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교육 새 수장 천창수는 누구?…"시대와 함께 한 교육자"

기사등록 2023/04/06 00:56:28 최종수정 2023/04/06 01:09:57

20년 노동운동, 19년 교육자로 헌신

노옥희와는 반려자이자 평생 동지

교사 시절 '질문이 꽃피는 교실' 꿈꿔

"노옥희표 울산교육 한발 더 발전시킬 것"

[울산=뉴시스] 울산지역 걷기대회에 참가한 고 노옥희 전 울산시교육감과 남편 천창수 울산시교육감 당선인 *재판매 및 DB 금지

[울산=뉴시스]구미현 기자 = 노옥희의 또 다른 이름 천창수.

천창수 울산시교육감후보 추대위원회는 지난 2월 1일 울산시교육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이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추대위는 "고(故) 노옥희 교육감의 반려자이자 친구, 평생 동지였던 천창수 노옥희재단 추진위 공동대표를
 추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천 대표는 노 교육감의 뜻과 철학을 잇고 울산교육을 우리나라 공교육 표준으로 만들 수 있는 적임자"라고 했다.

제 8,9대 노옥희 교육감의 자리를 물려받아 제10대 울산시교육감에 천창수(64) 대표가 당선됐다.

천창수 당선인은 1958년 11월 20일 경상남도 김해군에서 태어나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교사를 꿈꾸며 서울대학교 사회교육과로 입학했다. 당시 겨레터에서 야학교사로 활동했다.

대학생활 도중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독재를 반대하는 유인물을 배포한 혐의(긴급조치 9호)로 구속됐다.

1980년 학교에 복학한 이후 1982년 졸업했다. 당시 교육공무원 법상 국립사범대를 졸업하고 교원자격증을 발급받은 이는 국공립학교 교사로 임용 됐으나 구속 전과로 인해 교사 발령을 받지 못했다.

졸업후 1983년 현대중전기(현 현대중공업)에 입사했으나 1987년 민주화운동이자 노동운동이었던 1987년 노동자대투쟁에 참가한 이후 서울대학교를 졸업했던 신분이 드러나 해고됐다.

현대중전기 입사 이듬해인 1984년 손목이 잘리는 대형 산재를 당하고도 보상을 받지 못한 제자의 사건을 계기로 졸업생들의 노동실태 조사를 하던 노옥희 교사를 만났다. 조사에 도움을 주면서 가까워졌고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함께 토론했다.

이후 영남노동운동연구소를 만들어 민주노총에서 활동하다 민주화 이후 2002년이 돼서야 교사로 돌아올 수 있었다. 서울 신림고를 시작으로 교사생활을 이어갔다.

이 당시 울산지역에서 울산사회교사모임을 만들고, 작은 도서관 설립 및 운영위원을 맡았으며, 청소년 인문아카데미 '날개'를 운영하기도 했다. 전국사회교사모임의 회장도 역임했다.
[울산=뉴시스] 서울대 재학시절 겨레터에서 야학교사로 활동하던 모습. 사진 맨 오른쪽이 천창수 당선인. *재판매 및 DB 금지

천 당선인은 교사 시절 ‘질문이 꽃 피는 교실’을 꿈꿨다. 어떤 질문도 소중하게 여겼다. 시간이 걸렸지만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질문을 하게 했다. 언제든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고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는 교사로 인정해 줬다고 한다.

그는 수업을 하고 나면 빠지지 않고 수업일지를 썼다. 19년 동안 썼던 수업일지는 1만 2000회가 넘는다. 천 당선인은 “수업시간 아이들의 반응을 알아야 더 나은 수업을 할 수 있고 아이들을 한 명 한명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천 당선인은 학생들의 문제를 해결하고 교사들의 성장을 위해서는 동료 교사들 사이의 협력과 소통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동료교사들과 만든 독서모임과 연구모임은 지금까지도 지속하고 있다.

퇴임 후에도 여러 어려움에 놓인 학생들을 지역사회가 함께 지원하는 ‘교육복지이음단’ 활동을 하면서 학습 능력이 부족한 느린 학습자를 돕기 위해 핀란드 교육과정을 활용하는 등 교육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천 당선인은 노 전 교육감의 교육철학 계승을 내세웠다. 그는 선거 기간 내내 "한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노옥희표 울산교육을 한발 더 발전시키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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