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거스트 디 트릴로지 마지막 '디-데이' 발매
디즈니+ 다큐 '슈가: 로드 투 디-데이' 공개
'슈가 | 어거스티 디 라디오' 론칭
다양한 콘텐츠로 최근 일련의 행보에 대해 입체적 해석 가능
지난해 9월30일 일본 도쿄에서 일본 거장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1952~2023)를 만난 글로벌 슈퍼 그룹 ‘방탄소년단’(BTS) 멤버 슈가(30·민윤기)는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슈가는 대구에 살던 때인 열 두 살에 부모와 약 50석짜리 재개봉 극장에서 봤던 영화 '마지막 황제'를 계기로 음악에 더 적극적인 관심을 갖게 됐다. 사카모토는 이 영화의 음악으로 아시아인 최초로 미국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았고, 그래미상도 차지했다.
그런 사카모토는 슈가와 대면해 그의 음악관에 대한 이야기를 조용히 듣다가 "대단해요. 저도 10대부터 세계의 다양한 민속 음악을 좋아해 음악가가 아닌 학자가 될까라는 생각도 했었다"고 털어놨다.
슈가는 사카모토의 개인적인 장소에 놓인 피아노로 사카모토의 대표곡 '메리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를 연주하기도 했다. 사카모토 역시 슈가를 위해 이 곡을 직접 연주했다. 슈가는 "50~60대에도 음악을 하고 싶은데 어떤 모습으로 음악을 해야 할지 (영감을 받았다면서) 아버지보다 연세가 많으신데 이런 대화가 가능하다는 게 즐겁다"고 했다.
사카모토는 일본 문예지 '신초(新潮)'에 연재한 암투병 에세이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보게 될까' 최종회인 2월호 실린 글에 슈가를 만난 일화를 적고 "음악에 진지한 청년"으로 그를 기억했다. 슈가는 이달 초 사카모토의 부고 소식을 접한 직후 "선생님 머나먼 여행 평안하시길 바랍니다"라고 추모했다.
슈가는 사카모토에게 작업 중이던 이 곡을 들려줬다. 가사가 무슨 뜻이냐는 그의 물음에 슈가는 이렇게 답했다. "후배들이 이 음악을 듣고 좀 힘을 냈으면 좋겠다 싶어서요. 힘들겠지만 괜찮아질 것이고…. 어릴 때부터 꿈에 대해 쓰는 걸 되게 좋아했거든요. '쪽잠을 자도 괜찮아질 테니까 추락이 두렵다면 내가 다 받아줄게'라는 가사예요. 이 일을 하는 게 쉽지 않거든요. 가끔씩 저를 보고 저희 팀을 보고 '꿈을 꿨어요' '형 음악 듣고 음악을 시작했어요'라고 말해주는 후배들이 있거든요. 그런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에요."
사카모토는 "(슈가) '자신에게도 괜찮다'라고 얘기해주는 곡 같다"고 답했다. 슈가는 "'사카모토 선생님 풍으로 스트링 편곡을 하고 피아노도 그렇게 편곡해야지'라는 생각을 했어요. 병원에서 밥도 못 먹고 작업하고 있는데 이걸 작업할 때 기력이 돌아와 링거를 뽑고 나왔다"며 동의했다.
이렇게 '디-데이'는 슈가가 자신의 경험을 담은 솔직함으로 위로를 전하는 음반이다. K팝 솔로로서는 발매 당일 최다인 107만2000장 판매량을 기록한 숫자보다 더 많은 해석이 가능한 의미, 은유가 담겼다.
그래서 이번 음반이 '어거스트 디(Agust D)'로서 공개했던 믹스테이프 '어거스트 디(Agust D)'(2016년), '디-투(D-2)'(2020년)에 이은 '어거스트 디 트릴로지(3부작 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음반이다.
어거스트 디라는 활동명은 슈가가 예전에 가사로 썼던 'DT 슈가(Suga)'를 거꾸로 배열한 것이다. DT(디 타운(D Town))는 슈가가 과거 속해 있던 힙합 크루 이름이다. 그의 고향인 대구 기반의 크루였다.
슈가는 전곡의 작사, 작곡부터 앨범의 프로듀싱까지 작업의 전반을 이끌며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이번 음반으로 어거스트 디로서 여정의 마침표를 찍는다.
'미션' '흑사회' '익사일'로 유명한 '홍콩 누아르 영화'의 대부 두치펑(杜琪峰·두기봉) 감독 풍의 '해금' 뮤직비디오 역시 이를 상징한다. 닮은 듯 다른 분위기의 두 인물을 슈가가 1인2역으로 오가는데 앞서 콘셉트 포토에 나왔던 상반된 캐릭터 '비잉(Being)'과 '에그지스테(Exister)'의 대결을 뜻한다.
뮤직비디오 막판에 정리되지 않은 캐릭터인 에그지스테가 정리된 캐릭터 비잉을 죽이는 반전이 있는데 그것이 의미가 있다. 영어 '비잉'은 명사로 '존재' '실재'를 가리킨다. 프랑스어인 에그지스테 역시 '존재한다'는 의미로 크게 보면 뜻은 같지만 이는 명사가 아닌 자동사(自動詞)다. 주어의 주체성에 더 방점이 찍히는 데 이전의 정형화된 자신을 지우고 새로운 나로 나아가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등 광해의 분신 발상에서 받은 것으로 보이는 전작인 '디-투' 타이틀곡 '대취타'(2020) 뮤직비디오에도 슈가가 1인2역을 연기했었는데 이 작품에서도 그는 두 번의 반전을 통해 자신에 대한 이미지를 전복했다.
어거스트 디로서는 마지막 활동이 될 것이라고 추정되는 이번 일련의 행보는 다양한 입체적인 해석을 가능하게 만든다. 음반뿐 아니라 다큐 그리고 애플 뮤직 라디오 채널인 애플 뮤직 원(Apple Music 1) 라디오 시리즈 '슈가 | 어거스티 디 라디오(SUGA | Agust D Radio)'(총 5개의 에피소드를 5월16일까지 매주 화요일 공개) 등 다양한 콘텐츠로 팬덤 '아미'를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어릴 때 에픽하이·원타임 등 국내 힙합, 제이 지·나스 등 외국 힙합 등 다양한 힙합을 듣고 자란 만큼 어거스티 디의 행보를 마무리하는 이번 작품에도 '해금'을 비롯해 다양한 힙합이 실렸다.
미국 시카고에서 탄생한 힙합 음악의 하위 장르 중 하나인 드릴(Drill)의 영향을 받은 곡으로 방탄소년단 역시 래퍼 라인인 제이홉이 피처링한 '허?!(HUH?!)', 트랩 힙합·팝 장르인 '아미그달라', 힙합 R&B 'SDL', 붐뱁 리듬을 중심으로 한 팝 R&B 곡이자 아이유가 피처링한 선공개 노래 '사람 Pt.2' 등이 담겼다.
슈가는 이런 힙합을 기반으로 아이돌로서는 드물게 사회에 대한 문제 의식을 드러냈다. 예를 들어 이번엔 '해금'에서 담배를 태우는 장면이다. 아이돌 뮤직비디오에서 담배 태우는 장면이 등장하는 건 이례적이다. 그런데 사실 서른이 된 슈가가 담배를 태우는 장면 자체에 만약 갑론을박이 생긴다면 이게 이상한 일이다. 슈가 역시 '슈가: 로드 투 디-데이'에서 "내 나이에 '해금'의 담배 장면이 문제가 된다면 이 사회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까 (고민이 생길 거 같다)…"고 털어놓는다.
방탄소년단 슈가가 아닌 어거스티 디는 사실 과격한 면모가 있다. 그 날서 있음은 이번 음반과 행보에서도 여전한데 다만 이전보다 조금 더 부드러워졌다.
음악감독 겸 싱어송라이터 강승원이 작곡한 고(故)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일부를 샘플링해 만든 붐뱁 힙합 장르의 '극야'가 예다. 한낮에도 어둠이 지속되는 '극야' 현상에 빗대어 한쪽으로 치우친 견해에 대한 고찰을 담았다.
"시커먼 질문들과 무차별 비난들 사이 /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싸우는가"라고 읊조리는 이 곡은 나와 너 우리가 깨끗한지 묻는데 아련한 곡의 분위기는 희망이 비집고 들어갈 틈을 만든다.
그건 슈가의 말처럼 우리 인생에서 평생 따라다니는 불안으로부터 탈피하는 일이기도 하다. 슈가는 '슈가: 로드 투 디-데이' 마지막에 이렇게 말한다. "많은 확률로 내가 걱정했던 미래는 일어나지 않는다. 항상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두려워하며, 고칠 수 없는 과거에 괴로워한다. 그런데 현재는 내가 컨트롤할 수 있다. 과거에 과한 의미 부여는 힘들다. 현재에 집중해야 한다." 이런 생각은 불안정했지만 그 만큼 고민거리를 안겨준 어거스트 디와 '헤어질 결심'을 하고 이제 또 다른 자아를 찾아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다큐에서 석양을 배경으로 길게 뻗은 도로를 슈가가 직접 차를 몰고 달리는 것처럼.
마지막으로 아미 사이에서 화제가 됐던 '해금' 뮤직비디오 도입부. 슈가가 국숫집으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수가제면(手家製麵) 백설탕면(白雪糖麵) 등이라고 적힌 간판이 눈길을 끈다. 슈가를 상징하는 일종의 언어유희이자 장인정신을 은유한다. 특히 슈가가 뮤직비디오 초반에 무기로 사용한 젓가락을 나중엔 면을 건져 먹을 때 사용하는데, 이건 'K팝 아이돌 장인'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공격적인 그 무엇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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