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기장·다른 성별…가격 올려 받아
"명확한 이유 없이 가격 차등 불합리"
핑크택스프리 미용실·제보 계정 등장
[서울=뉴시스]이소현 기자 = 남녀 커트가격이 같게 책정된 미용실을 찾는 2030세대가 늘고 있다. 소비자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가격을 올려 받는 이른바 '핑크택스(Pink Tax)'를 거부하는 움직임이다.
세계 여성의날인 8일 한국소비자원 참가격 사이트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지역 여성의 커트 1회 평균가격은 2만1308원으로, 남성 1만1692원에 비해 약 1.82배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성별에 따라 커트 가격이 다르게 책정된 미용실을 방문한 여성은 머리가 아무리 짧더라도 많게는 두 배 가까이 높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셈이다.
경기 성남에 사는 A(25)씨는 "미용실 회원권을 가족이 함께 이용하는데, 차감 내역을 보고 불편한 감정이 들었다"며 "귀 밑까지 오는 짧은 단발 머리라 남동생과 기장 차이가 별로 나지 않지만 가격은 거의 두 배 차이"라고 말했다.
같은 서비스·상품이라도 남성용보다 여성용 가격을 더 비싸게 매기는 것을 핑크택스라고 한다. 미용실 커트 비용은 그간 핑크택스의 대표적 예로 꼽혀왔다.
시민들 사이에서는 미용실 업계에 만연한 문화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누리꾼 B씨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여동생과 머리를 자르고 왔는데 짧은 숏컷이라 웬만한 남성보다 짧은 편"이라며 "그런데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3000원을 더 받더라. 이런걸 핑크택스라고 하나"라고 적었다.
서울 서초구에 사는 직장인 C(31)씨도 "남자 머리가 손이 덜 가는 것도 아닌데 여성 커트 가격이 더 비싼 게 의문"이라며 "기장이 비슷한데도 명확한 이유 없이 가격에 차등을 두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에 젊은 층을 중심으로 성별 간 가격 차등을 두지 않는 미용실을 찾아가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C씨의 경우 남녀 커트 가격이 같은 마포구 1인 미용실을 수년째 다니고 있다. 그는 "평소 문제의식을 갖고 있던 원장님이 직접 미용실을 차리면서 가격을 같게 책정했다"고 전했다.
업계 내에서도 성별에 따른 가격 차별은 문제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남녀 커트비를 동일하게 받는 미용실이 속속 생겨나는 분위기다.
경기도 용인에서 '핑크택스프리' 미용실을 운영하는 D씨는 "가격 체계는 매우 단순하다"며 "중학생학령기부터 성인까지 모두 같은 금액이고, 여성세가 없다"고 설명했다.
수십년 역사의 성북구 한 미용실도 '커트 남녀차별 없는 미용실'로 최근 입소문을 탔다. 해당 미용실은 포털 사이트 소개란에 '여자인데 가격 차이 있는지 묻지 마시고 편하게 오세요'라고 기재했다.
핑크택스 거부 움직임이 확산하자 SNS에서는 동네별 미용실 성별 가격 차이를 공유하는 계정도 등장했다.
한 인스타그램 계정은 "조금 더 편안하게, 평등하게 여성 숏컷 생활을 즐기고 싶어서 제보를 파탕으로 정보를 공유하려고 한다"며 "핑크택스가 없어서 추천하고 싶은 곳, 핑크택스가 있어서 미리 알려주고 싶은 곳 뭐든 괜찮다"고 했다.
이와 관련, 공정을 중시하는 MZ세대가 핑크택스에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하면서 성별 고정관념으로부터 탈피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남성을 기준으로 하는 제도와 규정 하에서 머리가 짧은 것이 정상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그 범주를 벗어나는 여성에게는 비용을 부과하겠다는 것"이라며 "성별 고정관념, 성별 경직성이 반영된 결과"라고 봤다.
그러면서 "성별을 전제로 편견을 먹고 자란 가격 결정은 문제"라며 "MZ세대에게 공정은 굉장히 중요하다. 가격을 바로잡는 건 시대에 부합하는 움직임"이라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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