 함께 부르는 것'이라는 생각이 강해졌어요. '내가 노래를 하는 건 저 사람이 노래를 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철학이 제 안에 들어온 거죠. '음악이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고 나비효과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점차 커졌습니다. 남들이 보기엔 '몽상가적 기질'일 수 있어요. 그런데 후배들이 음악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다고 얘기하면 짐 모리슨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그래 그건 가능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됐어요."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