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대, 내부를 흙으로 채워 만든 건축구조물
고종년간 축조 이후 4단계 변화과정 확인
[서울=뉴시스] 이수지 기자 = 일제강점기 때 훼철된 광화문 월대가 남북으로 48.7m, 동서로 29.7m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문화재청은 25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광화문 월대 규모와 변화과정 등 발굴조사 성과와 향후 복원계획을 공개했다. 지난해 9월부터 광화문 월대 복원·정비를 위해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가 발굴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월대는 궁궐 정전과 같이 중요 건물에 넓게 설치한 대다. 궁궐 정문에 난간석을 두르고 기단을 쌓은 경우는 광화문 월대가 유일하다
'경복궁 영건일기'와 1890년대 후 전해진 사진자료에 따르면, 광화문 월대는 길게 다듬은 장대석을 이용한 기단석, 계단석, 난간석을 두르고 내부를 흙으로 채워서 만든 건축구조물이다.
이번 발굴조사에서는 월대 전체 규모가 남북으로 48.7m, 동서로 29.7m에 달하며 광화문 중앙문과 이어지는 어도지 기초시설 너비가 약 7m에 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월대 서편과 달리 원형이 잘 유지된 동편 모습을 통해 고종 대 경복궁 중건 당시 월대 전체 모습도 확인됐다.
문화재청은 "무엇보다 광화문 월대 복원을 위한 실물자료 확보가 이번 발굴조사의 가장 큰 성과"라고 평가했다.
광화문 월대는 동·서 외곽에 잘 다듬어진 장대석(길이 120~270㎝, 너비 30~50㎝, 두께 20~40㎝)으로 기단 2단을 쌓고, 그 내부는 서로 다른 성질의 흙을 교차로 쌓아 주변보다 높게 대를 만들었다.
월대 남쪽에는 장대석으로 계단을 만들었다. 그중 어도와 이어지는 중앙부는 소맷돌로 동·서 계단과 분리했다. 소맷돌은 계단 좌·우측 양단 장식 또는 마감하려고 놓는 경사 부재다.
특히, 어도계단지의 경우 일제강점기 전차선로로 일부 훼손됐으나 소맷돌을 받쳤던 지대석이 확인됐다. 문화재청은 "이는 월대 원형 복원에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종년간 월대 축조 후 크게 4단계 변화 과정도 확인됐다. 1단계에서는 월대 축조 당시로 남쪽에 경계가 나눠진 계단 3개가 있었고 당시 월대 평면형태는 역철자형이었다.
2단계에서는 중앙 어도계단지가 경사로로 변했고, 3단계에서는 경사로 범위를 넓히고 계단이 동·서 외곽으로 축소됐다. 이 시기에 처음으로 외줄 형태 전차선로가 설치됐다.
4단계에서는 전차선로 복선화로 월대가 파괴되면서 난간석이 철거되고 광화문 이건과 함께 도로로 사용됐다.
기단석 하부에 여러 지대석을 놓고 적색점토로 보강한 기초시설, 철편·점토·석회를 이용한 장대석 사이 수평맞춤, 장대석 밀림 방지를 위해 점토와 깬 돌을 섞어 보강한 뒷채움방식 등 당시 조선시대 건축기법도 확인됐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이번 발굴조사 성과를 바탕으로 1920년대 훼철 후 동구릉에 이전됐던 월대 부재를 재사용하고 전통재료·기법을 적용해 월대를 복원할 예정이다.
문화재청은 "서울시와의 지속적인 업무협조를 통해 (복원공사가) 월대 주변부 정비사업과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며 "복원공사가 마무리되는 오는 10월 광화문 월대 복원 기념행사를 '궁중문화축전'과 연계해 개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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