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 투자, 양면성 확실…K콘텐츠 글로벌 진출 vs 하청기지화
향후 4년 투자 기회 삼으려면?…"좋은 IP 확보 적극 나서야"
"IP 보유 만큼 한국의 글로벌 콘텐츠 제작기지化도 고려해야"
넷플릭스의 3조3000억원 규모 국내 투자를 두고 시선이 엇갈리고 있다. K콘텐츠의 글로벌 진출 확장-넷플릭스의 킬러 IP(지식재산) 확보 등을 통해 모두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국내 제작업체가 넷플릭스의 하청공장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비관론도 있다. 관련 업계·학계에서는 미디어 산업의 글로벌화를 명확히 인식하고 우리만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넷플릭스 한국투자, 어떻게 볼 것인가?' 토론회에서는 이번 넷플릭스의 투자를 계기로 국내 미디어·콘텐츠 산업을 어떻게 중장기적으로 발전시켜나갈 지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넷플 韓 투자, OTT 시장 열었으나 중장기 성장엔 '독' 될수도…우리 IP 확보에 초점 둬야
이날 토론회 발제를 맡은 노창희 디지털산업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넷플릭스의 국내 투자는 그간 우리 미디어 산업에 긍정적으로 작용한 부분이 많고 향후에도 기회를 제공할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투자에 대한 우려점도 있는 만큼 넷플릭스 영향 하에서도 우리나라 미디어 생태계가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는 관점에서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 연구위원에 따르면 전세계적으로 넷플릭스의 파급력이 극도로 강해진 상황에서 우리나라도 상당한 영향을 받고 있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부터 매출이 감소한 VOD 시장이 대표적이다. 2016년 넷플릭스의 한국 진출 이후 OTT 이용자가 증가하면서 VOD 영역을 부분적으로 대체했다는 설명이다.
다른 국가와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티빙, 웨이브 등 토종 OTT 입지가 강한 편이지만, 최근 들어 이들도 심각한 위기에 직면한 상황이다. 티빙과 웨이브의 감사보고서를 살펴보면 양사 모두 지난해 적자 규모가 1200억원에 달한다.
이처럼 넷플릭스의 국내 진출 및 투자 확대가 명암을 모두 갖고 있는 만큼 노 연구위원은 긍정적 측면을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우리 제작사들의 IP 확보 유도 ▲OTT 시대 도래 이후 소외돼 있는 레거시 미디어에 대한 넷플릭스의 영향 검토 ▲국내 콘텐츠 시장의 질적 진화를 위한 인력 양성 및 투자 다양화 등의 방안도 제시됐다.
노 연구위원은 "지난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사례와 같이 사업자들로 하여금 좋은 IP를 확보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주는 게 제도적 변화보다 선행될 필요가 있다"며 "K-미디어는 여러 지표상 계속 좋아지는 시장이지만, 21세기 초처럼 역동적 성장을 보여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우려가 있다. 콘텐츠 산업 역동성과 질적 다양성에 대한 고민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韓 투자, 넷플이 받은 수혜가 더 커…IP 보유국 or 슈퍼 을, '제작 경쟁력'부터 확실히
공동 발제를 맡은 이성민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수 또한 넷플릭스 투자가 K콘텐츠의 대형화와 글로벌화를 이끌었다고 인정하면서도 향후 4년 간 이뤄질 투자가 양면성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 교수는 "당초 우리 미디어·콘텐츠는 중국과 아시아 의존도가 컸는데 중국의 한한령 이후 글로벌 진출이 막혔다"며 "지난 4년 간 넷플릭스 투자의 가장 큰 의의는 K콘텐츠를 미국과 전 세계로 확장시켜 브랜딩 관점에서 엄청난 성과를 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이 교수는 넷플릭스도 한국 투자로 막대한 수혜를 봤다고 단언했다. 오징어게임의 경우 종이의 집, 브리저튼, 기묘한 이야기와 함께 넷플릭스의 최중요 킬러 IP로 거듭났고, 우영우 등은 넷플릭스가 직면한 실적 위기론을 극복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것이다. K콘텐츠가 디즈니+ 등 강력한 경쟁자에 맞설 넷플릭스의 핵심 무기로 거듭났고, 향후 다른 국가에서도 K콘텐츠 성공 모델을 확장해나갈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처럼 넷플릭스의 지난 한국 투자로 양측이 모두 수혜를 입은 만큼 향후 4년 간의 투자도 K콘텐츠의 글로벌 산업화를 더 가속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우리나라가 영미권을 넘어서는 글로벌 콘텐츠 강국으로 진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콘텐츠 영향력을 바탕으로 소프트파워·국가 브랜드 강화 등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는 낙관도 있다.
하지만 이같은 낙관만큼 그림자도 짙게 드리울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이 교수는 향후 넷플릭스의 투자 기간 동안 우리 생태계의 강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면 글로벌 콘텐츠 '하청공장'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콘텐츠의 핵심인 IP는 모두 내주고 제작만 전담하는 저부가가치 산업 생태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경우 토종 OTT '살토(SALTO)' 등이 폐업하는 등 넷플릭스가 업계를 사실상 독점하는 사태에까지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교수는 넷플릭스의 향후 투자를 위기가 아닌 기회로 삼기 위해서는 미디어 산업이 더 이상 '내수 산업'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고 글로벌 산업화 관점에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IP 보유국이 될지, 아니면 막강한 제작력으로 투자를 지속할 수 밖에 없는 이른바 '슈퍼 을(乙)'이 될 지 방향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어떤 방향을 선택하든 제작 경쟁력을 유지·강화하는 것이 가장 핵심 수단이 돼야 한다는 게 이 교수의 분석이다. 우수한 제작 능력으로 IP 보유 문제에서 강한 협상력을 갖든, 투자 유치를 통해 한국을 명실상부 글로벌 콘텐츠 제작기지로 만들든 전제 조건은 확실한 제작 경쟁력이 될 수밖에 없다.
이 교수는 "반도체 등 전략 산업과 같이 미디어도 시장이 글로벌화됐다는 감각 하에 투자·지원 등을 이어가야 한다. 삼성전자가 스마트폰을 만들고 현대차가 완성차를 계속 만드는 이유도 결국 글로벌 밸류 체인의 관점에서 '필요하다'는 판단이 있기 때문"이라며 "넷플릭스 투자에 대한 가장 큰 우려는 '4년 투자로 단물만 빼가는 것 아니냐'는 건데, 반도체 업계의 TSMC처럼 우리나라를 제작 기지화하는 전략을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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