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생활기록부 기재 부분 집행정지→소송 절차 시작
상고심 이례적…명문고 졸업 위한 고의적 지연 추측도
실제로도 빈번…가해 학생과 분리되지 못해 고통 받아
보복 피해 우려…당사자 아닌 학생들, 교사들도 무력감
맞학폭 신고로 무마하거나 신고 포기하게 하는 경우도
[서울=뉴시스]이소현 기자 =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으로 임명됐던 정순신 변호사가 아들의 학교 폭력 사태로 하루 만에 자진사퇴했지만, 가해자인 아들을 위해 수년간 집행정지 신청 및 소송 제기 등 법적 대응에 나선 사실이 알려지면서 후폭풍이 일고 있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정 변호사 아들 정씨는 지난 2017년 기숙사 생활을 하는 강원도 명문 자율형사립고에 입학해 동급생을 상대로 폭언 등 학교폭력을 가해 전학 처분을 받았다.
정씨 측은 지난 2018년 강원도 학교폭력대책 지역위원회 측에 "재심결정을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다. 1심에 항소해 2심 판단을 받고, 다시 상고했으나 대법원에서도 1심 판결이 그대로 확정됐다. 앞서 학교 측을 상대로 집행정치 가처분도 신청했으나 기각됐다.
당시 현직 검사 아들이 학교폭력으로 징계를 받은 이후 소송전을 벌인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자, 일각에선 '시간 끌기 목적'이 아니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전학 조치를 받을 경우 일정 기간 기록이 남아 입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학교생활기록부 관리를 위해 일부러 사건을 대법원까지 가져간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다.
학폭 사건을 주로 전담해온 양나래 법무법인 라온 변호사는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자녀가 중3 또는 고3인 경우 시간을 끌면서 생기부에 기재하지 않고 학제가 끝나게 하는 목적으로 소송을 진행하는 경우가 있다. 일단 기재하라고 나온 부분에 대해 정지를 시키고 소송 절차를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학교폭력 관련 행정소송이 대법원 상고심까지 이어진 경우는 이례적이라는 평가도 나오는 가운데 명문고 졸업을 위한 고의적 지연이라는 의견도 있다.
노윤호 법률사무소 사월 대표 변호사는 "보통 대법원까지는 잘 가지 않는데 학교가 워낙 명문고다 보니 어떻게 해서든 졸업을 하기 위해 전학을 지연 시키려고 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중간에 한번 처분 수위가 낮아진 바 있는 만큼 입시 전까지 승소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정씨 측은 최초 전학 조치에 대해 재심을 청구함에 따라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다시 열렸고, 서면사과 및 출석정지 7일로 징계가 한차례 완화된 바 있다.
학교폭력 사건 전문가들은 정씨 사례처럼 가해자들이 인정하지 않고 각종 수단을 동원해 시간을 끄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입을 모은다. 소송 등으로 사건이 장기화되는 동안 피해 학생은 가해 학생과 분리되지 못한 채 추가적인 고통을 겪어야 한다.
노 변호사는 "불복 절차의 경우 짧게는 몇개월에서 길게는 이 사건처럼 3년 가까이 소요가 된다. 징계를 무력화 시키는 것"이라며 "가해자와 피해자가 분리돼야 된다는 필요성과 사안의 심각성이 인정돼서 퇴학 다음으로 중징계에 해당하는 처분이 내려진건데 사실상 전학이 정지가 되다 보니 피해 학생은 남은 학교 생활을 가해 학생과 같이 할 수밖에 없게 된다"고 말했다.
또 "당사자 뿐 아니라 주변에서 이 사건을 바라보는 학생들에도 제도 자체에 대한 불신을 가질 수밖에 없다. 현장에 계시는 선생님들도 무력감을 느꼈을 것"이라며 "불복 절차라는 건 가해 학생에게도 권리로서 주어지는 것이고, 학폭위 판단이 잘못돼 법원에서 결과가 뒤집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너무나 명확한 사안에 대해서 시간끌기용으로 악용되는 건 분명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양 변호사도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이 서로 분리되지 않을 경우 보복이 우려된다"고 했다.
학폭을 무마하거나 신고를 포기하게 하려고 일단 맞학폭부터 제기하고 보는 사례도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양 변호사는 "이 사건은 한쪽이 일방적으로 가해한 경우지만 간혹 서로 기싸움 하듯이 학폭이 일어나기도 한다"며 "한쪽이 신고를 당하면 상대방을 같이 신고해 버린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요즘 워낙 다들 생기부에 예민하기 때문에 본인이 신고를 당하면 신고를 해버리는, 신고가 난무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학교폭력 피해 학생의 법률대리인을 주로 맡아온 박상수 법률사무소 선율 변호사도 전날 페이스북에서 집행정지와 시간끌기 소송에 대해 "대중화된 방법"이라고 꼬집었다.
박 변호사는 "시간을 끌면서 3심까지 가면 3년은 그냥 흐른다. 학폭 기록 하나 없는 깨끗한 학생부로 가해자는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 있다"며 "피해자는 처분이 나왔는데도 같은 학교에서 가해자와 다녀야 하고, 가해자나 그 집단의 조롱을 받는 것은 덤"이라고 밝혔다.
가해자 측에서 피해자 또는 학교 측을 되레 고소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한다.
박 변호사는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알리면 가해자나 그 부모는 피해자 측을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거나 학교 측에서 종결하지 않고 학폭위로 사건을 보냈다고 선생님까지 무고죄로 고발하기도 한다"며 "무혐의가 나온다 해도 피해자와 그 가족은 마음이 무너지고, 선생님들도 소극적으로 변한다"고 우려했다.
한편, 정씨는 정시모집 전형을 통해 지난 2020년 서울대에 합격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변호사는 지난 25일 국가수사본부장 지원을 철회하며 아들의 사건에 대해 "자식의 일에 대해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피해 학생과 그 부모님께도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는 입장을 전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정 변호사의 국가수사본부장에 대한 임명을 취소했다. 대통령실은 정 변호사의 임기가 아직 시작하지 않아 사표 수리하는 의원면직이 아닌 발령 취소 조치를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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