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최홍 기자 = "더는 못버티겠다. 자신이 없어. 뭔가 나라는 제대로 된 대책도 없고…이게 계기가 돼 더 좋은 대책이 나왔으면 좋겠다."
지난 2월 전세사기 피해자 중 30대 청년이 이같은 내용의 유서를 남기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어 전세사기 피해자인 20~30대 청년 두 명이 잇달아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극심한 생활고와 주거 불안을 견디지 못한 탓이다. 경매 절차로 그동안 살고 있던 오피스텔·빌라에서 쫓겨나고 전세대출도 바로 갚아야 하는, 그야말로 '벼랑 끝'에 몰렸다.
금융권도 문제가 있었다. 부동산 등 자산시장이 과열된 틈을 타 금융권은 이자 장사에 치중했다. 금융당국은 가계대출 총량관리 등 강도 높은 대출규제를 내놓았지만, 이미 자산시장이 과열된 지 한참이 지나서였다. 이번 사건에서 문제가 된 대출은 두가지다. 하나는 건축업자가 받아간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이다. 이는 신축 자금 용도였는데 이때 사업자에 대한 신용도 평가가 부실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기꾼에게 돈을 빌려 준 셈이 됐기 때문이다. 많은 은행들이 해 준 전세대출도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은행들이 전세대출을 취급할 때 정부의 100% 보증을 믿고 리스크 관리에 신경 쓰지 않았다는 지적에서다.
사고가 터지자 정부는 부랴부랴 대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경매를 일시적으로 중단함과 동시에 LH 등 공공기관이 주택을 매입해 임대주택으로 제공하는 방안도 검토키로 했다. 금융지원도 마련했다. 피해자에게 우선매수권을 부여해 낙찰받을 때 은행이 장기 저리로 금융지원을 제공하는 방안이다. 또 피해자를 대상으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일시적으로 완화하는 방안도 추진하겠다 한다.
지금이라도 대책이 나온 건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인 대책이라는 점에서 꼬집지 않을 수 없다. 또 다른 대출을 내주거나 이자를 깎아주는 '응급처치'만으론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피해자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전세사기범에게 떼인 보증금을 은행에 대신 갚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 전세대출이라면 손사래를 치며 월세를 살겠다고 하는 피해자들에게 또 다른 대출을 권하는 것이 과연 대책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빚으로 기존의 부채를 막고, 또 다시 새로운 대출을 받게 하는 것은 '빚 돌려막기'와 다름없지 않은가.
당장 피해자들의 '숨통'을 열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전세사기범들이 금융 규제의 약점을 비집고 들어와 활개 칠 수 없도록 규제를 정비하는 것이다. 나아가 과열된 자산시장을 틈타 서민들의 전세금을 떼먹는 범죄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금융권도 경각심을 갖고 대출을 취급해야 한다.
조만간 정부는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방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더 이상 땜질식 대처가 아닌, 피해자들의 아픔을 보듬어 줄 수 있는 근본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책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
◎공감언론 뉴시스 hog8888@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