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사망자 13명 중 관련법 적용 사업장서 숨진 노동자 3명
건설현장 타설에서 산단 원자재 가공 현장까지 '사망 또 사망'
제조업 사망이 대다수…현장 분위기는 1년 넘도록 답보 상태
노동계 "사업주 인식 재고·안전 재투자가 사고 예방 안전망"
특히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 사업장으로 분류된 곳에서 숨진 노동자는 모두 3명으로 집계된 가운데 이 중 2명이 제조업 현장노동자로 확인됐다.
현장노동자들은 산재 종식의 근본 해결책이 사업장 풍토 변화라고 입을 모으고 있지만 원청의 무리한 납기 요구, 사업주의 안전 재투자에 대한 무관심이 이어지고 있어 '산재 제로화'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전남에서는 그동안 산단 내 안전사고 주요 원인으로 지목돼오던 발주 공사 건에 대한 최저가 낙찰제 폐지 등이 논의되고 있어 대조적인 분위기다.
28일 광주고용노동청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올 들어 현재까지 광주에서 안전 사고로 숨진 노동자는 모두 13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현행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 사업장(상시 근로자 기준 50인 이상·공사금액 50억원 이상)에서 숨진 노동자 수는 3명에 이른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첫 적용된 사례는 지난해 5월 북구 임동 두산건설 아파트 신축 현장에서 발생한 외국인 노동자 사망 사고로, 당시 현장에서는 타설 공사에 투입된 콘크리트 펌프카의 붐대(30~40m 길이)가 휘면서 4m 아래 지상을 덮쳤다.
이 사고로 작업대에 맞아 머리를 크게 다친 중국 국적 하청노동자 A(34)씨가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수사를 이어온 경찰은 지난해 12월 펌프카 운전기사와 시공사·하청업체 현장소장 등 모두 3명에 대해 업무상과실치사 등의 혐의를 적용,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같은해 11월에는 광산구 하남산단 내 전자제품 제조업체 디케이㈜에서 일이 터졌다. 노동자 B(24)씨가 철제코일(1.8t)에 깔려 숨졌다. 디케이는 상시 근로자 기준 50인 이상인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 사업장이다.
B씨는 철제코일을 이동식 크레인(호이스트)에 매달아 작업대 위로 옮기는 도중 사고를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최근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현장 안전관리 책임자를, 노동청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사측 대표를 입건했다.
중대재해처벌법 대상 사업장에서의 사망 사고는 올 들어서도 이어졌다. 지난달 광산구 하남산단 내 한 냉장고 부품 제조업체에서는 외국인 노동자 C(32)씨가 현장 주변 사출기에서 나온 금형을 옮기다 다른 외국인 노동자가 몰던 지게차에 치어 숨졌다.
경찰은 공장 관계자 등을 상대로 정확한 사고경위를 조사 중인 한편, 노동청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관련법 시행에도 불구하고 숨진 노동자들의 수는 확연히 줄지 않았다. 노동계는 고질적인 산업현장 풍토가 바뀌지 않은 탓이라고 주장한다.
광주에서는 지난 2020년 노동자 18명이 숨졌고 이듬해에는 14명이 목숨을 잃었다.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이 예고됐고 실제 적용된 지난해에는 12명이 숨졌다. 2021년 대비 2명 만이 줄어든 것이다.
현장에서는 안전을 도외시하는 분위기가 여전하다는 주장이 새어나오고 있다. 안전 분야 재투자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원청의 무리한 납기 요구가 개선되지 않아 사고로 이어진다는 지적이다.
이는 제조업 분야가 만성적으로 앓아오던 문제다. 제조업은 대체로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시간당 생산량 등을 규격화한 표준작업예시를 만들어 현장에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촉박한 납기 일정과 과도한 주문량, 형식에 그치는 안전 교육이 이어지면서 사고가 근절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실제 지난해 광주 지역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업장 3곳 중 2곳이 제조업 현장으로 나타나면서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답보 상태인 광주 지역 산업 현장 분위기가 안전 사고 예방을 위해 자구책을 준비하는 다른 지역 현황과 사뭇 다른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실제 여수국가산단은 지난해 2월 발생한 여천NCC 폭발사고 후 대책 마련에 나서는 모양새다.
여수산단공동발전협의회와 여수산단폭발안전사고지역사회대책협의회 등은 지난해 11월 최저가 낙찰제 폐지와 다단계 하도급 폐해 개선 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는 안전 사고 방지 차원에서 발주공사 분야의 최저가 낙찰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취지로 열렸다. 그간 국가산단 입주 대다수 기업들은 발주공사 과정에 최저가 낙찰제를 적용, 과도한 하도급에 따른 부실 시공 우려와 작업자 안전을 눈감아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토론회 이후 산단 입주 일부 기업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남해화학 등 수어개 기업들이 최저가 낙찰제를 폐지했거나 서서히 이행하고 있다.
일부 기업들은 하도급 계약금 명목을 세분화하고도 있다. 인건비는 물론 자재비, 안전 관리비용 등을 나눠 계약해 반드시 그 몫이 해당 분야에 쓰일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다. 과거에는 하도급 업체 자율에 맡기던 것을 원청이 개입해 관리하는 것이다.
안전 분야 정규직을 추가 고용해 현장관리 감독에도 나서고 있다.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일부 기업은 관리감독인 한 명이 현장 작업허가서를 최대 5개까지 관리하도록 했으나 폭발사고 이후에는 한 명 당 현장 작업허가서를 한 개씩 관리할 수 있도록 인력을 충원하는 등 개선에 나서고 있다.
노동계는 사업주의 인식 재고와 안전 재투자가 제2, 제3의 중대재해를 막기 위한 선결조건이라고 강조했다.
박성진 민주노총 광주본부 부본부장은 "사업주가 나서 안전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인식 재고에 나서야 하지만, 일부 사례를 제외하고는 법 시행 이전 이후 달라진 점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며 "특히 사업주가 안전 사고를 막기 위한 재투자를 손실로 보는 경향이 큰 점이 주요하다"고 했다.
이어 "안전사고의 큰 원인 중 하나인 원청의 무리한 납기 요구는 법 개정 이후에도 변함 없다"며 "법을 단순히 강화해 처벌받는 사업자를 양성시키자는 게 아니다. 법은 최소한의 예방장치인 만큼 이에 기반해 원청의 태도와 현장부터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수도권에 도입된 4조 2교대 등 방식도 지역에 적극 도입해 노동자들의 휴식을 보장하는 것도 또다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언했다.
이에 광주시 관계자는 "중대재해처벌법이 2024년부터 50인 미만 사업장으로도 확대되는 것을 감안, 주요 산단과 건설 현장을 중심으로 안전홍보 캠페인에 나설 것"이라며 "특히, 산단 입주 25개 기업을 대상으로 전문기관이 진행하는 소규모 위험성 평가를 지원할 방침이고, 이를 통해 현장 문제점을 재점검하고 개선책을 반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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